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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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쓰저널=오경선 기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둘러싼 적정성·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내달 주주총회에서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에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한데 이어 남양유업에 대해선 배당 확대를 압박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총구는 중견·중소기업까지 겨냥될 것으로 보인다. 저배당 기업 중 국민연금이 최근 3년간 2회 이상 반대표를 던진 곳은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사조산업 등이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횡령·배임·일감몰아주기·경영진 사익편취 등 법령위반 우려 ▲과도한 임원 보수 ▲낮은 배당성향 ▲5년내 2회 이상 반대의결권 행사에도 개선이 없는 기업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하는 '가이드라인’을 공개한 바 있다.

선정 기준에서 보듯 주주권 행사의 핵심 타깃은 횡령·배임 등을 저지른 기업이 돼야 맞다.

그런 점에서 최대주주(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가 횡령·배임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진칼을 첫 케이스로 지목한 것은 긍정적이나 주주권 행사 범위를 지나치게 한정했다.

나아가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제2탄의 경우 삼성, 롯데 등 총수 일가의 횡령·배임 등 범죄가 법의 심판대에 올라선 대기업은 놔두고, 중견기업의 배당 정책에 개입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연금의 과녁이 기업의 불법보다는 갑질행위에 맞춰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짠물배당' 남양유업 등 중견업체로 타깃 선회

11일 남양유업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이익 증대를 대변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배당 확대 요구를 정면 거부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7일 남양유업에 대해 배당 정책과 관련한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정관변경 주주제안에 나서겠다고 선전포고했다. 국민연금은 남양유업 지분 5.71%(2018년9월30일 기준)를 갖고 있다.

남양유업은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 지분이 51.68%에 달한다. 특수관계인(2.17%) 지분까지 합할 경우 오너 일가 지분은 총 53.85%이다.

국민연금의 주주제안이 남양유업 주주총회를 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관변경안은 특수결의사항으로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통과된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보통주 1주당 1000원을, 우선주 1주당 1050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지급 비율)은 2017년 기준 17%로 상장기업 평균(33.81%) 절반 수준이다.

작년 결산 배당금 기준 국민연금의 배당 총액은 약 4112만원이다. 냠양유업의 배당성향이 상장사 평균치까지 높아지더라도 국민연금이 가져가는 배당금은 1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배당압박 전략의 실효성 및 실익 모두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낮은 배당성향으로 국민연금의 중점관리기업에 포함된 현대그린푸드도 마찬가지다.

현대그린푸드는 국민연금이 남양유업에 주주제안을 하기로 결정한 다음날인 8일 전년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어난 배당 계획을 발표했다.

주당 배당금을 종전 80원에서 210원으로 증액해 총 183억3445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다분히 국민연금을 의식한 조치다. 

현대그린푸드의 지난해 잠정 배당성향은 약 11.6%다.

지분 12.6%(1226만8342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이 가져가는 총 배당금은 약 25억7635만원이다. 상장사 평균까지 배당성향이 높아질 경우 국민연금이 추가로 가져가는 배당금은 50억원 가량이다.

이는 현대그린푸드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현대그린푸드 보유지분 평가액은 지난 2017년 말 1869억원에서 작년 말 1754억원으로 1년 동안 약 110억원 이상 하락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 수익률 제고를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배당을 높이려는게 옳은지 의문”이라며 “장기적 투자 개념으로 봤을 때 개별기업의 고배당이 꼭 타당하다 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기업은 ‘오너리스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하고 있다”며 “주주권 행사가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영향을 미쳐야 실효성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10%룰로 대한항공 주주권 행사 포기는 핑계"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은 제외하고 지주사인 한진칼에 대해서만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한 점도 문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횡령·배임 등 불법행위로 사익을 추구하고 회사가치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에 대해선 이른바 ‘10%룰’(단기매매차익 반환)을 이유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시장에선 10%룰 적용을 벗는 방법이 있음에도 국민연금이 대기업 '눈치보기’로 대한항공에 경영참여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쏟아냈다.

10%룰은 자본시장법상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투자자가 단순투자 목적이 아닌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6개월 내 단기매매차익을 해당 기업에 돌려주도록 하는 규정이다.

경영 참여를 통해 획득한 내부정보로 ‘단타매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점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국민연금은 작년 9월30일 기준 대한항공 지분 10.57%를 보유하고 있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단타매매를 하지 않고 장기수익성을 목적으로 6개월 이상 해당 종목을 보유할 경우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해도 매매차익을 반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자본시장법 172조 6항 등은 '미공개중요정보를 이용할 염려가 없는 경우로서 증권선물위원회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단기매매차익을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자산운용사도 아니고 장기 투자를 추구하는 국민연금이 10%룰을 이유로 대한항공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은 핑계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10%룰을 이유로 경영참여형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투자를 많이 한 기업일수록 의견을 피력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며 “적극적 주주권 행사의 현실성이 떨어지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의 한계도 논란거리다.

국민연금은 횡령·배임 등 혐의로 형을 확정받은 사람은 3년동안 이사직을 맡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정관변경안을 주주제안으로 올리기로 했다.

국내 기업 중 정관에 이사자격을 제한한 기업은 SK텔레콤이 대표적인데 이번 결정은 SK텔레콤의 정관보다도 느슨한 수준이다.

경제개혁연대는 "SK텔레콤은 (여타 범죄의)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가 확정된 때'를 이사결원 사유로 규정한다"며 "SK글로벌 분식회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최태원 그룹 회장이 SK텔레콤 이사로 복귀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관계자는 ”대기업 총수는 배임·횡령으로 실형이 나올 가능성이 낮다. 더구나 형 선고 후 3년까지로 한정하고 있어 3년 후에는 다시 이사직을 맡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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