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한경협' 명칭 변경 의결
4대 그룹, 흡수통합 한경연 회원사 자격 자동 승계
시민사회단체 "최소한의 반성없는 '간판갈이'" 비판

서울 여의도 전경련 빌딩.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전경련 빌딩. /연합뉴스

[포쓰저널=서영길·문기수 기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간판을 바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4대 그룹이 재가입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정경유착 핵심 고리로 지목돼 전경련을 탈퇴한 지 약 7년 만이다.

전경련은 2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정관을 개정, 55년 만에 기관명을 한경협으로 변경하고 산하 연구조직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한경협으로 흡수통합하는 안건 등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한경연 회원사로 남아있던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형식상 한경협 회원 지위를 자동 승계하며 전경련에 가입하게 됐다. 

4대 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전경련 탈퇴 이후에도 한경연 회원사로는 계속 남아 있었다.

한경연 회원사는 삼성 계열사 5곳(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SK 4곳(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 2곳(㈜LG·LG전자) 등이다. 

이날 삼성증권을 제외한 15곳이 한경협에 자동 가입됐다. 

삼성증권은 18일 이사회 논의 결과 전경련의 혁신안이 허술하고 실행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내놓고 전경련에 합류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 가입을 거부했다.

4대 재벌이 복귀한 한경협의 첫 주요 미션은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 중 하나인 한일 경제단체의  '한일·일한 미래파트너십 기금' 조성 및 집행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경련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는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3월 16일 한일 경제교류 강화와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미래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금 창설 계획은 한국 정부가 3월 6일 산하 재단을 통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한다는 해결책이 발표된 이후 공개됐다.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기금을 통해 양국 대학 간 교류 강화, 한국 고등학교 교원의 일본 방문과 인턴십, 반도체 공급망과 에너지 안보 등 경제안보 환경 정비,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 유지와 강화, 녹색 전환과 디지털 전환, 전염병 확산 등에 대한 협력 강화 등을 추진한다고 합의한 상태다. 

두 단체는 5월10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내용의 공동사업 구상을 밝혔지만 당시에는 한국 측에 삼성, SK 등 핵심 기업이 빠져있어 당장 기금을 조성할 방법도 막연한 상태였다.

삼성 등 4대재벌이 한경협 구성원으로서 나서면 기금 조성을 물론 한국 대표 기업들이 강제징용 해법에 적극 참여한다는 상징성도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삼성은 이날 입장을 내고 “수차례에 걸친 준법감시위원회의와 이사회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한경협으로의 흡수 통합에 동의했다”며 "삼성의 5개 한경연 회원사 중 하나였던 삼성증권은 준감위 협약사가 아니기 때문에 통합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준감위의 의견에 따라 흡수통합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준감위가 권고한 3가지 사항을 한경협에 가입한 삼성 4개사는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한경협이 약속한 싱크탱크 중심의 경제단체로서 역할에 맞지 않는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정경 유착행위 ▲회비·기부금 등의 목적 외 부정한 사용 ▲법령·정관을 위반하는 불법행위 등이 있으면 관계사는 즉시 한경협을 탈퇴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삼성은 한경협에 가입한 관계사가 회비를 납부할 경우 준감위의 사전승인을 얻도록 했다. 삼성 측은 “특별회비 등 명칭을 불문하고 통상적인 회비 이외의 금원을 제공할 경우에는 사용목적, 사용처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준감위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삼성은 또 관계사가 매년 한경협으로부터 연간 활동내용 및 결산내용 등에 대해 이를 통보받아 준감위에 보고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LG도 이날 전경련 가입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고 전날 LG전자와 각각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를 열고 전경련 재가입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LG에 따르면 참석한 ESG위원회 위원들은 내년 2월 정기총회까지 전경련이 글로벌 싱크탱크로의 전환이라는 혁신안을 제대로 실행하는지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은 회사 측에서 제안 또는 요청해야 함을 전제한 뒤 관련 사안들을 ESG위원회에서 주기적으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LG는 전경련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치적 중립 유지를 위한 안전 장치 마련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 ▲글로벌 싱크탱크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한 준비 등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4대 그룹이 이날 전경련의 회원으로 등재됐지만, 회비 납부와 기금 운영 등 회원사로서 실질적 활동을 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한경협 공식 명칭 사용은 내달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 이후 가능하다.

분담금 납부와 관련해 삼성 관계자는 "향후 한경협과 분담금 납부, 활동계획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한경연을 통해 한경협의 회원사가 된 만큼 전경련의 혁신안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분담금 납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G그룹 관계자는 "전경련 혁신안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살펴보고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날 전경련 총회에서 한경협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  류진 풍산그룹 회장은 취임 소감으로 "큰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 전경련이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받은데 대해 부끄럽다. 절대 그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못박았다.

윤리위원회는 정경유착 등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으로 이날 개정된 전경련 정관에도 명시적으로 규정됐다.

하지만, 전경련과 4대 그룹이 ‘회원사 자격 자동승계’ 방식을 활용하며 윤리적인 절차를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전경련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을 규탄하고 해체를 촉구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정경유착 사건이자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국정농단 사태의 중심에 전경련과 4대 그룹이 있었다"며 "전경련 재가입은 '재벌공화국으로의 회귀'를 공식화한 것이자 국정농단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경련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부의 집중을 심화하는 재벌 감세, 기업 규제 완화, 최저임금 인상 저지 정책을 국회와 정부에 제안하고 관철해 왔다"며 "한경협으로 개명한 것도 최소한의 반성없는 '간판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설립한 경제단체의 이름이다. 한경협은 이후 1968년 전경련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까지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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