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이 지난 10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에 대해 찬성하기로 했다는 미확인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누군가에 의한 ‘언론플레이’ 성격이 강해 논란과 갈등은 더 커질 전망이다.

사실상 특종을 한 조선일보는 11일자 지면에서 1면 머리기사로 ‘삼성 합병 건에 국민연금 찬성’이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매체들도 조선일보를 따라서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운하는 기사를 쓰고 있다.

막상 국민연금측은 가타부타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17일 삼성 주총 장에서 찬반 여부 등을 공개하겠다는 무책임하고 황당한 입장만 되뇌고 있다는 전언이다. 

조선일보 등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1 주가 아쉬운 삼성으로서는 11.21%라는 막강한 우군을 추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계열사를 비롯해  이미 백기사를 자처한 KCC까지 합치면 삼성물산 지분 30.99%가 확실하게 삼성 편에 서게됐다.

그렇다고 문제가 종국적으로 삼성에 유리하게 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엘리엇은 되레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을 수 있다. 어차피 펀드의 주된 관심사는 합병안 통과 여부 등이 아니고 돈을 버는 데 있다. 국민연금 건으로 삼성측에 그린메일(적대행위를 멈추는 대신 주식을 비싸게 사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낼 명분만 하나 더 확보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엘리엇으로서는 합병 주총 이후 매입가 대비 평가액이 낮아지는 등 현실적으로 손실이 발생할 경우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할 확실한 꼬투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종전까지는 엘리엇이 ISD를 제기하고 싶어도 명분이 애매했는데, 조선일보 등의 보도가 사실이면 엘리엇이 한국정부를 걸고 넘어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국민연금기금의 투자 관련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인데, 이 위원회의 장을 국무위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외부 자문기구인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찬반 결정권을 넘겼다면 결과와 관계없이 엘리엇이 국민연금과 관련해 ISD를 제기하기는 힘들다. 정부가 아닌 민간기구가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ISD를 제기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국민연금의 ‘삼성 지지’ 가 당장 17일 주총에서 삼성을 유리하게 하는 것만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으로서는 합병안 통과를 위해선 우군을 추가로 더 확보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의 ‘한국 경제 운운하는 정치적 행위’가 외국인은 물론 국내 기관 투자자들에게도 반감을 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이 합병안을 주총에서 통과시키려면 주주들의 주총 참석률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호지분을 최소한 20%정도는 더 확보해야 한다.합병안이 가결되려면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즉 66.67%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소액 개인투자자(24.43%)를 뺀 나머지 주주가 모두 주총에 참석한다고 가정하면,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 기관투자자(11.05%)와 엘리엇을 뺀 외국인투자자(26.41%)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이 삼성 편을 들어줘야 합병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생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애국주의적’ 주장이 이들 프로 투자자 눈에는 유치한 후진국 논리로 비칠 수 있고, 결국ISS(기관투자자서비스)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이 제시한 반대논리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종전보다 되레 더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순수하게 주주로서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제일모직 주총에서는 찬성표를 던지고, 삼성물산 주총에서는 반대표를 던지는 게 가장 합리적인 판단일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연금기금은 한국경제나 삼성 지배구조를 책임지거나 걱정하라고 만든 조직이 아니다. 순수한 펀드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어떻게 해서든 부풀리는 게 임무다. 우리가 먹튀 자본이라고 욕하는 론스타도 미국 연기금 돈을 많이 위탁받아 굴리고 있다. 론스타가 수익극대화 이외에 미국경제, 글로벌 경제 운운하며 정치적 판단을 한다고 하면 미국 연기금들은 당장 론스타 계좌에서 투자금을 뺄 것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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