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비추어 무죄 가능성이 더 높아

▲ 가토 타츠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사진출처=산케이신문

검찰의 산케이신문 기자에 대한 명예훼손 기소가 일본 뿐 아니라 미국 국무부에서 조차 비판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그 여파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수봉)는 박근혜 대통령의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의혹을 칼럼으로 쓴 가토 다츠야(48)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8일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상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며 재판에 넘겼다.

일본 언론은 거의 모든 매체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당사자인 산케이는 물론 요미우리, 마이니치, 도쿄신문, NHK, 심지어 평소 산케이와 대척점에 서온 진보지 아사히신문까지 ‘언론탄압’이라는 기조로 관련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경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강권적인 자세와 대통령의 의향에 충실한 한국 검찰의 체질을 보여줬다"고 청와대와 검찰을 싸잡아 비판했다.

일본 정부도 발끈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9일 "보도의 자유나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 회견에서 "언론의 자유, 한일 관계의 관점에서 매우 유감 스럽다 "며 "국제 사회의 상식과 크게 동 떨어져있어 정부로 한국에 사실 관계를 자세히 확인하고 우려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미 국무부까지 "우려" 비판적 논평

▲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이 8일(현지시간) 한국검찰의 산케이 기자 기소에 대해 논평하고 있다./사진=SBS뉴스 화면 켑쳐

미국 정부도 이번 기소가 언론자유와 관련해 문제가 있다는 논평을 내놨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8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기소된 보도는 알고 있고 처음부터 수사 상황을 지켜봐왔다"며 "우리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 있으며 한국 국내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올해 2월 발표한 2013년 인권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국가보안법 등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공소장을 받은 서울중앙지법은 다음주 초 담당 재판부를 정해 재판을 시작할 예정이다.

정치적, 외교적 측면에서 보면 법원으로서는 가토 기자에게 유죄, 무죄 어느쪽으로도 판단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유죄를 인정한다면 7년이하 징역형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다. 물론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유죄판단 자체가 가져올 국제적 비난여론 등 뒷파장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만약 법원이 무죄 판단을 한다면 담당 검사나 부장검사 뿐아니라 김진태 검찰총장이나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타협 가능성은 남아있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공소장에서 피해자로 명시된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1심판결 선고 전까지 처벌의사가 없음을 통보하면 공소는 기각된다.

▲ 검찰은 공소장에서 조사결과 정윤회씨는 4월16일 청와대에 간 일이 없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화면캡쳐

► 비방목적, 허위 인식, 검찰이 입증책임

그렇다면 순전히 법리상으로만 따졌을 때 법원은 가토 기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것인가? 그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관련 판례를 검토한 결과 법원이 법논리에 맞게 가토 기자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핵심은 기사의 내용이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느냐, 그렇다면 가토 기자에게 ‘비방의 목적’과 ‘사실이 허위라는 인식’이 있었느냐 인데, 검찰이 이를 입증하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참고로 정보통신망법 관련규정인 제70조 2항을 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가토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의 4월16일 세월호 참사당일 일정과 관련해 7월 18일자 조선일보의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답변을 계기로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모처에서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 등의 글이 게재 된 것을 발견하고, 그 소문의 진위 여부에 대해 당사자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상기 칼럼을 일부 발췌해 인용하고, 출처 불명의 소식통에 의지해 마치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피해자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든가, 정윤회 또는 최태민과 긴밀한 남녀 관계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는 기사를 게재하려고 생각했다”고 적시했다.

가토 기자의 `비방의 목적’과 ‘사실이 허위라는 인식’을 입증하려는 취지다. 기자가 확인되지 않은 팩트로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해 왈가왈부 한 것은 곧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사실처럼 포장한 행위라는 주장이다.

풍문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기자가 책임질 일이긴 하다.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기자가 대통령에 대한 그러한 풍문을 명확히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형법상 면책요건이 될 수 있는 ‘기대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검찰로서는 가토 기자에게 '사실이 허위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게 만드는 부분이다.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황이 있으면 설사 부분적으로 허위가 있더라도 위법성이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의 경우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서 사실 여부가 판정되기 전에는 언론사 기자는 어떠한 기사도 쓸 수 없다는 논리적, 현실적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 대법원, 공인인 경우 '비방의 목적' 해석 엄격

▲ 대표적 우파 정객이자 반한 인사인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시장은 9일 가토 기자에 대한 기소와 관련해 "(한국이)아주 무서운 나라다. 선진국,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사진출처=산케이신문

 

더구나 이 건의 피해자는 공인이다. 그것도 일거수 일투족, 심지어 입는 것 먹는 것까지 국민의 알권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대표적 공인인 대통령의 일정에 관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는 공인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비방의 목적‘을 엄격하게 해석해서 좀체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가토 기자 케이스와 유사한 가장 최근의 대법원 판례 [대법원 2011.11.24, 선고, 2010도10864, 판결] 하나를 보자.

세무공무원인 피고가 국세청 지식관리시스템 특정 코너에 전 국세청장 甲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 내용의 게시글을 올려 甲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하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할 때 피고인에게 ‘허위의 인식’ 및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인정한 원심판단을 정당하다고 한 사례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2항의 정보통신망을 통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그 적시하는 사실이 허위이어야 할 뿐 아니라, 피고인이 그와 같은 사실을 적시함에 있어 적시 사실이 허위임을 인식하여야 하고, 이러한 허위의 점에 대한 인식 즉 범의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법 제70조 제1, 2항에서 정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란 가해의 의사 내지 목적을 요하는 것으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당해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형량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비방할 목적이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의 방향에 있어 서로 상반되는 관계에 있으므로,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봄이 상당하고, 여기에서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경우’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는데,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적시된 사실이 이러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당해 명예훼손적 표현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무원 내지 공적 인물과 같은 공인(公人)인지 아니면 사인(私人)에 불과한지 여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여부, 피해자가 그와 같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그 침해의 정도, 그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 2005. 10. 14. 선고 2005도5068 판결, 대법원 2011. 7. 14. 선고 2010도17173 판결 등 참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가토 기자가 오로지 개인적인 이익이나 만족을 위해 당해 기사를 썼다는 것을 검찰이 증명하지 못하는 한 가토 기자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는 주장을 관철 시킬 수는 없어 보인다.

즉 △ 주 피해자가 대통령이라는 절대 공인이고 △ 주로 적시한 사실이 대통령의 일정, 더구나 대형 참사 당일 일정이라는 공공의 이익 또는 관심사에 관한 사항이며 △ 기사 작성 당시 청와대가 4월16일 당일 대통령 일정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점에 비추어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 설사 가토 기자에게 어떤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있다고 해도 주된 동기 내지 목적이 권력 감시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 인정된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법원은 검찰보다는 가토 기자의 손을 들어줄 공산이 큰 것이다.

► "특파원 정국 진단 칼럼은 '사실의 적시' 아닌 의견표명" 주장도 가능

또한 가토 기자의 당해 칼럼이 과연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는 지도 의문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가토 기자의 칼럼은 “한국갤럽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에 이어 40%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권위는 이제 볼품없이 된 것을 말해준다. 이렇게 되면 쏟아지는 것이 대통령 등 권력 중추에 대한 진위 불명의 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여객선 침몰 사고 발생 당일인 4월 16일 박 대통령이 낮 7시간에 걸쳐 소재 불명이 되고 있었다고 하는 ‘팩트’가 나와 정권의 혼탁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후 가토 기자는 조선일보 칼럼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정씨와 최태민 목사 등을 거론하며 풍문의 내용을 소개하는 식으로 칼럼을 썼다.

이는 외신특파원들이 흔히 하는 정국 진단 차원의 의견 표명이라고 봐야 하지, 이를 엄밀한 사실확인이 필요한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언론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 함께 정윤회씨를 언급한 기사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국내 언론에도 이미 상당수 나온 상태였다.

가토 기자 입장에서는 이미 공개된 사례들을 적시하며 세월호 이후 한국 정국의 혼란상을 진단하는 의견을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법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 자체가 부인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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