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세이보리언의 멸망' 등 작품
중앙유럽 서사 전통 계승자.."구원의 부재와 기다림의 허무"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László Krasznahorkai)./afp연합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László Krasznahorkai)./afp연합

[포쓰저널]  스웨덴 한림원은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헝가리 작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71· László Krasznahorkai) 를 선정했다고 9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한림원은 시상 이유로 “묵시록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 예술의 힘을 다시금 확인시키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 위원장 안데르스 올손은 크라스나호르카이를 “카프카로부터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중앙유럽 서사 전통의 계승자이자, 동서양 사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인적 서사 작가”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의 문학은 묵시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지속적 힘을 믿으며,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창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임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1954년 헝가리 귀라(Gyula)에서 태어난 크라스나호르카이는 동유럽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고향인 귀라의 외딴 시골 풍경은 훗날 그의 문학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적 원형이 되었고, 특히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사탄탱고'(Sátántangó) 의 주요 배경으로 다시 등장한다.

그는 1985년 장편소설 '사탄탱고'로 데뷔해 헝가리 사회주의 체제 말기의 황폐한 인간 군상을 독창적인 서사 구조로 그려내며 주목을 받았다. 

1985년 출간된 사탄탱고는 헝가리 문단에 충격을 던진 대작으로, 몰락 직전의 헝가리 사회주의 농촌을 무대로 절망과 구원을 동시에 기다리는 인간 군상을 그렸다.

작품은 버려진 집단농장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리미아시(Irimiás) 와 그의 동료 페트리나(Petrina) 의 등장으로 요동치는 과정을 그린다. 주민들은 그들을 구세주이자 심판자로 여기지만, 결국 그들의 거짓과 기만에 스스로 묶여버린다.

작품 서두에는 카프카의 경구인 “그렇다면 나는 기다리다가 그 일을 놓치겠군”이 인용되어, 구원의 부재와 기다림의 허무라는 주제를 예고한다.

이후 '세이보리언의 멸망'(The Melancholy of Resistance), '종말의 철학'(Théseus), '세페이와 그의 아들들' 등 연작을 통해 문명의 붕괴, 인간의 절망과 구원, 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 세계는 긴 문장과 순환하는 서사, 예언적 이미지와 묵시록적 정조로 특징지어진다. 인류 문명이 스스로 만들어낸 혼돈과 불안 속에서도 예술의 힘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이 그 문장 곳곳에 흐른다. 

한림원은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문학은 절망과 혼돈의 끝에서도 예술이 인간 정신의 존엄을 회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그의 언어는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포착한다”고 평가했다.

대표작 '사탄탱고'는 쇠락한 마을에 몰락한 인간들이 절망 속에서도 허망한 구원을 좇는 과정을 탱고의 12장 구성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1994년 헝가리 영화감독 벨라 타르(Béla Tarr)에 의해 7시간 30분짜리 영화로 제작돼 세계 영화사에서도 전설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또 다른 걸작 '세이보리언의 멸망'은 순회 서커스단이 몰고 온 거대한 고래와 괴물 조각상을 매개로 문명의 광기와 예술의 붕괴를 그린다. 

문학평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크라스나호르카이가 프란츠 카프카와 토마스 베른하르트, 사뮈엘 베케트의 계보를 잇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한다.

크라스나호르카이는 이미 여러 국제문학상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어왔다. 2015년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을, 2019년에는 국제 이스트 센트럴 유럽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사탄탱고'와 '세이보리언의 멸망'이 번역·출간돼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번 결정에 대해 “크라스나호르카이의 문학은 현대 문명이 직면한 종말적 위기 속에서도 인간의 상상력과 예술의 지속 가능성을 탐구한다”며 “그의 작품은 절망 속에서도 창조를 멈추지 않는 인간 정신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상으로 크라스나호르카이는 헝가리 출신으로는 임레 케르테스(Imre Kertész)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됐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며, 그는 메달과 함께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 원) 을 받는다.

올해 노벨상은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에 이어  10일 오후 6시 평화상(노르웨이 오슬로 노벨위원회), 13일 오후 6시45분 경제학상(스웨덴 왕립과학원) 순으로 발표된다.

대한민국 국적자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및 민주화 기여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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