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계약서, 설계사 수당 안줘도 되는 사유 갖가지
"계약해지시 최근 1월치 수당 90일간 지급유예 가능"
"계약관계 종료시 수수료 청구권도 소멸" 조항도
민법상 불공정 법률행위 가능성 높지만 버젓이 시행
법원은 되레 규정 확장해석해 사측 입장만 옹호

보람상조가 본지를 상대로 지난해 5월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최근 서울고법의 항소심 판결로 일단락됐다. 이 사건은 본지의 올해 1월7일 자 <보람상조 설계사들 "수당 무더기 체불..타사 이직 않겠다는 각서 써야 지급"> 기사에 대해 보람상조가 허위사실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시작됐다. 재판에서는 몇가지 쟁점이 부각됐는데, 법원은 보람상조의 주장 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이번 사건은 상조업계의 설계사들에 대한 구조적 갑질 행태와 법원의 노동 현실에 대한 안이한 사고수준을 동시에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향후 수차례에 걸쳐 이번 사건의 경위와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주>

보람상조 수당 사건

 

[포쓰저널] 이 사건은 보람상조가 2019년 12월 말, 설계사들의 11월치 수당을 무더기로 지급유예하면서 발생했다.

보람상조는 그해 12월31일 오후 소속 설계사들에게 단체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위탁계약서에 따라 이번달 수수료의 지급을 유예할 예정이다. 동종업체 겸업이나 이적, 위탁계약 해지 의사가 없는 설계사들은 [본인은 위탁계약해지 의사나 타사이적 의사가 없습니다]라는 문자로 답변주면 즉각 이번달 위탁수수료를 지급할 예정이다'는 내용이었다.

본지는 이 문자 발송 일주일 뒤 보람상조 관계자의 제보를 받아 이를 토대로 이 사건 기사를 작성, 보도했다.

기사 내용과 관련해 재판에서 다퉈진 쟁점은 4가지 였다.

즉 ① 보람상조의 수당 미지급이 '체불'에 해당하는 지 여부 ② 미지급 수당 총액 및 해당 설계사 수 ③ 보람상조가 설계사들에게 타사이직을 않겠다고 요구한 것이 '각서' 강요인 지 여부 ④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이 2019년 성탄절 직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담임목사로 있는 부산 교회 행사에 참석하도록 강요했는 지 여부 등이다.

법원은 본지 보도의 공익성을 긍정하면서도 쟁점 사실 중 일부는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당시 부장판사 김병철)는 ③, ④ 쟁점에 대해서는 본지 보도에 문제가 없다고 한 반면 ①, ② 쟁점에 대해서는 보람상조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진실성을 부인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합의13부(부장판사 강민구)도 일부 이유를 달리하긴 했지만 결론은 같았다.

첫번째로 다룰 사안은 ① 쟁점 부분이다.

본지는 보람상조의 수당미지급에 대해 제목과 본문에서 '체불' 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보람상조측은 소장에서 "무단 결근한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위탁계약 해지 의사를 확인하고 계약에 근거해 정산금을 지급유예했다"고 주장했다.

불법적이라는 뉘앙스가 강한 '체불'이 아니라 상호 계약에 따른 정당한 지급유예라는 것이다.

보람상조가 설계사들과 체결했다는 '보람 전속 L.C 위탁계약서'를 보면 실제로 수당지급 유예 조항이 있다.

위탁계약서 제15조 2항은 "회사는 계약해지 시 L.C(설계사)의 수수료 중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계약사항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90일간 지급유예할 수 있고, 회사가 가진 채권과 상계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람상조가 설계사들과 체결한 위탁계약서 제15조.
보람상조가 설계사들과 체결한 위탁계약서 제15조.

1심 재판부도 이 조항을 거론하며 "설계사들의 위탁계약 해지 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람상조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위 계약조항에 따라 그 수당의 지급을 유예한 것이고, 정당한 이유없는 수당의 지급 거절을 의미하는 '수당의 체불' 이 아니라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면서 "(이 부분 기사 내용은) 전체적으로 허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본지는 이런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하면서 그 이유로 크게 두가지를 들었다.

보람상조 내부 규정 및 관행 상 수당 지급일인 익월 28일인데, 회사 측이 11월치 수당의 지급유예를 통고한 문자메시지가 발송된 시점은 그 사흘 뒤인 12월 31일인 점에 비추어 '체불' 상태였다고 봐야한다는 취지다.

위탁계약서 제15조 2항은 수당 지급유예 조건으로 '계약 해지시'라는 상황조건과 '최종 1개월분'이라는 대상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보람상조의 당시 처분은 이들 2가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당시 상황이 계약 해지 상태가 아니었고, 설사 지급유예를 하더라도 그 대상은 11월치가 아니라 12월치 수당이 돼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본지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은 판결문에서 "보람상조는 설계사에 대한 월별 수수료를 다음달 28일에 지급하여 왔으므로, 사측이 설계사들에 대한 수당을 미지급한 2019년 12월말을 기준으로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는 '2019년 11월의 수수료'라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일부 설계사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위탁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에 따라 그 수당의 지급을 유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굳이 근로기준법 등을 들지 않아도 급여를 적시에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채무불이행이고 불법행위다. 그런 일이 보람상조에서는 당연하고 합법적일 수 있다는 것이 법원 판단의 골자다.

수당을 예정된 시점에 제때 주지 않아도, 이미 지급예정일을 넘긴 수당을 뒤늦게 줄 수 없다고 통보해도 '체불'이라고 명명하는 것조차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런 황당한 판단의 근거에는 위탁계약서가 있다.

보람상조 위탁계약서 제15조는 그 자체로 사측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설계사에게는 불리한 내용이다.

법원의 해석대로 한다면 보람상조는 설계사가 이직할 움직임만 보여도 언제든지 수당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

1개월치도 아니라 2개월치를 주지 않아도 된다.

이 사건에서 보람상조는 상당수 설계사들에게 실제로 11월분과 12월분, 두달치 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다.

12월 말에 11월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되니, 당연히 12월치 수당도 정상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보람상조 측은 이 사건 재판에서 두달치 수당 미지급도 위탁계약서 상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위탁계약서 제16조는 "회사와 L.C 사이의 위탁계약관계가 기간 만료· 해지 등으로 종료한 경우 L.C의 수수료 청구권도 동시에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람상조 측은 이 조항을 근거로 "12월 중에 계약해지한 설계사의 경우 12월 분 수수료는 해지 등으로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11월 분은 위탁계약서 제15조에 따라 지급유예할 수 있고, 12월분은 제16조에 따라 지급의무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보람상조에서는 설계사들이 다른 회사로 이직할 움직임만 보여도 회사는 직전 두달치 수당을 '정당하게'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보람상조가 설계사들과 체결한 위탁계약서 제16조.
보람상조가 설계사들과 체결한 위탁계약서 제16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지만 법원은 위탁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수용했다.

보람상조 등 상조회사 설계사는 형식상 자영업자이지만 사실상 피고용 노동자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분류된다.

정부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이들을 특고 노동자로 인정하고 소득보전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달부터는 고용보험에 가입하고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사실상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인정한 영향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위탁계약서 상 '갑질 문구' 마저도 사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적용했다.

위탁계약서 제15조 2항에 적시된 수당 지급유예 조건인 '계약 해지시'라는 상황조건과, '최종 1개월 분'이라는 대상 조건에 대해선 제대로 검토조차 않고 보람상조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결론을 냈다.

법원은 설계사들이 퇴직 의사를 나타냈는 지조차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

판결에서 '계약 해지시' 조건에 대한 판단도 명확히 하지 않았다. 1심 뿐 아니라 2심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계약해지시'라는 조건을 '설계사들이 이직할 움직임이 보일 때'까지로 확장해석한 셈이 됐다.

​지급유예 대상 조건인 '최종 1개월분'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사측에 일방적으로 기울어 진 것은 마찬가지다.

​보람상조 사측이 '각서 요구' 문자메시지를 설계사들에게 발송한 건 2019년 12월 31일 오후 4시 54분이다.

사실상 12월 영업이 끝난 시점이고,12월 실적에 상응하는 수당도 이미 발생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즉 실체적으로는 12월분 수당도 발생했고, 다만 그 지급시기만 규정에 따라 1월 28일로 미뤄진 상태라고 봐야한다.

결국 사측이 제15조 2항에 따라 지급유예할 수 있는 수당은 11월 분이 아니라 12월분이라고 봐야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법원 판단에 무슨 명확한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1심은 판결문에서 "체불 이 아니라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고 애매모호하게 표현했다.

2심은 좀더 신경을 쓰긴 했지만 논리가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2심은 "수당 지급을 다음달 28일에 지급하여 왔으므로, 12월말을 기준으로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는 11월의 수수료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2심의 이런 판단은 그 자체로 논리정합성이 전혀 없다.

12월분 수당은 아직 지급시기(다음달 28일)가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11월분이 위탁계약서 상의 '최종 1개월 분'이라는 한 것인데, 이는 수당이 발생한 시점과 이를 수령하는 시점을 헷갈려서 나온 판단이다.

12월 31일 오후라면 이미 그달 영업이 종료된 상태고 따라서 실적에 비례하는 수당도 이미 정해졌는데, 정산만 안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고 이치에 맞다.

판사들이 의도적으로 사측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닌한 이런 논리를 펴기는 힘들다.

더구나 수당 지급유예 관련 보람상조의 위탁계약서 규정은 그 자체로 정당성이 결여된 '갑질계약' 성격이 짙다.

민법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불공정한 법률행위 무효 규정을 두고 있다.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다.

보람상조 위탁계약서도 이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 보듯이 판사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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