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비트코인(Cryptocurrency Bitcoin). 2024.3.9. /사진=로이터연합
암호화폐 비트코인(Cryptocurrency Bitcoin). 2024.3.9. /사진=로이터연합

[포쓰저널=강민혁 기자] 최근 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법률 규제가 없는 현 상황이 오히려 실질적인 규제가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법률 규제가 없는데 어떻게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말일까? 그 답은 '그림자 규제'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자 규제'란 법령이나 공식 지침으로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정부나 감독 당국이 구두지시·행정지도·모호한 권고 등을 통해 사실상 규제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법전에는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지만, 업계는 이를 어길 경우 향후 인허가나 감독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알아서 기는' 상황이 벌어진다.

암호화폐 거래소 산업은 현재 한국에서 대표적인 '그림자 규제'의 그늘 아래 있다.

법률이 부재한 상태에서 각 부처와 기관은 모호한 가이드라인, 형식적인 권고, 때로는 언론을 통한 시그널로 시장에 메시지를 던진다.

문제는 이 메시지가 명문화된 규정이 없으니 결국 일관되지 않고, 해석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이럴 경우 업계는 '명확한 규제'를 따르는 대신 '혹시 이게 금지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에 스스로 사업을 축소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공식 규제가 없으니 법적 분쟁에서 방어할 근거도 마땅치 않다.

그 결과 창의적인 서비스와 신규 진입은 줄고, 해외 이전이나 우회 운영이 늘어난다.

규제가 없다 보니 업계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할 법적 기반도, 시도할 용기도 없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증권에는 '한국거래소'가 있지만 코인에는 아직 '한국코인거래소' 개념의 기관이 없다. 이를 한국이 만들면 세계 최초지만, (현재와 같은 규제 상황에선) '한국 최초'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규제의 부재가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여기서 명확해진다.

오히려 불확실성은 시장을 질식시키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된다.

정해진 룰이 있으면 그 안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지만, 룰이 안 보이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이 위법인지도 모른 채 발목이 묶인다.

가상화폐 ETF를 예로 들어보자.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에선 가상자산 ETF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ETF 시장을 기존 규제가 존재하는 증권업계가 가져가 버린다는 점이다.

거래소가 가상화폐 ETF를 자산운용사처럼 기획하고 싶어도 법규가 없으니 추진조차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4배 레버리지 코인 대여 같은 서비스도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적이지만, 한국에서는 명확한 법령이 없고 투자자 안전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일단 금융당국이 규제 신호만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래소의 수익 구조 역시 왜곡돼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증권업계처럼 프랍 트레이딩(자기매매)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 금지돼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 관계자는 "자사 직원은 컴플라이언스 등 문제로 자사 코인거래소 이용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결국 암호화폐 거래소 업계는 증권업계처럼 수익다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고 수수료 수익에만 의존해야 한다.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가상화폐 거래소 수익이 모두 수수료에서만 나오는 현 상황에서, 후발주자가 증권업계처럼 공격적인 수수료 무료 마케팅을 통해 점유율 확보는 진행하기 상당히 힘든 구조다. 거래소가 증권업계처럼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을 통한 수익다변화를 진행하고 싶어도 관련 법률이 없다보니 시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로인해 결국 증권사처럼 촘촘한 경쟁 구조가 아닌 소수 대형 거래소 독점 구도가 굳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업비트(두나무)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머지도 빗썸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업비트·빗썸을 제외한 코빗·고팍스·코인원 등의 시장 점유율은 미미한 상황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코빗의 경우 거래 점유율이 매우 낮아 거래은행인 신한은행의 경우 관련 필수인력 인건비로 인해 수익이 현저히 적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후발주자를 통한 신규 서비스나 혁신적인 시도가 나올 여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규제의 부재가 곧 자유가 아님을 우리는 보고 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창의와 도전이 사라지고, 기득권만이 버틸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규제 방치'도, '규제 남발'도 아니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제도적 틀이다.

금융당국이 진짜 해야 할 일은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이다.

시장이 무엇을 해도 되는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암호화폐 산업을 둘러싼 혼란은 단순히 투자자의 문제가 아니다.

암호화폐 자본이 명확한 제도가 있는 해외로 빠져나가 버리게 된다면, 한국은 미래 암호화폐 금융 인프라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림자가 아닌, 빛 아래서 블록체인 시장이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규제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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