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해지 땐 별다른 이유 없어도 수당 지급 미루다 상계처리할 수 있어
법원은 '계약해지' 조건 넓게 해석..이직 움직임만 있어도 지급유예 가능

이 글은 본지 2021년 7월12일 자 <[보람상조 수당 사건] ① 황당한 '갑질 계약'..법원은 외면>의 후속 기사입니다(아래 관련 기사 참조).

[포쓰저널] 보람상조 수당 사건의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강민구)는 지난달 11일 항소심 판결에서 보람상조의 2019년 11월치 수당 미지급을 '체불'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 근거로 '보람상조 전속 LC 위탁계약서'를 들었다.

구체적으로는 "원고들(보람상조)은 소속 설계사 중 동종업체로 이직하거나 계약 해지 의사를 표명하는 등 위탁계약서 제14조에 따른 계약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설계사에 대하여 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에 따른 수당 지급 유예를 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설계사가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표현만해도 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미다. 

보람상조 설계사들은 한번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면 최소한 한달치 수당을 포기하지 않는 한 마음대로 회사를 옮길 수도 없는 것이다.

헌법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기준법 제7조의 강제근로 금지 원칙에도 어긋나는 전근대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설계사들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일종으로서 일반 직장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종속적 노동을 한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는 상황이다.

이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더라도 근로조건의 당부를 따질 때는 최소한 근로기준법의 기본 취지에는 반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번 사건 재판에서 이런 상식과 시대정신을 철저히 도외시했다. 

판사들이 노동현실에 대한 기초적인 문제 인식도 없거나, 계약자유를 빙자해 양심을 속이고 자본 편을 든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법원은 이번에 수당 지급유예 조건을 위탁계약서에 적시된 문구보다도 더 확대해서 넓게 인정해 주었다.

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은 "회사는 계약해지 시 LC의 수수료 중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계약사항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90일 간 지급유예할 수 있고, 회사가 가진 채권과 상계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일단 이 조항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의 일방적인 갑질 계약이다.

설계사가 '계약해지'만 하면 어떤 이유도 댈 필요없이 일단 최근치 수당 지급을 미룰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명분으로 적시된 '계약사항의 이행을 담보'한다는 것도 아무런 구체성이 없다. 

회사는 일단 수당 지급을 유예하고 석달동안 설계사에게 받아낼 돈이 있는 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근로기준법 적용 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업주는 최대 징역 3년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설령 이 조항을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유효한 것이라고 보더라도 최대한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이 우리 법 체계에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조항에서 지급유예 조건은 두 가지다. 우선 시점 또는 상황 조건으로 '계약해지 시'에만 할 수 있다.

'계약해지 시'는  설계사가 사직 의사를 나타냈거나, 회사가 해촉을 이미 한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이런 상황조건과는 무관하게 지급유예가 진행됐다.

2019년 12월 31일 오후 4시45분 보람상조 영업관리부가 설계사들에게 집단 발송한 문자메시지를 보면, 당시 회사측은 설계사들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지 않았고, 회사에서도 '해촉 통지'를 하지 않은 상태임을 알 수 있다.

보람상조 사측이 2019년 12월 31일 설계사들에게 발송한 '각서 요구' 문자메시지.
보람상조 사측이 2019년 12월 31일 설계사들에게 발송한 '각서 요구' 문자메시지.

 

해당 문자메시지에는 "동종업체 겸업(동종업체 이적금지 포함)이나 위탁계약 해지 의사가 없으신 설계사님은 아래와 같이 [본인 000은 위타계약 해지 의사나 타사이적의 의사가 없습니다] 라는 문자로 답변주시면 즉각 이번달 위탁수수료를 지급할 예정입니다"라고 적시돼 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시점에는 이미 11월치 수당 지급일인 28일이 경과한 상태여서 이것만으로 '체불'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상황 자체가 위탁계약서 상의 '계약해지 시'라는 조건을 성취한 것으로 판단했다.

문자메시지로 유추하면, 당시 상황은 설계사 다수가 회사를 그만두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걸 회사측이 감지한 정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보람상조는 소속 설계사들의 이직을 차단하기 위해 수당지급 유예 조항을 악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원의 해석대로라면 보람상조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특정 설계사에게 수당 지급을 미루면서 '이직하지 않다는 각서를 써야 수당을 주겠다'고 할 수 있게 된다.

이번 법원 판결이 직업선택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유다. 

2심 재판부인 강민구, 정문경, 장정환 판사에게 일단 월급을 주지 않고 "사표 안쓴다고 각서쓰면 주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궁금하다.

보람상조 수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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