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UAE가 행사 주관..'그린워싱' 논란만 가중

2023년 12월 11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에 한 환경운동가가 난입해 화석연료 사용 중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epa연합
2023년 12월 11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에 한 환경운동가가 난입해 화석연료 사용 중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epa연합

[포쓰저널 = 반지수 기자]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 문구가 빠지면서 산유국 등을 제외한 세계 각국과 국제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COP28 폐회를 하루 앞두고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작성해 공유한 합의문 초안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문구가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에 공유된 버전에는 이 문구가 들어 있었지만, 초안은 이를 대신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석유·석탄·가스의 생산·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완화된 표현을 담았다.

올해 COP28에선 이 문구를 두고 각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폐회 하루 전까지 공동선언문 합의가 진통을 겪고 있다.

주요 석유수출국으로서 의장국을 맡은 UAE는 총회 유치 때부터 기후대응 노력에 진정성이 없거나 총회를 중동 산유국들의 환경훼손 이미지를 세탁할 '그린워싱'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의장국인 UAE에 관련 문구를 배제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저개발국을 비롯한 기후변화 취약국 등은 화석연료 퇴출 문제를 합의에 포함하는 데 찬성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은 지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올해 COP28 공동선언문 합의문 초안엔 '단계적 퇴출' 대신 2050년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을 위해 화석연료의 소비와 생산을 공정하고 정돈된, 공평한 방식으로 줄이는 것을 포함한 8개의 선택지가 포함됐다.

선택지 중에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 능력을 현재의 3배로 늘리거나, 배출가스 저감 장치없는(unabated) 석탄 화력발전소의 신속한 폐기와 신규 허가 제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CCS) 확충 등이 있다.

재생에너지나 원자력, 탄소 저감·제거 등 탄소 배출이 없거나 낮은 기술을 가속한다거나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안도 제시됐다.

이번 총회에서 석유나 가스를 생산하는 선진국인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를 비롯해 유럽연합(EU), 기후변화에 취약한 섬나라 등 100여 개국은 합의문에 어떤 형태로든 화석연료의 퇴출을 의미하는 문구를 삽입하기를 원했다.

2년 전 COP26에선 석탄에 한정해 퇴출 대신 '단계적 감축'(phase down)하기로 합의했다. COP27에선 이 감축 대상을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없는 석유와 가스 등 모든 화석연료로 확대하는 안이 논의됐으나 불발됐다.

이날 공개된 초안에 대해 국제 환경단체뿐 아니라 기후 정책가들, 기후변화 최전선에 있는 도서국들은 실망스러운 합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소도서국가연합(AOSIS) 의장국인 사모아의 토레술루술루 슈스터 환경장관은 성명을 내고 "몇몇 당사자만 특별 대우를 받았고 절차의 투명성과 완결성이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세계가 가능한 한 신속하게 화석 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한다"며 "이 비굴한 초안은 마치 석유수출기구(OPEC)의 요구를 또박또박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합의문 협의에 참여한 유럽연합(EU) 측도 초안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EU 협상위원이자 아일랜드 환경부 장관인 에이먼 라이언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EU가 협상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웝크 훅스트라 EU 기후 담당 집행위원도 "전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불충분하고 부적절하다"며 "EU는 재생에너지 사용이 어려운 철강 등 일부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허용하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 입장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두바이 총회장을 방문해 "이번 회의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은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공동선언문 발표를 하루 앞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에 합의해달라고 촉구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국제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거세다.

세계 각국의 약 300개 시민 단체가 참여하는 기후 행동 네트워크는 이날 공유된 합의문이 '뒷걸음질을 쳤다'고 비난했다.

기후행동네트워크(CAN)의 글로벌 정치전략 책임자인 하르지트 신은 "(당사국들이)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라는 명확한 표현 대신 '소비와 생산을 줄인다'는 막연한 약속을 택했다"며 "이것은 화석연료 산업의 로비력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비영리단체 참여과학자연대(UCS) 기후·에너지 정책 책임자인 레이첼 클리터스는 "초안은 정말 실망스럽고 우려스럽다"며 "(필요한) 목표치 수준에 전혀 근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COP28은 12일 당사국들의 공동선언문 채택과 함께 폐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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