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계약서상 퇴직월 수당은 소멸..전달 수당은 지급유예"
설계사 그만두면 두달치 수당 안줘도 된다는 논리
법원 "지급일 지난 수당 지급유예 가능"..두달치 미지급에 정당성 부여

이 기사는 본지 2021년 7월23일자 '보람상 수당사건 3. 비인간적 갑질행위 근거도 없이 면죄부 준 법원' 기사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아래 관련 기사 참조)

 

[포쓰저널] 보람상조 수당 사건에 대한 판결 중 가장 황당한 부분은 이 회사 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의 '최종 1개월 분 수수료'에 대한 판단이다.

​이 조항은 설계사 퇴직시 회사가 수당을 지급유예하고 나아가 상계처리할 수 있는, 즉 몰취할 수 있는 근거 규정 중 하나다. 

"회사는 계약해지 시 LC(설계사)의 수수료 중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계약사항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90일 간 지급유예할 수 있고, 회사가 가진 채권과 상계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 조항은 일반 기업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다.

​회사가 응당 지급해야할 수당을  퇴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현실에서 통용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일반 기업에서 이런 짓을 했다가는 사업주는 최대 징역3년형으로 처벌된다. 

​아무튼 보람상조는 이 조항을 근거로 2019년 11월분 수당 무더기 미지급이 불법적 체불이 아니라 정상적인 업무처리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타당성을 판단하려면 당연히 제15조 제2항에 규정된 지급유예의 조건들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이 조항은 지급유예의 전제로 두가지 조건을 요구한다. '계약해지 시'라는 상황조건과 '최종 1개월분'이라는 대상 조건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졌어야 보람상조의 수당 미지급은 그나마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2019년 12월31일 당시 지급유예 문자메시지를 받는 설계사들이  '계약해지' 상태 였다는 증거는 재판에 현출되지 않았다. 일부는 퇴사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직 움직임 정도였다는 것이 설계사들 주장이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당시 재판장 김병철 부장판사)는 물론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합의13부(재판장 강민구 부장판사)도 '계약해지시' 조건의 성취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검토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납득하기 힘든 일이지만, 하급심 판사의 이유불비는 상고심 심리속행사유도 아니다. 

민사절차법 전반에 판사의 오판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구조적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허점 덕분에 지적 수준이 낮거나 직업적 양심이 저열한  판사도 별 탈없이 법원에 남아있을 수 있다.

지급유예 대상 조건인 '최종 1개월분' 관한 법원 판단은 더 황당하다.

1심 재판부는  "설계사들의 위탁계약 해지 의사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보람상조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에 따라 그 수당의 지급을 유예한 것"이라고만 했다. 

​보람상조가 지급 유예 대상을 12월분이 아니라 11월분 수당으로 한 것이 계약서상 '최종 1개월분'에 부합하는 지에 대해선 아예 판단자체를 누락했다.

​위탁계약서 제15조 제2항을 들먹이며 그에 터잡아 판단을 내렸으면서도, 막상 지급유예가 그 조항에서 정한 핵심 조건에 맞는 건 지에 대해선 고찰을 하지 않은 것이다. 

​형법으로 치면 피고인의 행위가 형법상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지도 따져보지 않고 유,무죄 판결을 내린 꼴이다.

2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한 이유설시를 하긴 했는데, 그나마 논리는 궤변에 가까울 정도로 조악하다.

"보람상조는 설계사에 대한 월별 수수료를 다음달 28일 지급하여 왔으므로, 보람상조가 설계사에 대한 수당을 미지급한 2019년 12월말을 기준으로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는 '2019년 11월 수수료'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보람상조가 지급유예를 문자메시지로 설계사들에게 공식 통보한 건 12월31일 오후 4시54분이다.

보람상조가 2019년12월31일 소속 설계사들에게 집단 발송한 문자메지지. 그해 11월치 수당을  지급을 유예하고 이직금지 각서를 제출해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독자제공
보람상조가 2019년12월31일 소속 설계사들에게 집단 발송한 문자메지지. 그해 11월치 수당을  지급을 유예하고 이직금지 각서를 제출해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독자제공

 

문자메시지를 받은 설계사들이 최소한 12월31일 오후까지 보람상조에 적을 두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최종 1개월 수당은 12월분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법원은 이를 부인했다.

​법원이 근거로 내세운 논리는 이해하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자의적이다. 

선해하면, 11월분은 이미 그 지급일을 경과했으니 지급유예할 수 있고, 12월분은 아직 지급일(1월28일)이 되지않았으니 지급유예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 정도로 이해된다.

​어이없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12월 말일까지 일한 상태서 11월치 수당이 '최종'이라면, 12월분 수당은 그냥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체법과 절차법을 분별할 수 있는 수준만 돼도 법원이 이런 판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본 편에 서려고  작정하고 직업적 양심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판결문에 적기 힘든 내용이다.

2심의 판단처럼 한다면 12월분 수당은  자연스럽게 지급대상에서 제외된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퇴직전 2개월치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 후 보람상조를 퇴사한 상당수 설계사들이 11월치 뿐 아니라 12월치 수당도 제때 지급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항소심의 이런 판단은 보람상조 측의 주장보다는 설계사들에게 유리한 내용이다.

보람상조 측은 재판과정에서 12월 분 수당은 아예 소멸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실제로 이 회사 위탁계약서 제16조에는 그런 내용의 조항이 있다.  

"회사와 LC 사이의 위탁계약관계가 기간만료, 해지(해촉) 등으로 종료한 경우 LC의 수수료 청구권도 동시에 소멸한다. 다만 <LC 수수료 및 운영규정>에 특별히 정한 경우에는 수수료를 지급할 수 있다."

설계사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만두면 수당을 요구할 권리도 그와 동시에 없어진다는 것이다. 

보람상조측은 이를 근거로 "12월 중에 계약해지한 설계사의 경우 12월분 수수료는 해지 등으로 소멸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도 퇴사로 지급조건도 성취되지 못하였으므로,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2019년 11월분을 지급유예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11월분 수당은 지급유예 대상이고, 12월분은 아예 소멸하고 없어졌으니 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극악한 갑질이지만, 계약서에 버젓이 그런 조항이 있으니 무조건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처럼 당사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다른 한쪽에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을 적용할 때는 그 조건을 엄격히 따지는 것이 법 해석의 원칙이다.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이 규정한 '고객 유리 해석 원칙'과 같은 걸 적용해야 한다. 보람상조 위탁계약서는 그 내용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해 부동문자로 인쇄한 상태서 설계사는 특약만 적도록 돼 있다. 사실상 약관과 같은 셈이다.

이런 원칙에 입각하면 위탁계약서 제16조의 '청구권 소멸' 수당은 이미 형성된 수당이 아니라, 장래 받게될 수당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그나마 타당성을 갖는다.

실제로 보람상조 상조상품은 대부분 장기간 분할 납부 방식이고, 설계사는 고객이 할부금을 납부해야 그에 상응하는 수당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원칙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았다.

보람상조의 청구권 소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마찬가지다.

차라리 보람상조의 '12월분 수당 소멸론'이 논리적 정합성은 있다. 

​'지급일 경과한 수당만 지급유예 대상'이라는 2심 재판부의  주장은 황당함을 넘어 실소를 금치 못하게할 정도 비상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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