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헌 법무법인 천고 대표변호사

내가 국제거래 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은 외국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리한 국제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협상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지만, 막상 마지막 계약체결 단계가 되면 지쳐서 더 양보하더라도 계약체결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국제계약 체결에 대한 내부통제시스템이 없는 경우 많이 생기는 현상인데, 협상책임자가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지고 의사결정을 하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하게 되면 마지막에 쉽게 지치게 되고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회사인 B사와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게 된 한국의 A사는 양보의 선을 정해 두고서 치열한 협상을 해 왔었다. 그러나, 계약협상을 하는 동안에도 생산을 위한 준비도 해야 하고, 자금도 마련해야 하는 등으로 많은 준비를 해 온 A사로서는 빨리 계약을 체결하고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계약체결이 지연되어 생산이 늦어지게 되는 것도 A사로서는 부담이었던 것이다. B사도 A사와 마찬가지로 빨리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절실하였다. 그러나 B사는 사내 법무팀의 검토 등을 이유로 계약체결을 지연하였고, 결과적으로 B사는 계약체결 마지막 단계에서 A사로부터 추가적인 양보를 받아내었다.

또 다른 사례에서 한국기업인 C사는 외국기업인 D사와 계약협상을 마무리하고 D사의 본사로 담당임원이 출장을 가서 계약체결식을 준비하였다. 계약체결식 당일 D사는 계약의 당사자를 D사에서 자신의 계열사로 바꾼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이건 거래는 계열사가 담당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모기업인 D사가 책임을 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C사의 담당임원은 갑작스런 변화에 어찌해야 할 지를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감하게 서명을 거부하고 새로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회사에 대한 조사를 하고 다시 계약 진행여부를 판단하여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법률전문가가 아닌 C사의 담당임원으로서는 계약의 당사자가 계열사로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명을 거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엉겁결에 D사의 말을 믿고 D사의 계열사를 당사자로 하여 거래를 진행하였는데 결국 분쟁이 생기고 말았다. 모기업인 D사는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그 계열사는 재산이 없어서 C사는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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