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우유 소비 줄고 유제품은 늘어..원유 가격 차등해 수입유제품 경쟁력 확보"
낙농육우협회 "모든 원유에 같은 생산비 들어...정상쿼터 삭감, 낙농가 소득 감소"

낙농인들이 25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 공원에서 열린 '낙농 말살 정부·유업체 규탄! 강원도 낙농가 총궐기대회'에서 원유를 큰 통에 쏟아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낙농인들이 25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 공원에서 열린 '낙농 말살 정부·유업체 규탄! 강원도 낙농가 총궐기대회'에서 원유를 큰 통에 쏟아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포쓰저널=이현민 기자] 우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原乳) 가격 재산정 협상을 놓고 정부와 낙농가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원유를 용도별로 나눠 마시는 우유와 치즈나 버터를 만드는데 쓰이는 가공유로 분류하고 이 둘의 가격을 차등화하는 '원유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개편안에 낙농가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와 낙농가의 갈등 속에 정부 정책을 반기는 유가공업체들은 먼저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가격 협상을 거부, 이달 1일부터 적용되는 새 원유 가격은 정해지지도 못했다.

낙농업계가 우유 납품 거부까지 거론하며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무더위로 원유 생산량마저 줄고 있어 우유를 시작으로 관련 유제품의 잇따른 가격 인상이 우려되고 있다.

◆ 정부, '원유 용도별 차등 가격제' 추진...우유-유제품 원유 가격 다르게

2일 유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낙농가는 원유가격 논의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달 28일 한국낙농육우협회와 정부 간의 신뢰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협회와의 논의를 중단했다.

원유 가격은 유가공 업체와 낙농가 관계자로 구성되는 '원유기본가격 조정협상 위원회'가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축산물 생산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원유 납품 가격을 결정해 8월 1일부터 적용하는데 올해는 위원회 조차 꾸려지지 못했다.

정부와 낙농가간의 갈등의 핵심은 정부가 기존 '생산비 연동제' 대신 추진하는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다. 

원유를 수요가 줄고 있는 음용유(마시는 우유)와 수요가 늘고 있는 치즈나 버터를 만드는데 쓰이는 가공유(가공우유제품)로 분류하고 이 둘에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다. 

2013년 부터 시행되온 기존 '생산비 연동제'는 원유의 용도와 상관없이 생산비에 따라 원유 가격을 책정하고 정부가 낙농가의 원유 납품 물량을 일정 수준 보장한다. 낙농업의 국가 기반사업적 성격을 고려한 것인데 우유 소비가 줄어도 원유 가격이 계속 오르는 구조로 정부가 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농가 예상 생산량인 음용유 원유 물량 195만톤(t)은 기존처럼 리터(ℓ)당 1100원, 가공유 원유 물량 10만톤은 기존보다 300원 낮은 리터당 800원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원유값 개편을 둘러싸고 낙농업계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과 관련해 "지금 이대로 두면 몇 년 안에 낙농산업이 망한다"며 "우리 낙농을 지키려면 가격결정 체계를 바꿔줘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우유 자급율은 2020년 48.1%에서 지난해에는 45.7%까지 떨어졌다. 2001년 1인당 시유(시중에 내놓은 우유) 소비량도 2001년 36.5㎏에서 지난해 32㎏까지 감소했다.

시유소비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유제품 소비량은 20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다. 농식품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치즈, 버터, 아이스크림 등 유가공품을 포함한 전체 유제품 소비는 2001년 63.9㎏에서 지난해 86.1㎏까지 증가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유제품을 위한 가공유 시장을 키워야 하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유제품이 국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며 “2026년 예정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흰 우유에 대한 관세까지 철폐된다면 국내 낙농 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 수입 유제품과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차등된 가격 결정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낙농인 소득 감소..모든 원유에 같은 생산비 들어"

반면 낙농업계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정부의 주장과가 달리 낙농인들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제도라며 새 가격제의 도입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낙농육우협회는 2월부터 여의도 국화 앞에서 무기한 농성투쟁을 벌여며 새 원유가격제도를 반대해왔다. 11일에는 충남을 시작으로 전북, 충북, 경북, 경남, 강원에서 궐기대회를 열고 집회 및 우유반납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국내 농가는 원유를 생산할 때 음용유와 가공유를 따로 구분해서 생산하지 않으며 모든 원유에 똑같은 생산비와 노동력이 들어간다”며 “정부가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의도적으로 분류해 정상가격을 삭감하려 하니 소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낙농협회는 사료값이 폭등하고 부채도 늘어나는 와중에 정부가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면 농가의 손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며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사료값은 2020년 대비 30%이상 폭등하고 있다. 낙농가의 호당 부채가격은 지난해 기준 5억1200만원으로 2년 사이 39.5% 증가한했다.

또 지난해 폐업한 낙농가는 전년대비 67%까지 증가했다. 올해 원유생산 전망치는 2020년 대비 6.6% 감소한 195만2000톤으로 우유공급부족사태를 겪었던 2011년 구제역 파동 수준이다.

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차등가격제가 도입될 경우 유업체는 정부가 정한 음용유물량(85.5%)까지 낙농가의 정상 쿼터(몫)를 삭감하고 낙농가는 삭감된 물량에 대해 생산비에도 못미치는 800원 내지 100원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낙농업 관계자는 “현재 정상가격을 보장하는 국내 쿼터총량은 220만톤으로 그 이상을 초과한 물량에 대해서는 리터당 100원이 적용된다. 그런데 정부의 차등가격제가 제시한 음용유 정상가격물량은 195만톤, 가공유는 10만톤”이라며 “이 둘을 합쳐도 205만톤으로 쿼터물량 220만톤에 못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차등가격제를 도입은 정상쿼터를 삭감하는 꼴이 된다”며 “정부에서는 쿼터제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명확히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낙농가간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며 우유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낙농업계가 원유 납품 거부를 경고한 상태에서 무더위로 원유 생산량까지 줄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원유 공급 부족으로 이달 말까지 제품 미납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내용의 공문을 최근 유통업체에 보냈다.

한 우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낙농가에서는 납유 거부 의사까지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우유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며 “우유 가격이 오르면 빵, 아이스크림 등 기타 가공제품들의 가격도 연이어 상승하면 밀크플레이션(우유제품 발 물가인상)이 현실화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일 큰 피해는 소비자들이 입게 된다.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낙농가가 하루빨리 원활한 협상을 진행해서 좋은 절충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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