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의무없다면서 무단결근 이유로 수당 미지급
법원, 안이한 판단으로 관행화된 갑질 공인해줘
공정위, 노동부도 설계사 처우 문제엔 "관할 아니다"

이 기사는 2021년 7월31일자 본지 <[보람상조 수당사건] "11월치는 지급유예, 12월치는 소멸"..극악갑질 추인한 법원> 기사의 후속 내용입니다. (아래 관련기사 참조)

2019년 12월 보람상조 수당 사건

 

[포쓰저널] 보람상조 수당사건에서 법원이 보람상조의 2019년 12월말 수당 무더기 미지급을 '체불'이 아니라고 판단한 근본원인은 사측이 설계사들과 체결한 위탁계약서에 있다. 

보람상조측이 법원에 제출한 계약서(보람 전속 L.C 위탁계약서)를 보면, 이런 계약이 아직도 대한민국에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어이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조항 하나 하나가 치밀한 계산 하에 설계사들을 옭아매는 것들이다.

설계사는 형식상 근로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신분으로 상조회사와 계약을 체결한다.

이른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다. 특고는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 없이 종속적 근로관계에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다.

일종의 제도적 사각지대다. 정부는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과정에 특고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했지만 이들의 권리 보호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

상조회사의 감독관청은 공정거래위원회인데, 공정위는 상조 가입자인 소비자 보호에만 신경쓸 뿐 설계사들의 체불이나 갑질 피해 등에 대해선 오불관언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상조 설계사들의 민원고충은 접수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에서도 초기에 보람상조 설계사들은 지역 노동청에 수당체불을 신고하려 했지만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라"는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말이 좋아 자영업이지 실제로는 전근대적인 변칙 노동착취 수단으로 악용되는 게 특고의 현실이지만, 정부나 법은 아무런 보호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람상조도 특고에 대한 이런 제도적 허점을 백분 활용하고 있다.

위탁계약서라는 것도 노동자이면서 자영업자인 특고의 이중적 지위를  교묘히 이용해 설계사들을 통제하고 쥐어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계약서는 우선 "회사와 L.C 사이에는 고용 또는 근로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제3조)고 못박는다. 

그러면서 선심 쓰듯이 "따라서 출근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

근로기준법 상의 각종 규제를 피하려는 의도이지만, 출근의무가 없다는 건 설계사들에겐 메리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조차도 실제로 지키지고 있는 건 지는 의문이다.

보람상조 측은 이번 사건에서 11월치 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않고 '이직금지 각서'를 요구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첫머리에 설계사들의 '무단 결근'을 거론했다.

소장에 적힌 표현은 이렇다. "원고들(보람상조개발, 보람상조라이프)은 2019년 12월 일부 설계사들이 무단 결근하고 사무실에서 개인 집기마저 모두 정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그에 따라 원고들은 각 지역별로 무단 결근 중인 설계사를 파악하였는데 당시 해당 인원은 총 331명으로 확인되어..."

결국 보람상조 설계사들은 출근의무는 없는데 회사로 안나가면 무단결근이 되는, 이상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보람상조는 무단결근 때문에 그해 11월치 수당을 지급유예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스스로 주장했다.

실제로 보람상조는 2019년 12월31일 오후 무단결근했다는 설계사들에게 문자메시를 보내 '본인은 타사이적의 의사가 없습니다'라는 각서를 요구했고 이에 응한 설계사들에게만 그해 11월치 수당을 지급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당시 김병철 부장판사)와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합의13부(강민구 부장판사)도 이런 보람상조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 

수당 미지급이 무단결근에서 비롯됐으니, 설계사들에게 근본 잘못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논리적 사고만 할 수 있어도 말이 안되는 갑질이라는 걸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출근의무 없는 설계사들에게 무단결근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명백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계약서 상으로도 지급유예는 '계약 해지시'에만 할 수 있다고 돼있다.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수당지급을 거부하거나 미룰 수 있다는 조항은 계약서 어디에도 없다.

보람상조야 이런 갑질이 이미 관행화돼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다손치더라도 제3자인 판사들이 그에 동조하는 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사건 1,2심 판사들이 매우 사악하거나 아주 빈약한 사고력을 가진 자들이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보람상조 위탁계약서에는 이외에도 설계사들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각종 장치들이 여럿 적시돼있다. 

특히 수당과 관련해서는 지급유예 뿐아니라 청구권 소멸, 손해배상금 우선 공제, 위약벌 등 몰취 수단이 겹겹이 규정돼 있다. 

심지어 설계사가 보람상조 재직 시 지급받은 전속 수수료 전액을 토해내야 하는 경우도 적시돼 있다.

다음글에서는 보람상조 위탁계약서 상의 이런 각종 갑질 관행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고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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