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취소위원회, 한국 정부 주장 인용
론스타, 한국정부 소송 비용도 변상해야
외환위기 여파 외환은행 매각 분쟁 마무리 수순

[포쓰저널]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외환은행 매각 분쟁과 관련해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 절차에서 최종 승소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론스타 ISDS’가 한국 정부의 완승으로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8일 오후 브리핑에서 “론스타 ISDS 취소 절차를 심리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정부와 론스타 양측의 취소 신청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승소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이에 따라 ICSID가 한국 정부에 부과한 론스타 배상금 2억1650만 달러와 지연 이자가 모두 취소됐다”며 “오히려 론스타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지출한 소송 비용 73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총리는 승소에 대해 "국가 재정과 국민 세금을 지켜낸 중대한 성과이며 대한민국의 금융감독 주권을 인정받은 것"이라며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의 성공적 개최, 한미중일 정상외교, 관세협상 타결에 이어 대외 부문에서 거둔 쾌거"라고 평가했다.
또 "(승소는) 그동안 법무부를 중심으로 정부 관련 부처가 적극적으로 소송에 대응한 결과"라며 "국민께서 뜻을 모아주신 덕분에 국운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12·3 내란 이후 대통령도, 법무부 장관도 부재한 상황에 직원들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런 성과가 모여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며 "금감원 등 다른 부처 관계 공무원의 노고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2022년 8월 ICSID 중재판정부가 내린 배상 판정 자체를 뒤집는 데 성공했다.
당시 ICSID는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액 46억7950만 달러의 4.6%에 해당하는 2억1650만 달러를 한국 정부가 지급하라고 판정한 바 있다.
이후 정부의 정정 신청이 일부 받아들여져 배상금은 2억1601만8682달러로 감액됐지만, ‘세금으로 수천억을 론스타에 줘야 한다’는 부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번 취소 절차는 론스타와 한국 정부가 모두 ‘원 판정에 불복’하면서 본격화됐다.
론스타는 배상액이 지나치게 적다며 2023년 7월 판정 취소 신청을 제기했고, 정부 역시 같은 해 9월 판정부의 월권과 절차 규칙 중대한 위반을 이유로 전면 취소와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
ICSID 취소위원회는 양측 신청을 심리하는 동안 판정 집행을 잠정 정지했고, 이 조치는 취소 신청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무기한 유지돼 왔다.
분쟁의 발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론스타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3년 외환은행을 약 1조3834억원에 인수한 뒤, KB국민은행·HSBC·하나금융지주 등 여러 매수자와 매각 협상을 진행했다.
결국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에 외환은행을 넘겼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과 매각 가격 인하 압박 등으로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ICSID에 제소했다.
론스타가 주장한 손해액은 46억7950만 달러, 한화로 6조원대에 달했다.
론스타 측은 한국 정부의 개입 때문에 더 높은 가격에 외환은행을 팔 기회를 놓쳤고, 결국 매각가를 낮추는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 정부는 금융당국의 승인은 공공성을 고려한 정당한 규제 권한 행사이며, 조세 부과 역시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과 국내 세법에 따른 것이어서 투자자 차별이나 부당 개입이 아니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ICSID 중재판정부는 2022년 8월 첫 판정에서 론스타의 주장을 상당 부분 배척하면서도,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 등 일부 책임을 인정해 ‘부분 승소’ 취지로 2억 달러대 배상액을 산정했다.
이 판정 이후 정부는 배상금 산정 과정에 중대한 계산 오류가 있다며 정정을 신청했고, 중재판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소폭 감액이 이뤄졌다.
그러나 정부는 “애초 배상 책임 자체가 인정돼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며 전면 취소 절차 착수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번에 ICSID 취소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당시 중재판정부의 판단은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배상금뿐 아니라 이자 부담까지 모두 사라졌고, 한국 정부는 소송 비용을 론스타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으로 수천억을 론스타에 지급해야 한다’는 우려를 일거에 해소한 셈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히 한 건의 굵직한 국제중재 사건이 끝났다는 의미를 넘어, 향후 한국 정부의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 대응 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론스타 사태는 한국의 금융·조세 규제,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 외국계 자본의 ‘먹튀 논란’이 뒤얽힌 대표적 분쟁으로, 국내 정치·사회적 논란도 컸다.
ICSID 취소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취소 신청을 받아들임에 따라, 그동안 제기됐던 정부 책임론과 협상 과정의 투명성 문제를 둘러싼 재평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다만 론스타가 이번 결정 이후 추가적인 법적 대응을 시도할 가능성, 국내외 민사·행정 소송과의 연계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