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주가 장기 추이. 2014년 9월18일(화살표 부분)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를 매입한 당일 장중 10%이상 급락하며 시장에 충격을 준 이후 현대차 주가는 이후 지금까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 판매부진 이전에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수뇌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다./자료=이베스트투자증권
현대차 주가 장기 추이. 2014년 9월18일(화살표 부분) 서울 삼성동 한전부지를 매입한 당일 장중 10%이상 급락한 이후 현대차 주가는 지금까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 판매부진 이전에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현대차 수뇌부의 판단력과 장기비전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다./자료=이베스트투자증권

[포쓰저널=염지은 기자] 2014년 9월18일. 현대차그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97만9342㎡)를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계열사 주가는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당시 현대차 주가는 전일 대비 9.17% 급락, 19만8000원에 마감했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주가도 전일보다 각각 7.89%. 7.80% 떨어졌다.

이날 하루만 현대차 3사 시가총액은 8조2400억원이 날아갔다. 

정몽구 회장 등 현대차 수뇌부의 판단력과 장기비전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됐다. 

당시는 테슬라 모델S가 촉발한 전기차 충격이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하던 시점이다.

글로벌 메가 트렌드가 화석연료차를 넘어 친환경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자동차로 급속히 넘어가던 변곡점이었다.

"현대차가 한전부지에 쏟아부은 10조원중 10분의 1만 기부하는 셈 치고 서울시내에 전기차 급속충전기를 깔았다면 서울은 지금쯤 글로벌 전기차 테스트베드가 되어 있을 것이다. 1조원이면 급속충전기 3만3천개를 설치할 수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지적대로 현대차 추락의 서막은 이때 열렸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  R&D 비중 경쟁사 절반 수준...미래도 실종

한전부지 매입 이후 현금 유동성이 위축되면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기술확보를 위한 현대차의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 여력도 떨어졌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 단기금융상품 등 현대차 3사의 현금 유동성은 한전 부지 매입 직전인 2014년 6월 35조9187억원(현대차 25조1750억원, 현대모비스 4조2080억원, 기아차 6조5357억원)이었다.

지난 6월말 기준 현금유동성은 현대차 17조777억원, 모비스 2조8324억원 기아차 7조7010억원 등 총 27조6111억원이다.

4년 사이  8조3076억원이 줄어들어든 것이다.

현대차 주가는 6일  종가기준 10만7500원이다. 모비스는 19만5500원, 기아차는 2만8950원이다. 2014년 9월 18일에 비해 각각 46%, 24%, 47% 하락했다.

그동안 현대차 3사의 시가 총액은 35조원이 날아갔다. 현대차 19조3370억원, 현대모비스 5조9767억원, 기아자동차 10조1544억원이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줄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현대차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2.6%다. 폭스바겐 6.7%, 도요타 3.8%은 물론 중국 신생사 비야드(BYD )3.6%보다도 적다.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경쟁에서 현대차는 글로벌 선두권에 비해 3년 이상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래차 메인 트렌드인 전기차 글로벌 시장 진입에도 사실상 실패했다. 

전기차 보다 한단계 고차원인 수소차를 밀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치 않다.

수소차 ‘넥쏘’의 10월까지 판매량은 427대다. 가동 중인 수소차 충전소는 현재 서울 2곳 등 전국에 10곳 뿐이다. 서울시가 설치한 상암동 수소충전소의 경우 건설비가 6억원이 들었다. 인프라 확충이 쉽지 않은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의 친환경차 시장도 전기차 중심으로 이미 형성돼 있고, 수소차는 차순위로 미뤄져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현대차의 자율주행차 경쟁력은 상위 50개 자율주행차 개발 기업 중 35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구글의 웨이모, 일본의 도요타 등 선두기업과 비교해 자율주행 특허 개수가 두 배 이상 차이 났고 경쟁력 부문 점수는 20배 넘게 벌어졌다.

그렇다고 기존 내연기관 차 장사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다.

할인 판매로 버티다 보니 팔아도 남는 게 없다.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률은 1.2%였다. 10대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꼴찌다. 2011년 현대차 영업이익률은 10.3%였다. 

지난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김용환 현대기아자동차 부회장(왼쪽 첫번째)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SK 최태원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왼쪽부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청와대
지난 9월 20일 문재인 대통령 특별수행단으로 방북한 김용환 현대기아자동차 부회장(왼쪽 첫번째)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SK 최태원 회장, 구광모 LG 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왼쪽부터)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청와대

◆ '김용환 체제' 10년..."봉건국가 같다"

현대차 내부에선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현대차 추락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내부에 권위주의가 만연해 있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의사 결정은 정몽구 회장이 할 텐데 소통이 되지않는다. 충언을 하고 싶어도 모든 라인이 김용환 부회장 등 몇몇 수뇌부로만 통한다. 의사소통이 막힌 결정타가 한전 부지 매입이다.”

현대차 내부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다.

현대차는 철강생산부터 부품 조립, 완성차 운반까지 계열사 회전바퀴 안에서 모든 작업을  해결한다.

정몽구 회장이 필생의 업으로 구축한 수직 계열화다.  굳이 외부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철옹성이다.

의사결정도 빠르다. 한전부지 매입을 위해 3사가 10조원을 쏠 때가 그 절정이었다.

현대차가 성장해 온 지난 50여년 동안엔 이런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먹혀들던 시절이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초단위로 급변하는 4차산업혁명시대엔 트렌드에 뒤질 위험성이 높다. 핵심 수뇌인 정몽구 회장이 사실상 와병상태인 지금 현대차가 그런 상황이다.

전기차에서 뒤쳐지고 SUV 트렌드를 놓친 것도 현장 목소리나 외부 충고가 먹혀들지 않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을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총괄한다면 그룹 행정은 김용환 부회장이 도맡고 있다.

영업맨 출신인 김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대리인이나 마찬가지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2008년부터 현대차의 전략기획과 대외협력 업무 등을 총괄하고 있다.

2년여 전 부터는 정몽구 회장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정 회장과 회사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권력이 더 쏠릴 수 밖에 없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룹 내 모든 라인은 김용환 부회장으로 통한다"고 했다.

9월 평양정상회담에 김 부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과 동행한 것에서도 그의 그룹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4월 실패한 지배구조 개편 등 '포스트 정몽구' 밑그림도 김 부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한전 부지 인수전을 사실상 주도한 이도 김용환 부회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농단 당시 최순실 측이 로비 창구로 찍은 인물도 김 부회장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기차 보다 수소차 지원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도 김용환 부회장의 대관 작업과 무관치 않다. 

지난달 프랑스 방문 때 문 대통령이 느닷없이 수소차충전소를 방문한 것도 김 부회장의 작품이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그의 인창고 인맥은 윤종원 경제수석, 정태호 일자리 수석,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핵심까지 뻗쳐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소개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사진=청와대
지난해 12월 16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소개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사진=청와대

◆ 희망은 정의선인데...

봉건적 철옹성 깨기에 나선 이는 정의선 총괄 수석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의 스타트업 투자, 외부 전문가 영입, 자율주행 기술업체와의 제휴 등을 주도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개발독재' 이후 고착화된  폐쇄적 조직문화를 깨고 새로운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재계 라이벌인 삼성에서도 인재를 당겨왔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출신인 지영조 사장을 영입해 차량공유, 로봇, 인공지능 부문을 총괄하게 했다. 삼성 출신의 IT 인력들도 대거 영입하고 있다.

'김용환 체제'로 상징되는 행정 중심의 조직을 기술과 소통을 핵심가치로 두는 혁신조직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인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잘 되려면 정 부회장이 디자인, 차세대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등 추진에 실질적 힘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에겐 아직 경영능력 검증이라는 문턱이 남아있다. 

그는 2011년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현대차의 새로운 브랜드 전략인 '모던 프리미엄'을 공개했는데, 고가의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4년 후 현대차는 첫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론칭했다.

하지만 섣부른 고가전략으로 역풍을 맞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올들어 10월까지 미국시장에서 제네시스는 9281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 줄어든 실적이다. 정 부회장의 경험부족과 조급증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정의선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이 세습하듯이 신화를 만들고 언론플레이하고 있는데 솔직히 재벌들 2대까지 모르겠지만 3대의 경영 능력은 검증이 안됐고 갑질 등 사회적 물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정의선도 이상한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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