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당신의 아들과 딸,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린다

필자의 어머니는 43년생 말띠다. 2024년 9월 창원파티마 병원에서 위암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43년생 말띠다. 2024년 9월 창원파티마 병원에서 위암4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나의 어머니는 위암4기 환자다. 나의 어머니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절대 일어날 수 없는일이라는 것은 관행의학(혹자는 주류의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의 입장이다. 관행의학계는 의학교과서를 바이블처럼 맹신하며, 의학교과서에 기록된 관행에서 한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나의 어머니는 매일매일 기적을 써 나가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큰일을 보고 있다. 관행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머니는 이미 심각한 변비 증상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어머니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하루 세 끼를 꼬박 드시고 있다. 하루 세 끼를 먹는 다는 것.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위독한 환자가 밥을 먹는다면 말이 달라진다. 관행의학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루 한끼도 겨우 먹어야 하고, 그마저도죽과 같은 유동식만 먹어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매일매일 운동을 한다. 하루 4km 정도 걷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께서 하루 4km를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종양 내과 의사가 내게 보낸 경멸의 시선을 잊지 못한다.

관행의학계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어머니는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고 있다. 어떠한 항암제도 복용하지 않았다. 그어떤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았다. 입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매일매일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집안 청소를 하고 있다.

관행의학계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바라본다면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에 불과하다. 소위 말하는 기적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다르다.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다. 수많은 서적을 뒤적거렸다. 수없이 많은 강의 영상을 보고 들으며 공부했다. 왜냐고? 왜그렇게 했느냐고? 간절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간절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일이 죽도록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십 수년의 부모님 간병 경력을 갖고 있다. 부모님 간병에 투자한 시간만 10만 시간이 넘는다. 그 시간을통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관행의학계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비주류의학, 비관행적 의학, 제3의 의학이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기록을 남긴다. 나처럼 그 누군가도 간절히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내와 딸. 그들을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니까. 그들을 위한 정보는 있어야 하겠기에.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정치인들, 행정가들, 언론인들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제도가 바뀌지 않고, 관행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누군가를 살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만 가지고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써 내려가는 글을 읽을 때 두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하나는 관행의학적 치료를 절대악으로 생각하거나 또는 내가 관행의학적 치료를 받으면 안된다고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비극은 절대적인 선과 악을 나누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비판하려는 것은 관행의학만이 옳다는 편협한 시각과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합리성이 결여된 사고체계다. 그 누군가에게는 관행의학적 치료가 가장 효율적인 치료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내게 이메일 등을 통해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까요? 수술을 받아야 할까요? 방사선 치료를 포기할까요? 이런 질문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하나는 내가 써내려 가는 글은 바이블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일은 ‘절대’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것이다. 여러분이 나와 같은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고.

내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사람이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에 맞는 판단과 상황에 맞는 대처만 있을 뿐이다. 절대적인 지식은 없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체질이 다르며, 수십년 동안 누적된 습관도 다르다. 경제적인 상황도 다르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절대적 기준이란 것은 없다.당부할 사항도 하나 있다. 여러분이 판단의 근거를 갖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과학적 지식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대학교수님들처럼 많은 지식을 쌓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과학적 문맹 상태라면, 스스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러니 나의병을 치료하는데 또는 나의 가족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기초지식은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두려움에 떨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이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나 또한 과학 문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쓸 수 있을만큼 지식을 쌓았다.

나는 나 스스로를 간병계의 1타 강사라 자부한다. 1타 강사 답게 아주 쉬운 말로 바꿔서 여러분들께 설명해 줄것이다. 오랜 시간 부모님 간병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우리말이 아주 요상 하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많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아주 우연히 그 원인을 알게 됐다.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용어, 법률용어, 학문용어들이 실제로는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용어를 번역하지 않고, 한자음을 우리식 발음으로만 바꾼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과학, 법률 용어들은 일상에서 사용되는 단어들과 상당한 괴리가 있다.

그래서 앞으로 암이 발생하는 원리, 암이 악화되는 원리, 암을 치료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할 때, 과학 용어로 설명하지 않고 대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신조어로 설명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혈당스파이크라는 말은 血糖+Spike로 만들어진 용어이다. 혈당 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렵다. 혈당스파이크가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려면, 혈당이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혈당스파이크라는 용어를 <피속의 설탕 폭발 현상>이라는 말로 바꿔서 설명할 것이다.

학술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말일지는 모르지만, 대중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더 적절하다 생각한다. 누군가피속의 설탕 폭발 현상이라는 말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말을 제시해준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그 의견을 수용할 것이다.

학문적 고상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한걸음 한걸음 내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약간의 두려움은 여러분의 간절함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의 간절함과 여러분의 간절함이 하나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다. 여러분의 기도와 나의 기도가 이 세상이 바뀌는 한알의 밀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일상을 되찾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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