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전성기 이끌다 IMF로 그룹 해체

고 김석원 쌍용차 전 회장./연합뉴스
고 김석원 쌍용차 전 회장./연합뉴스

 

[포쓰저널]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새벽 3시께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쌍용그룹을 한때 재계 6위 규모로 키웠으나 무리한 자동차 사업 확대로 그룹 해체의 비운을 겪었다.

대구 출신인 고인은 서울고 졸업 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에서 유학하다 부친인 성곡(省谷)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1975년 그룹 회장에 취임,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소규모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모태로 출발, 방직업과 시멘트업을 해오던 쌍용그룹은 김 전 회장의 지휘하에 정유, 중화학, 금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쌍용자동차, 쌍용중공업, 쌍용건설, 쌍용정유, 쌍용화재, 쌍용양회, 쌍용투자증권 등을 거느린 재계 6위 규모의 재벌로 성장했다.

10여년간 성장세를 이어가던 쌍용그룹은 그러나 자동차 사업 확장에 따라 1조원에 가까운 부채를 떠안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

'자동차 애호가'였던 고인은 1986년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동아자동차 인수전에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 삼성을 제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코란도, 무쏘, 체어맨, 렉스턴 등을 출시하면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으나 적자가 계속됐다.

쌍용차는 1997년 12월 IMF 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대우자동차로의 매각이 결정됐고, 쌍용그룹도 1998년 구고조정에 들어갔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달성군 후보로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던 고인은 그룹이 위기에 빠지자 1998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경영에 복귀했으나 결국 그룹의 해체 수순을 지켜봐야 했다.

쌍용그룹은 2000년에 쌍용양회의 대주주에서 2대 주주가 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고인은 스포츠, 청소년, 언론, 교육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키 불모지였던 국내에 용평스키장을 만들어 동계스포츠와 레저산업의 발전에 초석을 마련했고, 이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토대가 됐다는 평가다.

1982년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에 선출,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일조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개최된 세계청소년캠프 본부장을 맡아 청소년 국제교류에도 기여했으며 2000년부터 3년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부친이 세운 국내 최초 언론문화재단인 성곡언론문화재단과 국민대학교를 운영하는 국민재단에 대한 지원도 계속했다.

고인은 뉴스통신사인 동양통신사 사장을 지냈으며, 한미경제협의회 부의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기도 했다.

유가족에는 부인 박문순씨, 아들 김지용(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김지명(JJ푸드 시스템 대표)·김지태(태아산업㈜ 부사장)씨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특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강원도 용평 선영이다. 02-2227-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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