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각, 스스로 자, 도모할 도, 살 생>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45일간 우왕좌왕하던 인조가 삼전도(三田渡)로 나와 이마로 맨땅을 쿵쿵 찧으며 피를 질질 흘리는 3배 9고두례(三拜九鼓頭禮)로 청태종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구걸한 후 조선 땅은 빈곤과 수탈에 찌들린,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고만다.

특히 철군하던 청군들은 30만~50만으로 추정되는 조선 여인들을 자기 나라로 끌고갔는데, 첩이나 노예로 부리고 살다가 돈을 주면 조선으로 돌려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압록강을 넘은 조선의 딸들은 더이상 갈 곳이 없었다. 고향집에서도 대부분 문전박대(門前薄待) 당했다. 청에서 임신했거나 접대부 노릇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의미의 환향녀(還鄕女)는 시나브로 '화냥년'이라는 욕이 돼버렸고, 그녀들이 낳은 아들 딸들은 오랑캐의 자손이라는 뜻의 '호로자식(胡虜子息)'으로 불리며 따돌림 당했다. 

못난 임금 탓에 개털리고 그  나라한테 버림받은 것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비렁뱅이나 산 도적이 되어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 밖에 없었다. 

성완종 게이트, 이완구·홍준표 등 권력 부패스캔들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의문 하나. 권력자의 부패와 무능 중 어느 게 더 큰 죄일까?  380년전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교훈은 분명하다. 부패한 광해군보다 무능한 인조가 훨씬 공동체 파괴력이 컸다는 점. 광해군은 '기우는 명(明), 떠오르는 청(淸)'이라는 국제정세를 읽고 균형외교로 왜란 이후 민생을 그나마 안정시켰다. 인조는 대의명분(大義名分)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매달려 친명반청(親明反淸) 객기를 부리다 결국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이후 조선 백성을 기다린 건 도탄(塗炭)과 쇠락(衰落)뿐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380년전 조선으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믿고 기울져 가는 세월호 안에서 국가의 손길을 기다리며 바둥거리던 그 아이들은 죄다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말았다. 도대체 나라가 해준 게 뭐고, 해줄 수 있는 게 뭐냐? 무슨 고귀한 일이 그리 많아 선체 인양 결심 하나 하는 데 365일이나 걸리나?

이러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비상사태라도 닥치면 그 때 처럼 헤쳐나갈 힘이나 남아있을 지 의문이다. "인생은 각자 사는 거야, 남이야 죽든말든 너나 알아서 살아남아! 세월호 선장처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다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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