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상조 설계사 위탁계약서 위헌·위법 소지 다분
'퇴직후 2년간 동종업체 취업 금지' 대표적 갑질
퇴직전 받은 수당 전액+손해배상금 토해내야
헌법상 직업선택의자유의 본질적 법익 침해
법원 안이한 판단으로 위헌적 계약에 정당성 부여

보람상조 수당 무더기 미지급 사건

 

[포쓰저널] 보람상조 수당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이 퇴행적인 건 단순히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 오류 때문만은 아니다. 

​1,2 심 법원은 보람상조의 2019년 11월 치 설계사 수당 무더기 미지급이 '체불' 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의 근거는 보람상조가 제출한 위탁계약서상의 '수수료 지급유예' 등의 조항이다.

문제는 이 위탁계약서 자체가 민법, 나아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다분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외려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판사들이 '현저하게 공정을 잃는 법률행위는 무효'라는 민법 규정만 기억했어도 보람상조 위탁계약서를 이처럼 함부로 판결의 근거로 삼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급유예' 조항만 해도 일반 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황당한 내용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계약해지 시'에는 설계사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최종 1개월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순전히 사측의 판단에 따라 '90일 간 지급유예'할 수 있고, 나아가 회사가 임의로 설계사에게 가진 채권과 상계처리할 수도 있다(제15조 제2항).

상조회사 설계사 수당이 일반 기업 노동자의 임금에 해당하는 성격을 가졌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법원은 이 경우에 근로기준법을 직접 적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근로기준법의 입법취지라도 고려해 위탁계약서 조항에 대한 해석을 엄격히 하는 것이 법리와 상식에 맞을 것이다.

하지만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당시 김병철 부장판사)는 물론 2심인 서울고법민사합의13부(강민구 부장판사)도 이런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

되레 '계약해지 시' 라는 상황조건과 '최종 1개월 분'이라는 대상 조건을 확장해석해 보람상조 사측에 유리하게 적용했다.

위탁계약서에는 계약 종료시 설계사 수수료도 동시에 소멸한다(제16조)는 규정도 있다.

결국 보람상조 수당 사건 당시 '이직금지 각서'를 제출하지 않은 설계사들은 2019년 11월치 수당은 '지급유예'되고 그해 12월치는 '청구권 소멸'로 제때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근거를 상실하게 됐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퇴직을 결심하면 최소한 두달치 수당은 날린다고 각오해야 되는 것이다.

이런 결과만 봐도 보람상조 위탁계약서가 경제적 약자인 설계사들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불공정 갑질계약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지만 법원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재판의 전제가 된 사계약이 법률이나 헌법에 위반할 소지가 있을 때는 법원이 자체 판단에 의해 위헌·위법 여부를 가려야 하지만 이 사건 재판부는 그런 건 일절 고려하지 않았다.

'지급유예' 조항도 그렇지만 보람상조 위탁계약서에는 대한민국헌법에 반하는 조항이 적지않다.

설계사들이 상조회사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수당 때문이다.

하지만 보람상조 설계사들은 고객 유치하는 등 성과를 냈다고 해도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처럼 수당을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측이 수당을 아예 주지 않거나, 준 것을 회수하거나, 손해배상, 위약벌 등의 명목으로 뻥튀기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갖가지 장치들이 위탁계약서 구석구석에 세세하게 적시돼 있다.

수당 지급거절, 회수 등의 명목은 위탁계약서상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그 중 가장 희한한 건 '퇴직후 동종업체 취업금지' 관련 내용이다.

이 회사 설계사들은 보람상조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2년간은 다른 상조회사에는 사실상 취업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취업하는 건 가능하지만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설계사가 '퇴직 후 2년 이내에 동종업체와 위탁계약 체결, 이직 또는 동종업체의 영업행위를 한 경우'에는 보람상조 사측이 만든 'L.C수수료 및 운영규정'에 의해 '기 지급한 전속수수료 전액'을 환수당할 수 있다(제9조 제2항 제2호).

보람상조를 나와 여타 상조회사에 취업만 해도 보람상조 근무동안 받은 전속수수료 전부를 토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측은 '2년 이내 이직금지'를 어긴 설계사에게 손해배상도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 이 손해배상금은 설계사의 수수료에서 우선 공제한다(제18조). 퇴직시 최근 1개월분 수당을 지급유예한다는 조항도 이런 경우를 상정해 명시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위약벌도 별도로 규정돼있다. 회사는 '2년 이내 동종업체 이직금지'를 어긴 설계사에게 위약벌 명목으로 해당 설계사가 재직 중 받은 전속수수료 전액을 요구할 수 있다(제19조).

위약벌은 손해배상 청구와는 별도라는 규정도 명시하고 있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보람상조 재직중 받은 전속 수수료 전부에 손해배상금까지 더한 돈을 회사에 토해내야 하는 것이다.

보람상조에서 일하다 퇴직하고 2년 이내에 다른 상조회사에 취업하면 그 설계사는 집안경제가 거덜날 걸 각오해야 되는 셈이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함부로 제약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헌법(제15조)이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 중 하나다.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최소한 국회가 정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고위공직자의 퇴직후 취업제한도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엄격한 조건 하에서만 규제가 가능하다.

​산업기술의유출방지및보호에관한법률,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도 구체적인 기술탈취나 영업비밀 침해를 규제할 뿐 취업제한·금지를 직접 명시하지는 않고 있다.

사적계약에 의해 경쟁업체 취업을 제한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직업선택의 자유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할 수는 없다.

설계사들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이 2년 동안 동종업체 취업을 사실상 막는 건 위헌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위탁계약서 전반에 정당성이 부여된 만큼 보람상조 사측은 앞으로도 이들 조항을 적절하게 활용해 설계사들을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판사들이 조금만 신경을 쓰고 본인들이 판결의 근거로 삼은 위탁계약서 조항들을 살펴보았더라도 이런 퇴행은 막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작권자 © 포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