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 미국변호사

▲ 임병덕 법무법인 천고 고문(미국 변호사)

극동아시아 지도에서 잠시만 눈을 떼면 남북관계를 둘러 싼 상황은 더 큰 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패권다툼 속에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이 지역패권 다툼의 주인공은 미국과 중국으로 보이는데, 앞으로는 일본과 인도가 지역패권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이다. 또한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역패권 경쟁이 시작되었는데 중국과 인도간의 경쟁이 그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한 정신병자 수준의 위험한 상대라는 이미지로 많은 이득을 누려왔지만, 사실 예측불가 속에 예측가능 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정한 의미의 예측이 불가능한 상대라는 우려가 북한을 매우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다. 북한이 '당한대로 갚아주기(taste of its own medicine)를 당하는 것 같아 재미있기도 하고, 드디어 북한이 조심해야만 하는 국면으로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일을 벌여 한국을 낭패의 길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는 다르다. 그들의 역사를 보면 상당부분 예측가능 하다.인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그동안 우리는 'Idea of America' 또는 'Idea of China'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중국의 경우 'Idea of China' 즉 우리는 중국인고, 이 모든 것은 중국문명이며, 여기는 중국이라는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춘추전국시대를 뒤로하고 진시황이 중국대륙을 통일 한 후 신기하게도 수 많은 왕조가 거쳐가면서도 '천명'을 받은 '천자'라는 이념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헤쳐∙모여를 반복해 오면서 자리잡아 온 것이다. 그렇다면 'Idea of India'는 언제부터 인도인들의 자아 속에 자리잡기 시작하였을까?

고고학자들 중에는 세계문명의 최초 발상지가 메소포타미아라는 통념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만큼 인도문명은 오래됐다. 인도문명은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며 쓰고 있는 수학 시스템을 서기 500년경 발명한 곳이며, 제로라는 숫자개념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을 꼽으라면, 11세기 말에 설립된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Oxford), 12세기에 설립된 프랑스의 소르본느 대학(Sorbonne), 14세기에 설립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Heidelberg) 등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기원전 7세기에 설립된 날란다 대학(Nalanda), 기원전 6세기에 설립된 탁실라 대학(Taxila), 그리고 서기 8세기에 설립된 비크람실라 대학(Vikramshila) 등이 있었다. 

이 중 날란다와 탁실라는 2700여 년 전 설립되어 1000년 이상 대학으로 운영되었는데, 인도 고유의 베다 (Vedas), 문법, 철학, 천문학, 의학, 음악, 상업, 법률 등을 가르쳤으며 1만 명 이상의 학생을 수용하였고 중앙도서관, 기숙사 및 카페테리아를 설비한 기관이었다. 

이들 대학들과 그 외 카쉬미르 지역의 라닥(Ladakh)에 아직도 존재하는 헤미스 불교사원(Hemis Monastery), 또는 날란다 근교의 푸리 베딕사원(Puri Vedic Temple) 등은 고대시절 세계에서 가장 학문이 발달 된 곳으로 세계 각지에서 유학생들을 받아들였고 그들은 돌아가 인도에서 배운 사상과 문명을 전파했다.현세에서 세계의 학생들이 앞다투어 미국 유학 길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인도문명의 특이한 점은 중국문명이나 근대의 유럽∙미국문명과 비교할 때 매우 정신적인(spiritual) 것이라는 점이다. 까마득한 고대부터 시작된 베딕(Vedic)철학은 2500년에는 불교를 탄생시켰으며, 그 후 근대의 힌두(Hinduism)에 이르기까지 인도문명을 세계에서 가장 심오한 철학∙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문명으로 만들어 왔다. 

역사학자들은 이 베딕문명이 중동문명, 중국문명은 물론 유럽문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가르침 속에도 인도 베다문명의 요소가 녹아있다 한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처럼 인도 역시 유럽발 산업혁명을 놓치면서 최근까지 가난을 면치 못해 왔다. 

그런가 하면, 서기 7세기 이후 끊임없이 이슬람의 무자비한 침공과 인도 문명∙종교 말살정책에 시달려 왔기에 우리가 아는 인도 역사에 이슬람 통치자, 즉 무갈(Mughal) 이라는 체제가 존재했으며, 18세기 중엽부터는 영국의 일개 주식회사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의 통치를 받았고, 1858년부터는 영국황실이 총독(British Raj)을 통해 인도대륙을 통치했다. 20세기 들어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그와 동시에 이슬람교도들이 주를 이루던 지역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였다.

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인도인들을 아우르는 'Idea of India' 정체성은 인도대륙의 역사상 가장 큰 왕국이었던 마우리아 왕조(Mauryan Dynasty·기원전 326~180)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Chandragupta Maurya 대왕은 인도를 침공하였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후퇴하던 무렵 수 많은 전쟁을 통해 거대한 국가를 설립하였는데, 중국의 진시황과 흡사한 역사를 썼다 하겠다. 

그의 후손 아쇼카 대왕(Ashoka the Great·기원전 268-232)은 마우리아 왕조의 국토를 서쪽으로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쪽으로는 방글라데시까지 확장하였다. 그러던 중 카링가 왕조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그는 깊은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졌고, 불교에 귀화하면서 다시는 살상을 않겠노라고 천명했다. 즉, 아쇼카는 인류 최초의 평화주의자(Pacifist) 였던 것이다. 인도 대륙을 거의 모두 장악한 아쇼카의 마우리아 왕조는 그의 평화롭고 지혜로운 통치하에 찬란한 문화를 영위하였다. 위에 언급된 날란다대학과 탁실라대학이 세계문명의 중심지로 꽃피운 것도 이 무렵이라 하겠다.

그러던 인도가 현세에 이르러 IT 및 엔지니어링 분야에 강국으로 발돋움 하였고 현재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 휘하에서 인도의 중흥을 지향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한국의 박정희 경제개발역사를 벤치마킹 하였으며, IMF에 의하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현재 7.2% 이며, 2018~2019년에는 7.7% 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인도는 중국이 지난 30년 동안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처럼 이제는 인도 차례라는 국가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중국과 불편한 사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수천 년을 지나오도록 히말라야산맥 때문에 서로가 경쟁상대일 수 없었던 인도와 중국이 IT, 테크놀로지 및 운송수단의 발달로 인해 한없이 좁아진 현세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중국굴기, 특히 중국의 해양굴기를 용납할 수 없는 인도는 지역패권, 특히 인도양 패권을 놓고 중국과 충돌침로에 놓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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