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 대표 반체제 저항시인
'죽음의 굿판' 글로 운동권과 결별
말년엔 박근혜 지지 등 우익성향

김지하 작가가 2014년 10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운동 옥션단에서 열린 수묵산수전 '빈 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지하 작가가 2014년 10월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운동 옥션단에서 열린 수묵산수전 '빈 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포쓰저널] 박정희 유신시대의 대표적 저항 문인이던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최근 1년 여 동안 투병생활을 해 온 고인은 이날 오후 4시경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 고인과 함께 살고 있었던 둘째 아들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내외가 함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졌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소년기는 강원도 원주에서 보냈다.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다.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이다.

1970년 12월 첫 시집 '황토'를 출간했다. 대표작으로는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시와 산문집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1969년 '시인'지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본격적인 저항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1988년 9월 1일 서울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열린 88서울민족문학 페스티발에서 김지하 시인이 세계문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88년 9월 1일 서울 여의도 백인회관에서 열린 88서울민족문학 페스티발에서 김지하 시인이 세계문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낭독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던 시인 김지하씨가 재심을 통해 39년 만에 누명을 벗은 후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공판을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3년 1월 4일 /사진=연합뉴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던 시인 김지하씨가 재심을 통해 39년 만에 누명을 벗은 후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공판을 마치고 나오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3년 1월 4일 /사진=연합뉴스

등단 이듬해인 1970년 ‘사상계’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시 ‘오적’을 발표,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며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후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그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복역중이던 1975년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 사상가로 활동했다. 각 종교의 생명 존중 사상을 수용하고 생명 운동을 벌이는 데 힘쓰며 담시와 서정시를 썼다.

1991년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를 하다 사망한 명지대생 강경대 사망 이후 정국에서 조선일보에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라는 글을 게재, 변절 논란에 휩싸이며 운동권과 진보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다. 김지하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고인은 이후에도 2009년 '광우병 촛불 시위'를 반대하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객들을 비난하는 행보를 보였다.

2012년 11월 대선에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 안철수 당시 여타 후보들에게 막말을 해 “유신독재와 박근혜의 나팔수가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8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촛불집회·미투 운동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카톨릭 신자로 프란체스코라는 세레명을 갖고 있지만, 2008년부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2013년부터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임했다.

가족으로는 1973년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1946~2019.11.25)와 결혼해 김원보(작가), 김세희(토지문화관장)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김지하 시인이 2014년 10월 서울 종로구 견운동 옥션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지하 시인이 2014년 10월 서울 종로구 견운동 옥션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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