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학술원 외교안보 전략 포럼
전문가들 ‘능동적 동맹 전환’, ‘전략적 자율성 확보’, ‘AI 생태계 설계’ 등 한 목소리
"주한미군, 북 아닌 중국 견제..한미동맹 구조 재설계 기회 삼아야"

[포쓰저널=성은숙 기자] 글로벌 안보 질서의 재편, 기술 패권 경쟁, 북핵 위협, 공급망 전쟁까지. 복합 위기가 겹친 국제 정세 속에서 국내 최고 외교·안보·기술 전문가들이 “이제는 수동적 대응을 넘어서, 능동적이고 정교한 국가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5일 최종현학술원에 따르면 전날 ‘글로벌 복합 위기,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전략 방향’을 주제로 동아시아연구원,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공동으로 개최한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능동적 동맹 전환’, ‘전략적 자율성’, ‘AI 생태계 기반 기술안보’ 을 외교안보 전략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포럼에는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원장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재성 서울대 교수 △홍용표 한양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김형진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 손인주 서울대 교수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현철 서울대 교수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 △박종희 서울대 교수 △김양희 대구대 교수 △배영자 건국대 교수 등 국내 주요 외교·안보·기술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개회사에서 “나토 정상회의나 중국 전승절 참석 여부처럼, 단순히 ‘가야 한다’ 또는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외교적 선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며 “외교 정책은 전략과 원칙, 가치와 현실, 여기에 국내 정치적 고려까지 맞물리는 고도의 판단 영역”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제는 ‘최악을 피하는 선택’에 머물 것이 아니라, ‘최선에 가까운 전략’을 주도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미동맹은 △방위비 분담금 압박 △주한미군 역할 재설정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라는 세 갈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제는 수동적 대응을 넘어, 한국 주도의 ‘능동적 동맹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전작권 전환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주권 회복’ 차원이 아닌, 미국이 먼저 원할 때 수용하는 ‘전략적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건 미충족 상태를 반복하며 논의를 미루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조건에 대한 실질적 평가와 단계적 이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북핵 위협 대응과 확장억제는 한미 공동의 책무로, 일정 수준 이상의 주한미군 주둔 계속되어야 한다”며 “그러나 기존의 연합방위 체제에 안주하는 접근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은 “한미동맹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이 변화에 맞서기보다는, 주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능동적 동맹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핵 억제, 역내 세력균형 유지, 확장억제 강화라는 공통의 전략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그 토대 위에서 동맹의 미래를 능동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이재명 정부는 아직 구체적 대북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한미동맹 기반의 억제 전략과 함께 경제적 지렛대, 중국과의 조정 외교, 조건부 남북협력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합한 전략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김정은 체제는 생존 유지, 핵억제력 완비, 국제적 위상 강화, 그리고 동북아 세력균형 변화라는 복합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며 “최근 북러 군사협력 강화와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 조정, 남북 ‘두 국가론’의 공식화는 이러한 목적에 기반한 대외전략”이라고 진단했다.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북한 내 물가·환율 급등과 식량난, 외환시장 불안정 등은 주민들의 생활고를 심화시키고 있다”며, “북한 정부의 통제가 시장 왜곡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시아와의 교역은 군사기술 획득을 제외하면 실질적 경제 회복 효과가 낮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은 실용외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강조했다. 그는 “역대 정부 모두 실용외교를 강조했지만, 매번 구조적 제약에 부딪혔다”며 이는 “이념과 국익, 대외 목적과 대내 정치가 충돌하는 한국 외교의 근본적 한계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홍 전 장관은 “실용외교는 이분법적 사고의 탈피에서 출발해야 하며, 지금은 북한의 정체를 직시하고, 현실적 안보 기반 위에서 대화와 협력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며,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표방하되, 안보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균형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대화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국민의 안보와 안전을 담보하는 현실 기반의 협력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한반도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중간 상태(No war, no peace)에 놓여 있으며, 단순한 낙관이 아닌 정교한 전략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화를 유도하려면 유인책뿐 아니라 압박도 병행해야 하며, 대화의 명칭·형식·내용에 대해서도 전략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존 남북 대화와 합의에는 평화, 통일, 민족, 국가적 요소가 함께 담겨 있었다”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을 유인할 전략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정부의 대일 전략과 관련해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불확실해지는 가운데, 일본은 미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재조정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 역시 탈이념적 관점에서 전략적 협력 기반을 일본과 함께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일본의 전략을 △플랜 A(미일동맹 기반 질서 유지)와 △플랜 B(자율성 확대 및 과잉의존 축소)로 구분한 뒤, “두 접근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한국과의 실질적 협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역사 문제에 집중하는 접근은 현실적 위협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며, “지금은 전략적 사고 위에서 미래지향적 대일외교를 설계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대중 전략에 대해 손인주 서울대 교수는 중국의 외교 행태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불안정성을 지적했다. 손 교수는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민족주의와 역사 회복 담론을 앞세워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체제의 불안정성과 구조적 긴장을 동시에 안고 있다”며, 중국의 ‘이중적 성격’을 짚었다.
손 교수는 이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략으로 △법치와 자유에 기반한 ‘원칙적 다원주의’와 △‘동심원(Co-centric)’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아세안,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과의 다자 협력망을 단계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중국 리스크를 완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동의 회복탄력성을 높이자는 구상이다.
특히 한·미·일 간의 ‘2+2+2’ 협의체 신설을 제안하며, “한·일 양국이 미·중 전략경쟁의 파열음을 완충하고, 지역 불안정성에 공동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규칙 기반 국제질서의 약화와 함께 세계는 미국·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강대국 정치의 다극화, 즉 ‘얄타 2.0’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며 “한국은 자강, 연대, 포용의 세 축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강의 측면에서 “트럼프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진영은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며, 어떠한 외부 변수 속에서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연대 전략에 대해 “동맹에만 의존하기보다는 G7, EU, 일본, 호주, 싱가포르, 캐나다 등 규칙 기반 질서를 중시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와 관련해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호혜적 협력도 필수”라며,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비민주주의 국가에 거주하고 있으며, 외교지평을 넓히지 않으면 경제와 안보 모두에서 외면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권석준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은 파운드리, 그래픽처리장치(GPU), 공정장비까지 반도체 전 영역을 아우르며 AI 생태계로 고속도로를 구축하고 있다”며 “한국은 제조업 기반의 AI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화웨이, 딥시크, 알리바바 등 중국 핵심 기업들이 반도체부터 인공지능(AI) 모델에 이르는 풀스택 생태계를 빠르게 내재화하고 있다”며 “특히 3기 반도체 빅펀드를 계기로 단순 생산을 넘어 에너지, 바이오, 통신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산 장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파운드리, 장비, 칩 수요기업까지 삼중 보조금 체계를 가동하며 생태계를 통합해가고 있다”며 “첨단 기술력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속도와 자본, 인재풀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특히 미국·대만·중국이 얽힌 ‘실리콘 트라이앵글’ 구도에서 미국의 리쇼어링 전략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TSMC와 삼성전자가 미국 본토에 3나노 이하 공정을 유치하며 미국은 2030년까지 전체 첨단 반도체 생산의 20~30%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만의 지배력은 줄고, 그 공백을 한국이 채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AI 패권 전략과 관련해서는 “5000억 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백악관이 최근 발표한 ‘AI 액션 플랜(Winning the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은 동맹국에게 생태계 참여를 사실상 요구하고, 중국을 배제하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전환기에서 한국은 반도체 생산 역량을 기반으로 미국의 전략적 기술 파트너로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대응 전략에 대해 권 교수는 “기존의 ‘거대 AI 모델 중심 패러다임’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향후에는 특정 목적에 특화된 AI 반도체와 이를 제조업에 접목하는 기술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AI 팹센터, 통신망, 전력망, 산업용수 등 인프라에 대한 장기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이는 단기 정권 차원의 정책이 아닌,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국가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공항이나 KTX보다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AI와 제조업의 융합을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진국이 한국”이라며 “글로벌 산업 구조가 빠르게 다변화되는 지금이야말로 AI-제조 융합 전략을 통해 도약할 기회를 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종희 서울대 교수는 한국형 인공지능(AI) 전략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AI 패권 경쟁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도 생태계 설계에 달려 있다”며, 미국식 시장 주도형 모델도, 중국식 국가 개입형 모델도 아닌 ‘제3의 길’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애플은 수백 명의 AI 연구진을 보유하고 있지만 내부 보안과 통제가 지나쳐 혁신을 가로막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조차 OpenAI와의 제휴로 방향을 틀었을 뿐 내부 기술로 승부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강점으로 △세계적 반도체 생태계 △제조업 기반의 디지털 수요 △정부의 전략 기획 역량 △우수한 인재 풀을 꼽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AI 생태계 중심의 도약 전략’을 제안했다.
핵심은 정부가 산업의 ‘주도자’가 아닌 ‘인프라 설계자·인센티브 조정자’로 역할을 전환하고, 대기업은 자산과 플랫폼을 공유하며, 스타트업이 고위험 혁신을 주도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대기업-스타트업-정부-대학-VC'로 구성된 5자 분업 생태계 모델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또한 박 교수는 한국의 AI 생태계가 K-POP의 세계화 전략처럼 대규모 투자, 인재 육성, 공정 보상, 창의 자율성이 조화를 이루는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제언으로는 △GPU·데이터 인프라 확보 △스타트업 종합상사 모델 도입 △보편적 보조금 체계 △계약 표준화와 지식재산 보호 등이 포함됐다. 특히 한국어 특화 모델을 위한 ‘소버린 AI 컨소시엄’ 구축과 반도체-바이오-국방-지능형 제조 분야의 전략적 집중 투자를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