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휴대폰 판매점 모습./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휴대폰 판매점 모습./사진=연합뉴스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2014년 10월, 정부는 과열된 보조금 경쟁과 왜곡된 요금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을 도입했다. 통신비 인하와 유통 질서 개선이 핵심 목표였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단통법은 소비자 선택권을 오히려 좁혔고, 실질적인 가격 경쟁은 사라졌다. 누구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보조금 균형'만 남았을 뿐이다. 통신비 인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통 투명성 역시 제자리걸음이었다.

22일, 단통법은 약 11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규제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지, 시장은 다시 한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단통법 폐지 자체가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실패를 거듭하지 않으려면 정보와 통신사 모두 실질적인 역할 변화를 감당해야 한다.

규제가 풀린 만큼 정부의 감독과 시장 감시 기능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우선 소비자가 요금제와 단말기 가격, 보조금 지급 내역, 할인 조건 등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통합 정보 공개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지금까지의 정보 비대칭은 소비자 피해를 키우는 주범이었다.

알뜰폰과 중소 사업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정책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보조금 경쟁이 본격화되면 대형 통신사들이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을 다시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 통신사들이 보조금을 무기로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방치하면, 자본력이 약한 알뜰폰과 중소 사업자들은 보조금 경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은 좁아지고 시장의 다양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제재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 단순히 규제를 걷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 경쟁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플랫폼 설계자’로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통신사들도 단통법 폐지를 ‘보조금 경쟁의 자유’가 아닌,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복잡하고 불투명한 요금제 구조를 바로잡는 일이다. 지금의 요금제는 지나치게 세분화돼 있고, 할인 조건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요금 체계의 단순화와 정보 투명성이 소비자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이와 함께 장기 이용자에 대한 실질적인 혜택 설계도 필요하다. 신규 가입자나 번호 이동 이용자에게만 집중되던 보조금 구조는 구조적 불공정의 상징이었다. 이제는 가입자 단기 유치 경쟁에서 벗어나 장기 유지 고객에게도 차등 할인, 데이터 추가 제공, 멤버십 혜택 강화 등 실질적 보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유통망의 불공정 관행을 없애고 온라인 중심 유통을 강화하는 동시에, 오프라인 판매점의 관리와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 과거와 같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보조금 차등, 사은품 꼼수, 과장 광고가 반복돼선 안된다. 정직한 유통 시스템 없이 시장 전체의 투명성은 불가능하다. 온라인 유통 확대와 함께 오프라인 관리 체계 강화가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단통법 폐지는 제도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 질서 구축의 시작점이 돼야 한다. 정부와 통신사가 단순히 ‘규제 철폐’로만 접근한다면, 이번 폐지는 또 한번의 시행착오에 그칠 것이다. 

소비자는 더 이상 ‘호갱’이 될 생각이 없다. 신뢰 회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돼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질적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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