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조6480억원 전년比 9.7% ↑보건의료 11.8%↑의료 R&D 32.8%.↑
통합돌봄·노인복지 예산 축소·이관 논란… 지방 간 격차·불평등 심화 우려

[포쓰저널=신은주 기자] “정부가 AI(인공지능)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며 복지 예산은 놔둔채 보건의료 R&D(연구개발) 예산만 대폭 확대했다. 보건복지 정책을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이 아니라 산업국가의 경제정책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정부가 2026년도 보건복지 예산안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했지만, 통합돌봄·노인복지 등 사회안전망 예산은 동결하거나 축소하고 보건의료 R&D(연구개발)예산만 AI(인공지능)·산업 인프라 중심으로 30% 넘게 확대하며 우려되고 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복지·돌봄 안전망을 두텁게 하고 필수 공공의료를 촘촘히 하자는 취지의 ‘2026년도 보건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는 국회의원 남인순·박주민·이수진·김남희·김선민(보건복지위원회)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좌장은 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다.
총론 발제를 맡은 최혜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서울여대 교수)은 올해 보건복지부 총지출은 137조648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의 20.4%를 차지, 전년 대비 9.7% 늘었지만 예산 증가분 상당수가 법령상 의무·대상자 증가 등 ‘자연증가’가 주도했다는 점을 들어 정책적 확장 의지가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연금·장애연금·보육·요양 등 사회서비스 공공 인프라 예산이 정체·감액된 반면 보건산업 R&D와 AI 기반 서비스 예산 확대가 '산업화를 명분으로 한 보건복지 서비스의 시장화' 우려를 키운다고 했다.
일부 사업의 특별회계 이전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강화보다는 중앙정부의 재정부담 회피에 가깝고 지역 간 복지 불평등을 심화시킬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패널들은 내년 통합돌봄 예산이 약 770억 원 규모로 읍면동 3500곳의 인건비·재가서비스 연계를 지원하지만 “시범사업 때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 위원장은 “통합돌봄은 지방정부가 50~70%를 책임지는 구조다. 재정 책임의 축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자치단체 간 격차가 주민 삶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돌봄 분야 평가를 맡은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정과제 전반에 ‘돌봄’이 빈번히 등장하지만 내용은 AI·스마트 기술 개발과 산업화 중심으로 설계돼 공공복지로서의 권리 강화가 부실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노인·아동·장애인 돌봄 모두 단기성·시장 의존형 지원에 치우쳐 구조개혁 없이 양적 확대에 머물렀다고 했다.
그는 노인복지 지출 구조와 관련해 “노인 복지 예산에서 실제로 4개 사업(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부담금, 노인 일자리 사업, 노인 맞춤 돌봄)이 거의 99%를 차지하는데 실제 지금 증가된 예산은 기초연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노인 인구가 늘어나 기초연금이 증가했지만, 액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며 “장기요양부담금은 지방자치단체가 100%를 낸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의해서다. 지방에 있는 많은 돈을 이 의료급여 환자들에 대한 장기요양부담금으로 국고에서 내지 않는다. 매번 지적이 되는데도 논의가 되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기초보장 분야를 평가한 김윤민 국립창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26년 기초생활보장 예산안이 겉으로는 사회안전망 강화를 표방하지만 실질 개선·보장성 강화로 이어지기엔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간주부양비 폐지’, ‘30세 미만 미혼 자녀 생계급여 분리지급 모의 적용’은 청년층 생활고 완화의 긍정 변화로 평가했지만 생계·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 미반영, 낮은 기준중위소득 현실화, 의료급여 건강생활유지비 축소 등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빈곤층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의료급여 정률제 전환에 대해서도 정부의 구체적·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기후재난 속 주거취약계층 지원 예산의 미흡함도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 국고지원율은 여전히 법정 기준(14%)을 충족하지 못했다. 재난적 의료비 예산도 줄었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분야 토론을 맡은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건강보험 예산 증가율이 1.3%에 그친 반면 R&D 예산은 32.8%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의료는 이미 산업화가 끝났는데, 예산은 매해 비슷하게 반복된다. 전체 예산 증가율(약 9%)에 비해 보건 부문은 4%대로 낮다. 건강보험 증가폭이 작아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대형병원 중심의 AI 인프라 투자 편중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AI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건의료 R&D 예산은 30% 넘게 증가했다. 보건의료 예산을 복지국가의 사회정책이 아니라 산업국가의 경제정책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재정 거버넌스의 구조적 문제도 제기됐다. 토론회 현장에서 제시된 수치에 따르면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예산은 28.5% 감소했고, 차상위계층 지원도 실질 감액됐다. 보건 예산의 약 75%를 차지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예산체계 바깥에서 운영되면서 국회 통제가 어려운 현실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김 교수는 “보건의료 재정의 균형 축이 ‘예산’이 아니라 건강보험에 있다. 건보 재정은 100조 규모지만 예산체계 바깥의 별도 회계라 국회 통제 논의가 빈약하다. 국고에서 15조를 ‘얼마 줄 거냐’만 오갈 뿐, 이후 지출을 국가가 조정·심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내년 보건의료 예산안은 정부가 강조하는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말과 달리 산업화와 기술 중심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는 제한적이며,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할 대책도 미흡하다”며 “상병수당, 재난적 의료비 등 사회적 안전망 예산은 오히려 축소됐고, 보건산업 R&D예산은 30% 이상 증가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는 단순히 분야 간 균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의료를 국민의 권리로 볼 것인가, ‘성장’을 ‘공공성’의 언어로 볼 것인가의 방향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토론회는 ‘복지와 성장의 균형’을 복원하는 정치적 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최혜지 위원장은 내년 예산안을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질적 전환에 이르지 못한 미완의 복지 예산”으로 평가하며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만드는 증명의 정치”라는 국정 원칙과의 괴리를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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