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헌 변호사(법무법인 천고 대표)

국내거래나 국제거래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분쟁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분쟁상황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분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매우 중요한 숙제이다.

나는 변호사로서 분쟁을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 기회가 많다. 내가 보기에 분쟁은 사전에 예방이 가능하고 분쟁이 생겨도 원만하게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즉 분쟁이 생기면 신속하게 분쟁을 마무리할 수 있는데도 대체적으로 분쟁이 확대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분쟁상황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분쟁의 피해자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사과를 하기만 하면 더 이상 분쟁을 확대하지 않고 종결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왜냐하면 분쟁 자체가 고통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적 손실을 일부 분담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임을 져야 할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발뺌을 하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이 된다.

멋지게 용서해 주고 싶은데 그것이 안되니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파렴치한 가해자를 응징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가해자 측에서는 두려움이 있다. 책임이 상대방에게도 있는데 내가 잘못을 순순히 시인하고 사과를 하게 되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나중에 재판을 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법적 책임이 반드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하게 되면 분쟁 자체가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하형록회장은 미국에서 주차빌딩건축설계로 유명한 Timothy Haahs & Associates, Inc의 대표이다. 그는 오바마정부 건축자문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P31'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번은 어떤 대학교의 주차빌딩설계를 하고 기초 공사를 하고 있는 중에 보일러관이 공사장 아래에 지나간다는 연락을 학교로부터 받게 되었다. 학교측에서는 설계회사가 설계하기 전에 보일러관이 지나간다는 것을 미리 파악하고 보일러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하회장은 설계 당시에 보일러관이 오래되어서 학교측에서 다시 설치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학교측에서는 아무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회장은 난감하였지만 보일러관 문제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잘못이기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였다.

그러자 대학 건축담당자는 "건축을 할 때마다 건축회사와 싸움을 해 왔는데 지금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회사가 없었다.

더구나 '내 실수다'라고 먼저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그 이후 대학의 모든 공사를 하회장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것은 정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진심어린 사과가 분쟁을 막고 해결해 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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