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상호관세 15%로 인하…자동차·반도체·의약품 모두 적용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확정…조선 1500억달러·전략 투자 2천억달러
자동차·농업·디지털 등 비관세장벽 정비…미 자동차 5만대 상한 폐지
“정상회담 합의를 문서로 완성”…향후 세부 이행 협의가 관건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 대훈장.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https://cdn.4th.kr/news/photo/202511/2100343_185683_933.jpg)
[포쓰저널] 한미 양국이 진행해 온 관세·무역·투자 협상이 14일 공개된 ‘한미 공동팩트시트(Joint Fact Sheet)’ 발표로 최종 마무리됐다.
10월29일 경주 한미정상회담 직후 발표될 예정이던 문건이 2주 가까이 지연되면서 미국이 일정 부분 이견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이날 공개된 팩트시트는 정상회담 당시 양국이 발표한 주요 합의를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
다만 일부 문구는 더 구체화되거나 조정되면서 사실상 양국 간 협상의 마지막 잠금 단계가 완료된 것으로 평가된다.
백악관은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회담 관련 공동팩트시트’를 공개했다.
문건에는 7월 큰 틀이 마련되고 지난달 말 정상회담에서 조율이 마무리된 관세 조정, 대미 투자 계획, 산업 협력 강화, 비관세장벽 정비, 외환시장 안정 장치 등 폭넓은 분야의 합의가 정리됐다.
각 항목은 정상회담 직후 양국 정부가 설명했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지난 4월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부과되는 상호관세 적용 대상 가운데 한국산 자동차·자동차부품·목재·목재 파생물 등에 대해 기존 25% 수준의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다.
이는 한국이 우려했던 ‘자동차 관세 25% 장기 부과’ 가능성을 사실상 해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건에는 “추가 관세 부과는 없다”고 명시돼 관세 상한을 분명히 제한했다.
의약품과 반도체 분야에서도 관세 우려가 상당 부분 정리됐다.
정상회담 당시 양국이 합의한 내용대로 미국은 의약품에 최혜국대우(MFN)를 적용하고, 제네릭(복제약)에 대해서는 무관세를 적용한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일부 제약품은 100% 이상 초고율 관세 부과 가능성’ 우려는 공식적으로 해소된 셈이다.
반도체·반도체 장비에 대한 관세는 논란이 컸던 분야다.
미국은 아직 최종 관세율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팩트시트에는 “한국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반도체 교역 규모를 갖는 미래 협정에 포함될 수 있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조건을 한국에 제공한다”고 적시했다.
이는 사실상 ‘한국이 대만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의미로, 정상회담 직후 대통령실 브리핑과 동일한 수준의 보장이 문서로 명문화됐다.
이번 팩트시트는 대미 투자 계획도 상세하게 정리했다.
한국은 총 3500억달러 규모의 직접 투자를 약속했다. 이 가운데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 투자에 배정되며, 이는 정상회담 직후 양국이 발표한 내용과 동일하다. 나머지 2000억달러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장기 투자 형태로 이행된다.
투자 대상 분야는 조선·에너지·반도체·제약·전략광물·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등으로 제시됐지만, 문건에는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추가돼 사실상 전 산업 분야에 한국의 투자 문이 열려 있음을 시사했다.
백악관도 “경제·국가안보 이익 증진을 위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한국 투자를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는 가까운 시일 내에 한미 양국 대표 간 서명이 이뤄질 것으로 조건부 명시됐다.
그간 양해각서(MOU) 체결이 지연되면서 국내에서 ‘자동차 관세가 다시 25%로 오르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제기됐지만, 이번 문건으로 대다수 우려는 상당 부분 차단됐다는 평가다.
자동차·농업·디지털 규제 등 비관세장벽 분야에서도 양국은 기존 설명과 동일한 합의를 확정했다.
미국 안전기준(FMVSS)을 충족한 차량을 한국 기준으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적용되던 연간 5만대 상한이 폐지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자동차 수입 규모가 4만7천대 수준이어서 단기적으로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농업 분야에서는 바이오 농산물 관련 승인 절차 개선, 미국산 원예 제품 전용 ‘미국 데스크(U.S. Desk)’ 설치, 미국산 육류·치즈의 시장 접근성 유지 등이 확인됐다.
디지털·데이터 분야에서는 양국이 망 사용료, 플랫폼 규제 등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비차별을 보장하고, 위치정보·보험·개인정보 등을 포함한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번 팩트시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외환시장 안정’ 조항이 별도 섹션으로 포함된 점이다.
이는 지난달 정상회담 이후 외환유출 우려가 증폭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문건은 “한국 외환시장이 불안정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하면서, 한국은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방식으로 달러 조달을 요구받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는 사실상 2000억달러 투자 이행 과정에서 급격한 자본 유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또 한국은 투자 재원 조달 시 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경로를 우선 활용하기로 했으며, 투자 이행 과정에서 원화 변동성이 비정상적으로 커질 경우 조달 시기·금액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대응에 관해서는 “신의를 가지고 적절히 검토한다”는 원칙적 표현이 담겨 구체적인 의무 조항은 아닌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한국의 조정 요청이 반드시 수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환율 영향에 대한 우려도 남아 있다. 2000억달러의 장기 투자가 10년간 연평균 200억달러씩 외환시장에서 빠져나갈 전망이어서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환율은 최근 1475원까지 급등했다가 외환당국의 구두개입과 팩트시트 발표 기대감으로 1450원대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구조적 압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금융권에서는 “조달 방식이 어떻든 투자 총액이 환율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공동팩트시트는 정상회담 당시 발표된 내용을 공식 문서로 확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다만 투자 이행 방식, 비관세장벽 추가 조정, 외환시장 안정 조치 실효성 확보 등은 향후 추가 협의를 통해 더 구체화될 전망이다.
양국은 조만간 열릴 KORUS 공동위원회를 통해 후속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