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
규제샌드박스 자체의 규제체계 프로세스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
몰타, 핀테크 규제샌드박스 설계 하나로 한국 1인당 GDP 넘어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6박 8일 동안 멀리 핀란드, 스웨덴 등에서 혁신생태계를 우리나라 경제의 활로라 지칭하면서 국내벤처 등 스타트업계를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스타트업 출신 창업자들이 대통령의 혁신순방에 대거 동행하는 유례없는 사례는 덤이라 해도 좋았다.

지난 4월부터 시행된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은 1월에 미리 신청을 받는 등 법제정 과정에서 지적받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최종구 위원장의 의지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안착시키는 교두보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몇개월 지나지 않았지만 금융규제샌드박스가 시행이후 그간 32건의 서비스를 지정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오롯이 위원장의 정책적 의지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담당 기획단장의 고군분투가 한몫을 한 것도 분명해 보인다.

다만, 지금 우려스러운 점은, 처음부터 지적했던 바와 같이 규제 샌드박스가 국내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극히 한국적(?) 샌드박스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마치 한국적 민주주의가 유신을 낳았던 추억과 같이. 아시다시피 규제샌드박스는 처음부터 제도의 목적을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명확하게 하였다. 기존 금융적 관행을 혁신적 기술을 바탕으로 와해적으로 혁신하면서 그에 맞는 새로운 규제체계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규제샌드박스를 운용하거나 심사하는 과정을 보면 사실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일은 프로세스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빵을 만들려면 빵을 만드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듯이. 빵을 만드는데 밥을 짓는 프로세스를 거치면 빵이 나올 수가 없다. 와해적 혁신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것은 그 담당팀을 세팅하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기존 규제를 온존시키고 담당한 부서에 새로운 제도의 심사를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아무리 영혼없는 공무원 운운하지만 과연 한손으로는 기존 규제를 운운하면서 다른 한손으로 와해적 혁신을 다루는 모습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까.

현재 32개 혁신서비스를 분류해 보면, 사실 그간 우리 금융서비스가 얼마나 규제에 취약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금리비교, 카드별 혜택 비교 등 대부분 아주 간단한 칸막이 규제문제거나 모바일앱을 통한 개인 계모임 운영같이 간단한 규제와 서비스 방법에 대한 것이다. 가끔씩 기존 카드사들이나 금융회사들이 제3자가 제안한 서비스를 마치 자신이 안출한 것처럼 제시하여 지정받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BC카드가 제안한 QR코드를 이용한 경조사비를 지급할 수 있는 서비스는 사실 두개 회사(팍스코네와 인스타페이)로부터 제안받은 것을 자신의 서비스로 재제안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밀린 규제에 의해 시작하지 못했던 많은 서비스가 그나마 간단한 규제해소만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제도 본래 취지에 맞는 혁신서비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규제체계를 필요로하는 와해적 혁신기술에 기반한 혁신서비스가 규제샌드박스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와해적 혁신을 가져 올 혁신기술이 없었기 때문이겠거니 치부할 수도 있지만 지난 6월 19일에 진행된 혁신소위원회를 지켜보면서 처음 우려대로 구조적 문제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기존 보험규제를 담당하였던 금융감독원 보험담당자가 사전검토를 하고 금융위원회의 보험과에서 사실상 결론을 내리는 프로세스를 거쳐서 혁신소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되고, 5분의 발표와 질문 등 30분도 채 되지 않는 과정을 거쳐 사실상 결정한다.

규제샌드박스는 무엇보다 담당자의 기술감수성이 필요한 제도이다. 와해적인 혁신기술에 기반하여 기존 금융서비스를 와해적으로 혁신할 수 있도록 규제체계를 새롭게 설계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기존 규제프레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와해적 혁신기술은 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성공의 역설(Paradox of Success)이나 규제의 역설(Paradox of Regulation)이 적용되는 상황이 연출될 위험성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상호작용적 기술에 기반하여 기존 음성에만 의존한 보험판매(TM)로 인하여 불완전판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기술에 대한 지적이 시간을 줄이려는 위험한 시도라는 것으로 규정되는 것은 규제샌드박스라는 제도의 근본 취지 자체를 몰각하는 것이다라고 밖에 해석될 수 없다. 그동안 전화를 이용한 보험판매의 수많은 규제해소 제안에 대해 ‘상호 작용적’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거부했던 것을 ‘상호작용적인 와해적 기술’을 개발하여 불완전 판매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규제샌드박스 제안에 대해, 불완전 판매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혁신기술이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기존 규제체계에 익숙한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위험한 기술’이라거나 ‘기존 규제를 위험하게 하는’ 와해적 기술이라는 점을 들어 지정에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근본을 뒤엎는 지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다. 규제샌드박스의 취지가 바로 그런 와해적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기존 규제를 넘어 새로운 규제체계(Regulatory Framework)를 설계하겠다는 것이다. 핀테크연구회 회장닌 필자가 직접 경험하고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 물론 전화판매 보다 인터넷비대면 판매(CM)에 더 적합한 기술이라거나 기존 규제체계 내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첨언은 별론으로 한다.

핀테크 업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신뢰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고 최종구 위원장의 실행의지가 대단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 혁신은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이다. 이제 규제로 점철된 금융이 겨우 그 첫걸음을 떼고 있다. 더구나 위 혁신기술에 대하여 기존 규제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친절한 결론까지 내려주고 싶어하는 담당자에게 굳이 제도의 취지에 대한 몰이해와 프로세스 설계오류의 잘못까지 덮어 씌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이제부터라도 규제샌드박스의 심사과정과 결정과정의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차제에 영국처럼 실무조직인 핀테크지원센터를 규제샌드박스 프로세스의 중심에 두는 것도 한번 고려해 봄직하다. (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 law@cyberla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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