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산업 대대적 구조 개편
구조조정 핵심, 정유-석화 통합 논의
금융권 긴급 회의…“30조원 위험노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8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석유화학산업 사업재편 진행상황 관계장관 현안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왼쪽부터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구윤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제공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8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석유화학산업 사업재편 진행상황 관계장관 현안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왼쪽부터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구윤철 부총리,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남동일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제공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대대적인 구조 개편에 나선다. 

업계는 나프타분해시설(NCC) 생산 능력을 최대 25% 줄이기로 했으며, 정부는 강력한 자구 노력 없이는 금융·세제·규제 완화 등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석유화학 업계가 뼈를 깎는 각오로 사업 재편에 나서야 정부 지원도 가능하다”며 “무임승차 기업에는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과잉 설비 감축 및 고부가 제품 전환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경제·고용 충격 최소화라는 3대 개편 방향을 내놓았다.

또 ▲3대 석유화학단지 동시 개편 ▲충분한 자구 노력 ▲타당성 있는 재편계획 수립 후 정부 지원이라는 3대 원칙도 제시했다. 요지는 “기업이 먼저 감산·체질개선안을 마련해야 정부 지원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정부 방침에 맞춰 NCC를 보유한 10개 기업은 이날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자율협약식’을 열고 총 270만370만톤 규모의 NCC 감축에 합의했다. 

이는 국내 전체 NCC 생산능력(1470만톤)의 18 ~25% 수준이다.

협약은 산업부와 기업 간 협의, 그리고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의뢰한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도출됐다. 

참여 기업들은 연말까지 개별 사업 재편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실상 정부가 연말까지 감산안을 내놓으라는 통첩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대안은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간 수직적 통합이다. 

정유사가 공급하는 나프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중복된 NCC 설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산산단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NCC 통합 운영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산단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대한유화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여수산단에서는 GS칼텍스·LG화학·롯데케미칼 간 대형 구조조정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수에서는 여천NCC의 유동성 위기와 3공장 폐쇄 가능성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자구 노력의 진정성에 따라 지원을 차등화하고, 감축을 미루며 타사의 희생에 기대는 기업은 지원에서 배제할 방침이다. 

구 부총리는 “조선업의 구조조정이 부활의 교과서였다”며 “석유화학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놓친다”며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개편만이 미래 경쟁력을 보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주요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을 불러 석유화학 금융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금융권이 노출된 위험액은 30조원대로, 단일 산업 기준으로 상당히 크다. 만기 연장, 이자 유예, 신규 대출 등 다양한 지원 카드가 검토되고 있으며, 채권은행 공동 대응 협약도 논의된다.

금융당국은 “대주주의 자구노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금융 지원도 없다”며 정부 원칙을 재확인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석유화학은 단순히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상기업의 사업구조 혁신”이라며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구조조정에 따른 지역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5월 여수를 산업위기대응지역으로 지정한 데 이어 서산 추가 지정도 검토 중이다. 업계의 대규모 감산이 현실화될 경우 지역 고용 불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단순 감축에 그치지 않고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을 모색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전략기술 설비 관세 감면 등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 이후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조정 기간이 필요하다”며 “지금부터 신성장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구조 개편은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산경장에서 다뤄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정부는 산업경쟁력강화 회의를 수시로 열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시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구 부총리는 “산업부는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자구노력이 사업재편 계획에 반영되도록 하고, 금융위는 채권금융기관과 함께 재무상황과 자구노력을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계획에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R&D(연구개발) 지원, 규제 완화, 금융·세제 등 종합대책을 적기에 마련하겠다”며 “사업재편을 미루거나 무임승차하려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겠다”고 덧붙였다.

또 “조선업이 고강도 구조조정을 거쳐 세계 1위로 재도약한 좋은 선례가 있다”며 “석유화학산업도 그 발자취를 따른다면 재도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산경장을 수시로 개최해 사업재편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조치를 마련·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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