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위험 있는데 조치 안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현대엘리베이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현대엘리베이터

 

[포쓰저널] 현정은(68) 현대그룹 회장이 다국적 승강기업체이자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 아게(Schindler Holding AG)와 10년을 끌어온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30일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쉰들러홀딩스 알플레드 엔 쉰들러 대표가 현정은 회장과 한상호(67) 전 현대엘리베이터 대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 전 대표는 배상액 가운데 190억원 만큼의 책임을 현 회장과 공동으로 져야 한다.

대법원은 2019년 9월 26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4부(부장판사 남양우)의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대법원은 "현 회장 등은 계약 체결의 필요성이나 손실 위험성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거나, 이를 알고도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대표이사 또는 이사로서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의 이사'가 특정 계약을 체결할 때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지켰는지를 판단할 법적 기준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계열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발행 신주를 인수할 경우 이사는 해당 계열사의 자기 회사 영업에 대한 기여도, 유상증자 참여로 인한 재정적 부담과 이익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처럼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의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 해소를 위해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상황에도 해당 계열사 경영권 유지·상실로 인한 자기 회사의 이익·불이익 정도, 사업 지속 가능성 등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사는 다른 이사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는지를 감시·감독할 의무를 부담한다"며 "특정 이사가 다른 이사의 직무 수행으로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감시·감독의 의무를 진다"고 덧붙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11년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금융사 5곳에 우호지분 매입을 대가로 연 5.4~7.5%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

파생상품 계약은 현대엘리베이터와 계약 상대방 펀드들은 현대상선 주가가 오르면 이익을 나눠 갖는데, 주가가 내려가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당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 가능성이 있던 현대상선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내용도 계약에 담겼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자본금 확충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선 현대증권 주식 관련 파생상품 계약도 체결했다.

파생상품 계약 후 현대상선의 주가는 하락했다. 쉰들러 측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손해를 입게 됐다며 2014년 현정은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을 상대로 7180억원대의 주주대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엘리베이터 감사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을 요청했으나 감사위가 답변하지 않자 주주 대표 소송을 냈다.

쉰들러는 현대 측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현대상선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에 파생금융상품 계약을 맺게 함으로써 거액의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부실을 인지했음에도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이 같은 계약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현정은 회장이 현대상선의 손실을 떠넘기기 위해 부실자산인 현대종합연수원을 현대엘리베어터가 인수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측은 해운업이 힘들어지기 이전인 2010년 이전에는 파생계약을 통해 수백억에 달하는 평가이익을 내기도 했다고 반박해 왔다. 현대종합연수원 인수도 적정가격이라고 주장해 왔다. 

2016년 선고된 1심에선 현정은 회장이 승소했다. 재판부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체결한 파생금융상품 계약이 현 회장의 정상적인 경영 행위라고 봤다. 

반면 2019년 9월 선고된 2심은 일부 파생상품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현 회장이 17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지난해말 기준 23.94%다. (현대네트워크 10.61%, 현정은 7.83%, 김문희 5.50%)

쉰들러홀딩스AG의 지분은 15.5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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