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약해지' 상태인지 심리 않고 "미지급 정당"
위탁계약서상 사측, 설계사 해촉 사유는 많지만
사표 제출 전에 수당 지급유예 가능 조항은 없어
연말연시 설계사들 농락..법원이 정당성 부여한 꼴

이 기사는 본지 2021년 7월17일자 '보람상조 수당사건, 이직 자유도 없는 설계사..법원 해석이 더 한심' 기사의 후속입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보람상조 수당사건

 

[포쓰저널] 보람상조 수당 사건의 2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13부(강민구 부장판사)가 문제된 수당 미지급을 '체불'이 아니라 '정당한 지급유예'라고 본 근거 중 하나는 위탁계약서 제14조 규정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람상조는 소속 설계사 중 동종업체로 이직하거나 계약해지 의사표시를 표명하는 등 위탁계약서 제14조에 따른 계약해지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설계사에 대하여 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에 따른 수당 지급유예를 통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보람상조가 2019년 12월말, 그해 11월치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정당화되는 근본 원인이 설계사들의 동종업체 이직 또는 이직 의사 표명에 있다는 것이다.

설계사들이 이미 이직한 경우 뿐 아니라 "회사를 옮기겠다"고 말만해도 보람상조는 전월치 수당을 제때 주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다.

이런 비상적인 논리를 받아들인 법원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재판부는 그 근거로 위탁계약서 제14조를 들고 있다.

위탁계약서 제14조는 '계약해지'가 가능한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제1항은 설계사가 해지하는 경우, 제2항은 회사가 계약해지하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제14조(계약해지 등) ① LC(설계사)는 위탁계약 기간 중 언제든지 서면, 전화, 문자전송, 전자우편 등으로 회사(영업지원팀)에 통지함으로써 즉시 위탁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② 회사는 LC가 다음 각호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하는 경우 위탁계약 기간 중에라도 서면, 전화, 문자전송, 전자우편 등에 의한 통지로써 즉시 위탁계약을 해지(해촉)할 수 있다.

 

1. 제9조(수수료 규정) 제4항의 수수료 지급규정 변경, 제17조(계약내용 변경 등) 제1항의 위탁계약내용 변경, 동조 제2항의 회사의 규정 지침등의 변경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2. 판매상품의 불완전 판매율이 현저히 높은 경우

3. 위탁계약 체결시 회사에 필요한 서류 등 위탁업무 관련 문서를 위조, 변조하거나 허위로 작성한 경우

4. 고의 또는 과실로 위탁계약상의 준수사항, 위탁업무와 관련된 회사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

5. 정신적, 신체적 질병 또는 장애 등으로 3개월 이상 정상적인 위탁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경우

6. 고의 또는 과실로 위탁업무 관련 소송 및 민원 등 분쟁을 야기한 경우

7. 상급자 및 동료에 대한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업무방해(소란, 선동, 시위, 폭행, 폭언, 단체행동, 교육방해, 미팅방해) 행위를 한 경우

8. 제18조(손해배상) 제1항 각호의 손해배상 사유가 발생한 경우

9. 제6조(금지의무), 제5조(위탁업무의 수행방법, 절차 및 주의사항) 제6항, 제7조(동종업체 겸업금지), 제8조(회원정보 보호의무) 등 위탁계약에서 규정한 의무를 위배한 경우

10. 제5조(위탁업무의 수행방법, 절차 및 주의사항)의 주의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하는 경우(제5조의 제8항 제외)

11. 1개월 이상 실적이 없는 경우

12. LC가 상기 항목에 준하는 위법 부당한 행위를 하여 위탁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③ 다음 각호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하는 경우 위탁계약은 즉시 종료한다.

1. LC가 사망한 경우

2. LC가 파산한 경우

3. LC에 대해 성년후견이 개시된 경우

4. LC가 구속되거나 징역 또는 금고의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

제14조를 보면 설계사는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그 의사표시는  "서면, 전화, 문자전송, 전자우편 등으로 회사 영업지원팀에 통지"라는 구체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설령 설계사 몇명이 이직을 논의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계약해지'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는 반대해석이 가능하다.

이 조항에 이은 제15조는 수당 지급유예의 전제조건으로 '계약해지 시'를 규정하고 있다.

설계사들이 '계약해지' 상태가 아니라면 수당을 제때 주지않고 지급유예하는 건 정당성이 없는 채무불이행, 즉 체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2019년12월 말이나 1월초 보람상조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설계사들이 '계약해지' 상태였는 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따져보지도 않았다.

제14조에 따르면 계약해지 상태였다는 걸 인정하려면 설계사들이 '서면, 전화, 문자전송, 전자우편 등으로 회사 영업지원팀에 통지'를 했는 지 우선 심리했어야 하지만 재판 과정에 그런 절차는 전혀 없었다.

판결문에도 그와 관련된 설명이나 이유설시는 없다.

재판부는 보람상조가 주장한 걸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막연히 그런 것 같다는 심증만으로 중요한 요건 사실을 인정해 버린 것이다.

보람상조 사측이 당시 제14조 제2항에 따라 설계사들에게 계약해지, 해촉 통보를 했다는 주장이나 증거도 없다.

제14조 2항을 보면 보람상조 경영진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설계사들과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설계사를 해촉할 수 있는 사유는 그야말로 비현령이현령이다.

'판매상품의 불완전 판매율이 현저히 높은 경우' 등 해석하기 나름인 사유도 있고, '한달 이상 실적이 없는 경우'도 계약해지 사유로 열거돼 있다.

그런데 막상 '이직'과 관련해선 이 사건과 딱 맞아떨어지는 조항이 없다.

항소심 재판부는 "동종업체로 이직하거나 계약해지 의사표시를 표명하는 등"의 경우가 제15조의 '계약해지 시'에 해당한다고 했지만, 막상 위탁계약서에는 이런 표현이 담긴 조항을 찾을 수 없다.

제14조는 회사의 계약해지 사유로 제7조(동종업체 겸업금지), 제18조 제5호 (이적 손해배상)도 포함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제7조는 동종업체로의 이직이 아니라 겸업을 금지한 조항이고, 제18조 제5호는 다른 설계사를 이적시키거나 이적을 권유한 경우에 관한 내용이다.

보람상조가 2019년 말 그해 11월치 수당을 미지급할 때 위탁계약서 제14조에 따른 계약해지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법원 판단은 계약서 상으로도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 사건은 연말연초에 수많은 설계사들이 영문도 모른채 수당을 제때 지급받지 못해 고통을 겪고 이직금지 각서까지 요구받은 극히 비인도적인 갑질 사건이다. 

보람상조가 2019년 12월31일 각서요구 문자메지시를 발송한 설계사는 회사 스스로 인정한 인원만 300명이 넘는다. 

사법부는 이런 노동자들의 상황에는 눈을 감고 막연히 위탁계약서 조항만 거론하며 수당미지급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꼴이 됐다.   

대한민국 고등법원 합의부 판사들 수준이 이 정도라는 게 충격적이고 한심할 뿐이다.

2019년 12월 31일 보람상조가 설계사들에게 보낸 각서요구 문자메시지./ 독자제공
2019년 12월 31일 보람상조가 설계사들에게 보낸 각서요구 문자메시지./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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