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 회장

 

규제샌드박스는 2016년 영국에서 제도화되면서 그 귀착점을 기존 금융서비스에 대한 와해적혁신을 통한 경쟁과 금융의 성장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혁신적 아이디어를 시장에 적용하는데 다르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해 주기 위하여 혁신적인 비즈니스에 적합한 규제체계(Regulatory Framework)를 별도로 설계하는 제도이다.

한국에서 금융규제샌드박스가 영국 등 다른 나라와 당면하고 있는 혁신생태계와 규제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제도의 본질과 취지를 완전히 몰각해서는 안된다. 금융혁신을 통하여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을 크게 하기위해서는 기존 금융서비스를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은 오히려 영국이나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욱 절실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간 32건의 금융혁신서비스를 분석하면 한국의 금융시장의 특수성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먼저, 은행, 카드사, 대기업 등 기존 금융기관들의 비중이 규제샌드박스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정된 32건 중 14건 정도를 차지해서 약44%에 달한다. 다만, 기존 금융기관들의 경우 BC카드 사례에서 보듯이 규제샌드박스로 제안된 서비스가 핀테크 기업들이 과거에 해당 금융회사에 제안했던 아이디어를 모방하였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혁신 아이디어나 혁신 기술과 상관없는 단순 규제해소 사안이 많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은행간 금리비교와 이를 이용한 대출서비스 등 관련 건이 6건에 달한다. 국민은행이 제안해서 채택된 알뜰폰 사업을 은행 부수업무로 인정받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것도 혁신과 무관한 단순 규제해소 사안이다.

마지막으로 혁신 아이디어나 혁신기술의 경우 오히려 기존 규제체계를 와해한다는 측면에서 쉽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지 못하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규제 등에 일반적인 현상이 일종의 성공의 역설(Paradox of Success)의 문제이다. 와해적 혁신을 가능한 혁신기술이 오히려 기존 규제체계에 위협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혁신생태계와 규제설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한다. 규제샌드박스가 성공하려면 필히 규제프레임을 새로 설계(Regulatory Framework)한다는 점에 대하여 금융위원회가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결국, 먼저 기존 금융서비스에 비하여 새롭거나 아주 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기술을 대상으로 새롭게 규제를 설계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해야 규제샌드박스의 본래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의 특색에 맞게 규제만 해소하는 과제가 있는 경우, 비효율을 줄이기 위하여 특정한 회사가 아니라 해당 규제 자체를 삭제하거나 변경하여 변경된 규제를 누구나 공평하게 적용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는 방법으로 규제샌드박스를 운용해야 한다.

그리고 규제샌드박스는 기존 금융서비스의 와해적 혁신을 목적으로 하므로 혁신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등에게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새로운 규제체계를 설계하는 것이므로 실제 기득권을 이미 가지고 있는 은행, 카드사, 증권 등 기존 금융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실상 시장진입 자체가 주어져 있으므로 규제샌드박스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도를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명백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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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샌드박스를 2016년 부터 금융혁신 제도로 정착시켜 온 영국의 경우, 규제샌드박스 대상으로 지정받아 서비스를 시행한 기업은 대부분 스타트업과 소규모 기업들이었으며, 소매금융(Retail Banking), 보험상품, P2P, 투자(Retail Investment) 등 다양한 금융분야의 혁신서비스가 규제샌드박스 내에서 와해적 혁신을 진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는 단순 규제해소에 의한 규제샌드박스 대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나 핀테크 기업들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는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영국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오히려 소위원회 등의 운영을 보면 와해적 혁신을 지향하기 보다는 은행, 카드, 보험회사 등 기존 금융회사와의 협력에 의한 규제친화적인 규제샌드박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농후해 보인다.

제가 직접 경험한 지난 19일 금융위원회에서 진행한 소위원회 운영을 보면, 현재와 같은 소위원회 구성과 프로세스로는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시장적용의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도록 고안된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위원회 운용자체에서 위원구성과 운영프로세스 두가지 면에서 혁신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 지고, 짧은 시간 동안 사전 검토한 기존 규제기관(금융감독원 등)이 이미 결론을 내려 놓고 형식적인 소위원회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었다. 또한 위원회 구성원들이 과연 각 규제를 새롭게 설계할 만한 역량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문제되었던 것은 기존 엄격한 텔레마케팅 보험판매 규제를 DB손해보험에 의해 진행될 AI에 의한 로보텔러를 허용하였으나, 음성과 문서, 이미지 등을 이용한 상호작용적인 텔레마케팅을 굳이 기존 규제틀 내에서 가능하므로 규제샌드박스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것은 이후 최종 결과를 보아야 겠지만, 대형 손해보험회사의 서비스이냐 핀테크 스타트업에 의한 서비스냐에 따라 기존 규제적 입장에서 자의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는 북구3국 순방 사실과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동반하였다는 것으로부터 그 의지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금융 규제샌드박스를 운영하는 금융위원회의 실행의지 또한 폄훼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의지와는 달리 현실적인 측면에서 규제체계 설계와 혁신생태계 활성화는 결코 쉬운 명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규제샌드박스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성패를 가름할 중요한 제도이다. 금융 규제샌드박스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규제설계 문제에 대한 재정의와 동시에 기술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운영프로세스를 도입하여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의심을 살만한 여지를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소위원회 운영에서 외부위원들을 줄이고 핀테크지원센터, 금융보안원 등 기존 전문성 있는 내부 실무진들로 구성해서 운영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데 유리하고 자의적인 결정을 줄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 law@cyb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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