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 "10억달러 이상 절차 간소화..100억 달러이상은 최고 대우"
안덕근 산자부 장관, 이번주 방미 예정

[포쓰저널=문기수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총괄하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중인 한국 기업인들과의 면담에서 대미 투자를 종용하면서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라는 기준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2기의 '관세 폭탄'과 반도체 보조금 재검토 등으로 대미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머릿속도 한층 복잡해지게 됐다.
한국 통상 수장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르면 이번주 미국을 방문해 러트닉 장관과 만나 통상 정책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이끄는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은 21일 오전(현지시간) 러트닉 장관 취임 선서식에 앞서 러트닉 장관과 따로 만나 40여분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러트닉 장관은 한국 경제 사절단에게 미국 제조업에 가능한 한 많이 투자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며 '최소한 10억달러의 투자를 원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억달러 투자부터 미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 가능하니 그 정도를 하면 좋겠다고 설명하는 취지였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면담 당시 공식 취임 전이던 러트닉 장관은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전담 직원을 배치해 심사 허가 등의 절차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100억달러(14조원) 이상을 투자하면 그 이상의 최고급 대우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억달러 미만의 투자에 대해서도 미국 정부가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도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러트닉 장관의 선서식 이후에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에서 동맹의 대미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한" '패스트트랙'(fast-track) 절차를 신설하겠다고 했으며, 또 10억달러를 넘는 대미 투자에 대한 환경 평가를 신속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투자를 약속하면 당장 1년 안에 착공과 같은 구체적인 추진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대미 투자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내야 한다는 입장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유정준 SK온 부회장, 성김 현대자동차 사장, 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장, 조석 HD현대 부회장, 주영준 한화퓨처프루프 사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등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21일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열린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 행사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어느 기업도 '트럼프 시기에 얼마를 하겠다'고 생각하며 다가가지 않고, 이게 내 장사에 얼마나 좋으냐 나쁘냐를 얘기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생산 시설을 좀 더 원한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인센티브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미국 측의 인센티브가 세금 인하 등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는 "꼭 돈만 갖고 따지는 게 아닐 수 있다.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인센티브가 있을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이 같이 해서 서로 좋은 것을 하는 게 지금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 "살 때는 더 싼 걸 사고 싶어 하고, 팔 때는 내걸 많이 파는 그런 관계만 있으면 상당히 삭막한 관계다. 이제는 단순히 상품 수출만으로 계속 먹고 살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며 "같이 활동해서 서로 시너지를 얻는 빅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해야 대한민국도 지금 같은 트렌드 파도에 잘 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미 투자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검토는 계속할 것이다. 비즈니스라는 게 필요한 투자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계속 (미국이) 세금도 내리겠다고 얘기를 하는데 아직은 뭐가 (구체적으로) 나온 게 없지 않나. 그러니까 좀 더 지켜봐야겠다"며 "그래야 계획을 짜거나 뭘 하는데 반영을 시킬 수 있는데 지금은 아직 뭐가 나온 게 없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미국이 비싼 인건비 등으로 인해 투자처로서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엔 "지금 그런 단계까지는 전혀 이야기한 게 없다. 상황이 산업 분야마다 다 다르다"며 "미국이 좀 불리한 것도 있지만, 미국이 유리한 것도 있다. 솔직히 인공지능(AI) 분야 등은 다른 데 투자하는 것보다 미국에 투자하는 게 지금 훨씬 좋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도 유리하고 좋은 곳에 투자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민간 경제사절단의 방미 성과를 묻자 "가능하면 그들(미국 측)이 흥미로워할 얘기를 한다는 게 계획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며 "같이 해서 서로 좋은 얘기가 있어야 되는 것을 준비해왔고, (미국 측이) 6개 분야를 다 상당히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한상의가 준비한 6개 분야는 조선, 에너지, 원자력, AI·반도체, 모빌리티, 소재·부품·장비 등이다.
사절단이 만난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20여개의 경제사절단을 만났으나, 이번 한국 민간 사절단과의 논의가 가장 생산적이었다"면서 향후 추가 논의를 지속하기로 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 집권 1기부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까지 8년에 걸쳐 1600억 달러, 약 230조원 규모를 미국에 투자했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2023년 최다 대미 투자국은 한국이었다고 보도했다. 2023년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215억 달러(30조6800억원)에 달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르면 이번주 미국을 방문, 러트닉 장관과 만나 트럼프 2기에 접어들어서도 반도체 과학법에 따른 투자 보조금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생산 보조금 등의 골간이 유지되야 한다고 설득할 전망이다.
안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의 첫 회담에서 에너지 수입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질 경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별한 챙기는 알래스카 석유·가스 개발 사업에 민·관 차원 참여 관심 의향을 표명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10조원대 자금 투입이 예상되는 미국 대형 제철소 신규 건설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도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