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자료사진
대웅제약./자료사진

 

[포쓰저널=신은주 기자] 리베이트는 산업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누군가는 이를 "관행"이라 둘러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시장 경쟁의 결과"라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은 결국 본질을 흐리는 변명에 불과하다.

돈으로 입을 틀어막고, 이익으로 양심을 사는 구조. 그것이 리베이트의 민낯이다.

의료계에서 리베이트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제약사들은 약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의사들에게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현금, 법인카드, 해외 학회 초청, 병원 인테리어 비용 지원 등 방식은 다양하다.

법적으로 단속이 강화되면서 겉으로는 마케팅 활동이나 학술 지원이라는 외피를 두르지만, 본질은 처방을 유도하는 대가성 금품이다.

최근 대웅제약의 리베이트 수수가 적발되며 관련 업계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대웅제약 영업직원들의 리베이트 영업 의혹에 대해 검찰이 재수사하기로 결정하면서 처벌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대웅제약은 현재 경찰 수사선상에 있다.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약 2년간, 대웅제약 영업사원 130여 명이 전국 380여 병원과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정황이 고스란히 적힌 내부 보고서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해당 보고서에는 의사들의 학술행사에 수억원을 지원하는 대가로 신약 처방을 약속받는 등 대가성 거래가 기록돼 있다.

의사로부터 학회 지원금 액수를 직접 전달받은 후 이에 대해 신약 ‘펙수클루’ 처방을 확실히 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나타난 정황과 뇌질환 개선제 ‘글리아타민’ 신약 승인을 부탁한 영업직원, 이를 승인할 약무위원회 소속 교수 간 대화 내용도 담겨있다.

안국약품도 앞서 의약품 82종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3개월 판매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일부 제품은 공급 불안을 고려해 행정처분 유예됐다.

안국약품은 총 89억 원 규모의 리베이트(현금 62억 원, 물품 27억 원 가량)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직원 복지몰을 통한 간접 지급 방식도 동원됐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JW중외제약은 2014년 2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전국 1500여 개 병·의원에 약 70억 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사 의약품 약 62품목의 처방 확대를 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제공 방식은 골프 향응, 골프 접대, 해외 학회 지원, 임상 관찰 연구비 지급 등 다양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역대 최고 과징금인 약 305억 원을 부과했다.

JW중외제약은 현재 리베이트 관련 탈세 혐의로 재판를 받고있다. 재판부는 8월 21일로 다음 공판기일을 정하며, 양측의 증거 의견을 듣기로 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재명 정부 정책에 따라 의약품·의료기기 리베이트를 ‘3대 부패 특별단속’ 대상으로 포함해  7~10월 집중 단속을 추진하고 있다.

리베이트가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불법이라서가 아니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제약사의 이익과 병원의 수익을 위해 더 비싼 약, 덜 효과적인 약이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처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2010년대 이후 ‘리베이트 쌍벌제’, ‘경제적 이익 신고 의무화’, ‘키코드(의사 고유 코드) 도입’ 등 각종 규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단속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제약사와 병원은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어냈다. 학술 세미나에 초대된 뒤 형식적 강연을 하고 고액의 강연료를 받거나, 의사가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참석한 것처럼 출석 체크가 조작되는 일도 있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의료계 내부의 윤리 감각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의약분업 이후 병원의 수익은 줄었고, 처방을 많이 할수록 유리한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환자는 의사의 처방을 믿고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 처방이 의학적 판단이 아닌 금전적 유혹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의료에 대한 신뢰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리베이트는 단순한 도덕성 문제가 아니다. 의료 시스템 전체의 공정성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구조적 문제다.

건강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사회에서, 환자는 결국 가장 약한 위치에 놓인다. 리베이트를 받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의료 환경, 제약사도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시장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 중심의 의료윤리 회복이 필요하다.

투명한 의약품 유통 및 처방 시스템 구축이 절실히 필요하다. 의사와 제약사 간 경제적 이익 공개 의무화를 확대해야 한다.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작성 대상을 모든 병의원으로 확대하고, 공개 범위도 대국민 열람으로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특정 의사의 과다처방, 특정 제품 편증 현상 등을 빅데이터 기반으로 추적 분석해 처방 데이터를 공개하고 분석에 힘쓰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상 처방 패턴은 자동 알림 및 조사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리베이트 쌍벌제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도 법은 있지만 병원은 개인 행위로 몰아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 법인과 관리자 책임까지 명확히 규정해 실질적인 징계로 연결되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는 리베이트를 받은 병원 의사에 대한 건강보험 수가 불이익으로 행정처분에 그치지만, 보험 재정과 직접 연결된 불이익을 주면 억제효과가 높을 것이다.

공공 연구개발 예산을 확충하고 약가 책정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 민간 제약사에만 의존할 경우 마케팅 비용 회수를 위해 리베이트 관행이 반복될 것이다. 국가 주도의 치료제 개발과 저가 공급 체계가 필요하다.

민간 병원은 수익이 중심어어서 처방 유도에 쉽게 노출된다. 국공립 병원에서 모범적인 처방 기준을 제시하고 기준약 처방율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리베이트 수령 사실을 알고도 침묵하게 되는 환경을 없애기 위해선 익명 제보 시스템과 내부 고발자 보호법 연계를 강화해야한다.

지금은 가성비보다 영업력이 강한 약이 시장 점유율을 높인다. 약가에 연구개발 기여도와 사회적 유용성을 반영하도록 구조 개선을 해야한다.

리베이트를 줄이기 위해선 영업 마케팅 지출 비용에 상한선을 도입하는 이른바 마케팅 예산 제한제 도입을 검토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단속만으로는 리베이트를 뿌리 뽑기 어렵다. 투명한 시스템, 의료 윤리 확립, 환자 중심의 처방 구조, 제약사 영업구조 개혁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리베이트를 없애는 일은 단지 제약사의 문제가 아닌 신뢰받는 의료체계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리베이트는 ‘발각되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해선 안 되는 일’이다. 이제는 ‘이 정도는 다 한다’는 체념이 아닌, ‘누가 먼저 끊어낼 것인가’에 집중할 때다.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냉소가 계속된다면, 이 부끄러운 관행은 앞으로도 의료·제약업계 구석구석을 좀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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