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자료사진
김병원 농협중앙회 회장./자료사진

[포쓰저널=안준영 기자]  "농협이 창립 이래 최대 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2016년 3월14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취임사)

농협이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본격화되면서 흔들리고 있다.

김병원 회장이 2년여전 취임사에서 고강도 조직개혁을 예고하며 제시했던 내부 문제점들이 재임 절반을 넘긴 지금 희석되긴 커녕 악화되는 분위기다. 올 국정감사에서도 농협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가 단골메뉴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이 단적인 예다.

'선거법 위반' 프레임에 갇힌 김 회장이 조직 난맥상의 원죄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김 회장에 대한 항소심 결론도 반전 가능성이 의문시되면서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제2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당선 과정에서 불법 선거 의혹을 받고 있는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항소심 7차 공판을 1일 진행했다.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참석한 증인들은 당초 입장을 바꿔 김 회장을 옹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외부 부탁에 의해 김 회장을 지지했다고 진술했던 조합장 등 증인들이 2심에서는 이를 번복해 김 회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다는 것.

하지만 이날 증인 신문이 판결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서울 서초동 한 변호사는 "실정법 위반이 명백해보인다. 유무죄를 다툴 만한 사안이 아니다"며 "문자 보내고 투표장에서 함께 손들고 왔다갔다 했다는 팩트를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6년 1월 농협 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김 회장과 최덕규 전 합천가야농협 조합장은 "누가 결선에 오르든 서로 밀어주자"고 공모하고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 회장이 1차 투표에서 2위를 얻자 최 전 조합장은 결선 투표 당일인 2016년 1월12일 대포폰을 이용해 "김병원을 찍어 달라. 최덕규 올림"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대의원 107명에게 보냈다. 이들은 투표 당일 투표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농협중앙회장은 대의원 조합장 투표로 선출된다.

공공단체 등 위탁 선거에 관한 법률(위탁선거법)은 농협중앙회장 임직원 선거에서 후보자 이외의 제3자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선거 당일 선거운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말 김 회장의 공소사실을 상당 부분 유죄로 판단,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김 회장과 공모해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최 전 조합장에게는 벌금 250만원을 부과했다. 김 회장은 이에 불복해 올 초 항소했다.

김 회장 측은 법정 싸움에 대비해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한 상태다. 태평양, 율촌 등 국내 유명 로펌 몇 군데를 방어벽으로 쌓았다.

또 다른 변호사는 "수임료가 부르는게 값인 태평양과 전관  법관들이 많은 율촌을 썼다는 건 절박하다는 방증"이라며 "송무분야 국내 최상위 2개 로펌을 투입하고도 1심서 300만원이 나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결정적 반증이 없는 한 2심 결과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김 회장 측이 공소사실은 인정하는 대신 위탁선거법의 빈틈을 공략, 선처를 호소하는 대응 전략으로 맞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위탁선거법 자체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항변하면서 벌금형 플러스(+) 선고유예를 받는 쪽으로 항소심 전략을 짤 수 있다"며 “100만원 이상의 형량을 받아들이되 관련 법이 미진한 점이 있기에 처벌을 최대한 경미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는 전략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1심 재판부는 위탁선거법이 선거운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김 회장의 양형을 검찰 구형량보다 낮춘 바 있다.

김 회장 측이 위안을 삼을만한 전례도 있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허위사실을 공표(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심과 달리 2015년 2심에선 벌금 25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아 당선무효 위기에 처했던 조 교육감은 2심의 선고유예 결과가 이듬해말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교육감직을 유지했다.

선고유예란 비교적 경미한 범죄를 처벌하지 않고 2년이 지나면 면소해 없던 일로 해주는 일종의 '선처'다.

김 회장에 대한 8차 공판은 내달 20일로 잡혀 있다. 공판 흐름에 비춰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당선무효형이 유지될 경우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하다. 김 회장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금융계 인사는 "항소심 결과가 당선무효형이냐 안정적이냐는 천지 차이"라며 "당선무효형으로 갈 경우 레임덕이 진행되면서 주요 경영 현안이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장은 민선으로 바뀐 뒤 선거 때마다 선거부정 시비가 있었고 전임 농협중앙회장 4명 가운데 3명이 사법처리되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 도넘은 제 식구 챙기기...농업인엔 학자금도 쥐꼬리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농협은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이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농협중앙회는 2008년부터 4305명의 농협 소속 직원들에게 주택구입자금 대출이자를 편법으로 돌려줘 사실상 금리 0%대의 '황제대출'을 해 왔다. 특혜금리는 농협중앙회뿐 아니라 은행, 생명·손해보험이 포함된 NH농협금융지주 등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행됐다고 한다.

학자금 지원도 농협중앙회 임직원과 농업인 사이에 격차가 크다.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중앙회 임직원 자녀에게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는 물론 해외유학까지 모두 332억원의 학자금을 풀었지만 농업인 학자금으로는 고등학교까지 29억원을 지원하는데 그쳤다.

퇴직인사 챙기기도 문제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농협중앙회 퇴직인사 가운데 121명이 농협 계열사로 재취업했다. 이 재취업자들의 연봉과 성과급을 합한 연평균 보수는 3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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