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쓰저널=송신용 기자] 에스컬레이터 주권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의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중국산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국내에도 다수의 에스컬레이터 제조사가 존재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국산보다 저렴한 중국산 제품이 조달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자, 국내 기업들은 수익성과 생산 지속 가능성을 잃었다.
2014년에는 현대엘리베이터마저 생산을 중단하면서 국산 에스컬레이터 산업은 사실상 붕괴됐다.
문제는 저가 일변도의 경쟁 구조가 안전과 직결된 에스컬레이터 산업에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나 무빙워크에 비해 사고 빈도가 높고,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도 크다.
중국산 제품은 부품 수급이 까다로워 유지·보수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커진다는 고질적인 문제도 있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점검으로 사용 불가능한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000년경 전국에 설치됐던 1만대 이상의 에스컬레이터가 현재 교체 시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서비스와 중소 승강기 기업들은 손을 잡고 지난해 9월 25일 'K-에스컬레이터’라는 합작투자법인을 공식 출범했다.
거창 승강기밸리에 둥지를 튼 K-에스컬레이터는 국내산 기술과 부품 비중을 높이면서 국산 기술의 명맥을 다시 잇고자 하고 있다.
실제로 K-에스컬레이터는 공식 출범 후 5월까지 용산역 광장 에스컬레이터 6대 등 총 24대의 에스컬레이터의 계약을 수주한 바 있다.
국산 제품이 에스컬레이터 시장에서 다시 자리잡기 위해서는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입찰제도의 개편이 가장 시급하다.
현재 국내 공공기관의 에스컬레이터 발주 물량은 대부분 최저가 낙찰제로 진행된다.
품질이나 유지·보수 능력은 평가되지 않고, 가격이 싸기만 하면 누구든 낙찰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국산 에스컬레이터의 몰락은 이로부터 야기됐다.
중국산 완제품을 들여와 공급만 하는 중개상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됐고, 그로 인해 시공 품질 저하와 사후관리 부실이 반복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공공 기반시설은 최소한의 품질·안전 기준을 보장하는 입찰제도 개편이 시급하다.
기준 금액 이하의 과도한 저가 입찰자를 배제하는 '저가 제한 낙찰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K-에스컬레이터는 당장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직접 생산해 부품 수급과 유지관리까지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향후 중국산 업체들의 가격 담합에 대한 최소한의 저지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 의의는 충분하다.
K-에스컬레이터는 몇몇 핵심 부품의 국산화에 이미 성공했다. 남은 부품도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실에 맞지 않는 낙찰 구조가 공공 안전과 산업 자립을 무너뜨린다면, 이는 반드시 고쳐야 할 제도 리스크다.
에스컬레이터는 국민의 안전과 함께하는 산업이다.
최저가 입찰제 전면 재검토를 시작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