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 우선선정권 시장 구청장에게 주는 건 자충수

/국토교통부 제공

주택 거래량이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전국 주택매매 거래량은 7만7000 건이었다. 6월에 비해서는 5.1% 늘어난 것이지만, 지난해 7월 대비로는 94%나 폭증했다. 

지난해 7월에는 특수상황이 있긴 했다. 당시 6월말로 취득세 감면혜택이 종료되면서 거래량 절벽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기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확실히 주택경기가 올라오는 분위기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아파트 가격도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오름세다. 8월 둘쨋주 기준 연 3주째 상승세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부동산 띄우기가 시장에 먹혀 들어가는 분위기다. 전세값이 폭등한데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로 매수심리가 꿈틀거리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시장에서도 호전 시그널이 많이 나오는데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까지 내린 만큼  국내 부동산 시장도 지금이 최소한 단기 바닥권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경기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나 최 부총리 입장에서는 입꼬리가 올라갈만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모든 국민에게 행복감을 줄 수는 없다. 무주택 서민에게는 되레 살 떨리는 뉴스다. 

2012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자가점유률은 53.8%에 불과하다. 2010년의 54.3%보다도 더 떨어졌다.  전세나 월세 등 남의 집살이하는 가구가 절반 이상이고 더구나 늘어나는 추세인 것이다.

물론 무주택자 중에도 중산층 이상 부류가 있겠지만, 상당수는 형편이 안되서 집장만을 못한 사람들일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이들의 좌절감과 불안감은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서민층 주거안정은 사회안전망 구축의 핵심 중 핵심 과제다.  국회가 국토교통부에 올해 임대주택 예산을 6조6781억원이나 준 이유이기도 하다. 

행복주택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대학생 등 젊은층의 주거 불안 해소를 위해 직주 접근성이 좋은 도심지에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젊은층 중심, 도심공급 개념을 특화한 임대주택인 셈이다.행복주택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주거복지 정책이다. 정말이지 그 명칭만큼이나 결론이 행복하게 갈무리돼야 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행복주택을 현 정부 임기동안 총 14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시작은 의욕적이고 장밋빛이었다.

애초에는 서울 가좌 공릉 목동 송파 오류 잠실, 경기 안산 고잔 등 시범지구에서만 1만호 정도를 짓겠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출발하자 말자 좌절이 시작됐다. 슬럼화와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하는 시범지구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가로막혀 목표량이 4666가구로 반토막났다.

이마저도 주민들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목동지구를 포함한 공릉, 송파·잠실, 경기 고잔지구는 아예 올해 사업계획에서 빠졌다. 목동지구는 양천구청이 나서 사업취소을 요구하는 소송까지 낸 상태다.

정부가 일부 주민들의 님비 현상에 속절없이 밀려나면서 과연 이 사업이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지 의문이 제기됐다.

대통령과 청와대만 바라보는 우리 정부의 속성상 2017년까지 14만가구라는 양적 목표는 아마도 달성할 것이다. 국토부와 LH 등은  여차하면  기존 보금자리주택지구 같은 곳을 활용해서라도 목표치는 채우려고 할 것이다.

국토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각 지자체의 참여을 유도하기 위해 기초자치단체장, 즉 시장 군수 구청장들에게 입주자 우선선정권을 주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현재 입법예고해 놓은 상태다.  이에 따르면 행복주택 공급 물량의 50%는 기초단체장이 입주자를 우선 선정할 수 있다. 지자체나 지방공사가 직접 시행할 경우에는 우선공급 범위가 70%까지 확대된다.

이 유인책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덕분에 국토부는 애초 자기들이 정한 시범지구 물량이 반토막나는 창피를 당했음에도 올해안에 전국적으로 2만6000가구 정도의 행복주택 사업계획이 승인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의 이런 방침은 서승환 장관이 올초 목동지구 등에서 주민들에게 면박을 당한 이후 일종의 위기타개책으로 급조됐다. 연구용역까지 거쳤으니 선진국 사례 등도 참조를 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기초단체장에게 입주자 선정권을 주는 것은 몇가지 측면에서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국토부와 서 장관이 14만가구 건설이라는 수량적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사실상 '꼼수 정책'을 쓰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우선 국민 혈세로  특정 지역 주민, 그것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는 꼴이 된다. 행복주택은 국민임대와 같은 예산지원을 받는다. 공사비의 30%는 국가가 내주고 40%는 국민주택기금에서 장기 저리로 지원된다.

해당 시장이나 구청장은 입주자 50%를 선정할 때 당연히 자기 지자체 주민에게 우선권을 줄 것이다. 행복주택은 그 개념상 도심에 짓는 것이어서 그린벨트 등 주로 도시외곽에 짓는 기존 임대주택과는 입지매력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젊은층 주거안정을 목표로 하는 만큼 임대료도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목동이나 잠실 등 소위 잘나가는 동네에서 구청장이 입주권을 준다고 하면 객지에 나가  있던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자녀를 되불러 들여서라도 입주를 시도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국민임대와 같은 수준의 예산지원을 받으면서 지어지는 행복주택이 결과적으로 도심지 중산층 내지는 먹고살만한 사람들의 세컨드 하우스 정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청년 행복을 위해 지어지는 행복주택이 지역간 위화감만 더 키우는 암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과연 시장 구청장 군수 등 기초단체장들이 이런 일종의 이권 사업을 사심없이 원만하게 추진할 만한 역량이 되느냐는 점이다. 기초의회 수준도 거의 바닥인 마당에 토호들과 기초단체 간부 등이 농간을 부려도 감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3~4년간 전국적으로 최소한 7만 가구의 행복주택 입주권이 시장, 구청장, 군수들 손아귀에 들어간다. 이들이 이를 활용해 행복주택을 일종의 사전 선거운동용 선심거리 정도로 타락시키지 않을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전국 청년들의 최저주거기준 미달률은 14.7%에 이른다. 이런 현실에도 그동안 주거복지 정책 대상에서 소외되온 대학생, 사회초년생들에게 그나마 희망의 씨앗이라도 심어주려는 것이 행복주택이다.

국토부가 목표량 달성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행복주택의 이런 원래 취지를 스스로 외면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같다. 

지자체 참여유도를 위해 입주자 우선 선정권을 주더라도 그 권한은 기초단체장 보다는 광역단체장으로 한정하는 것이 그나마 예산소요 정책의 성격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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