396건 중 급발진 인정 0건…국과수 결론에도 정책 대응은 제자리
국내 사고의 86%가 '페달 오조작'…고령 운전자 비중은 매년 급증
韓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의무화 2029년…일본은 이미 90% 탑재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경기 부천 제일시장을 덮친 트럭은 골목을 순식간에 휩쓸며 사망 2명, 중상 9명을 포함해 21명의 사상자를 남겼다. 시장 상인들은 피할 틈도 없었다.
사고 직후 운전자가 내세운 주장은 역시나 ‘급발진’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엔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장면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지난해 7월 9명이 숨진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에서도 운전자는 어김없이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대부분 60대 이상 고령 운전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결론은 하나였다. ‘페달 오조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396건의 차량 급발진 주장 사고들을 감정한 결과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경우는 1건도 없었다.
국과수에서 진행한 감정 건수의 약 86%가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기타 및 논단불가로 분류됐으며 이는 차량의 파손이 심하거나 EDR(사고기록장치)이 없는 경우다.
심지어 국과수는 동일 모델 차량을 직접 실험해 가속페달 오작동 가정 하에서도 브레이크만 밟으면 완전 정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입증해왔다.
지난해 시청역 사고 차량(GV80) 역시 제동 ECU(전자식제동제어기)가 꺼진 상태에서도 차량이 멈춘다는 사실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서로 독립된 시스템인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이 동시에 망가져 차량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시나리오는 과학적으로 극히 희박하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급발진 사고 주장은 고령 운전자들의 패턴에 가깝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교통사고는 4만2369건으로 2020년 3만1072건에서 36.4% 급증했다.
고령 운전자 사고 증가와 급발진 주장 반복은 결국 제도와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PDB)의 의무 장착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이미 기술적으로 완성돼 있다. 센서가 속도·기어 상태·전방 장애물을 분석해 브레이크 조작 없이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이를 ‘오조작’으로 판단해 엔진 출력을 즉시 제한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이미 2023년 이후 생산 차량의 90% 이상이 이 장치를 탑재했고, 실제로 고령 운전자 사고가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이 장치를 의무화하기로 했지만, 시행 시점은 2029년으로 정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4일 2029년 1월 1일부터 제작·수입하는 승용차와 3.5톤 이하 승합·화물·특수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의 장착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승용차는 2029년 1월부터, 승합·화물·특수차는 2030년 1월부터 적용된다.
지금도 매년 고령 운전자 사고는 증가하고, ‘급발진 주장’은 반복되고, 사망자는 줄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2029년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이는 사실상 “현행 사고 패턴을 5년 더 지속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이미 검증됐고 사고 예방 효과도 명확하다. 그럼에도 신차 의무화 시점을 2029년으로 미뤄 둔 것은 정책적 직무유기에 가깝다.
급발진은 검증된 적 없고, 페달 오조작은 이미 통계로 현실을 증명한다.
정책은 피해가 쌓인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