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고법 "법령 따른 감사원 감사로 보기 어려워"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21년 2월 9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전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2021.2.9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법원에 의해 기각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021년 2월 9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전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2021.2.9

[포쓰저널]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산업통상자원부 전 공무원들에 대한 법원 판단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관련해 감사원이 벌인 감사와 이를 토대로 한 검찰 수사의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판결이어서 향후 여파가 주목된다.

9일 법원에 따르면 대전고법 형사3부(김병식 부장판사)는 감사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방실침입 혐의로 기소된 전직 산업부 국장 ㄱ씨(56), 과장 ㄴ씨(53), 서기관 ㄷ씨(48)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ㄱ씨 등의 파기한 자료에 대해 "담당 공무원이 개별적으로 보관한 내용으로 공용전자기록 손상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공기록물에 해당하는 중요 문서는 문서관리 등록 시스템에 등록돼 있고, 상당수 파일은 다른 공무원의 컴퓨터에도 저장 객체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 등의 감사원 감사 방해 혐의와 관련해선 감사 자체가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른 감사 활동으로 보기 어렵고, 디지털 포렌식 또한 적법하게 실시되지 않은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감사원법 위반 공소사실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방실침입 혐의도 사무실의 평온 상태를 해친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ㄷ씨가 삭제한 파일 중 일부가 산업부 내에 동일한 전자기록으로 존재하고, 감사원은 ㄷ씨로부터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제공받아 접근 권한도 받았다"면서 "감사 지연은 오히려 감사원의 부실한 업무 처리로 인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피고인들의 행위로 인해 감사 방해의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전지검 형사5부(이상현 부장검사)는 2020년 12월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감사원법 위반·방실침입 혐의로 ㄱ씨와 ㄴ씨는 구속 기소, ㄷ씨는 불구속 기소했다.

ㄱ씨와 ㄴ씨는 감사원의 자료 제출 요구 직전인 2019년 11월경 월성 원전 관련 자료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방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부하직원이던 ㄷ씨는 같은 해 12월 2일 오전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일요일인 전날 오후 11시경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 원전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11부(박헌행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9일 3명 모두를 유죄로 판단, ㄱ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ㄴ·ㄷ씨에게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감사원이 제출을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삭제하기까지 해 감사원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한 산업부의 개입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이 때문에 감사 기간이 예상했던 기간보다 7개월가량 지연되는 등 감사원의 감사를 방해했다"고 감사원과 검찰의 주장 내용을 그대로 인용 판시했다.

다만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서는 현 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ㄷ씨에게 PC 비밀번호 등을 알려준 점을 고려하면 사무실에 출입할 권한이 있었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ㄱ씨 등은 1심 재판 부터 "인사이동 과정에서 관행에 따라 자료를 삭제했을 뿐 감사 방해에 고의가 없었다"며 무죄 취지로 항변했다.

검찰은 2심에서 "공무원들이 공모해 주말 심야 시간대에 월성 원전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직적으로 감사 방해가 이뤄진 사건인 만큼 양형이 원심보다 무거워져야 한다"며 각각 징역 1년∼1년 6개월을 구형했다.

ㄱ씨 등은 1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6월 산업부로부터 해임 징계를 받고 퇴사하는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

월성원전 사건 수사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인 2020년 10월 감사원이 원전 조기폐쇄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리며 시작됐다. 

이후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관련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관련자를 기소했다. 당시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은  최재형 현 국민의힘 의원과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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