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촉직원 본업 아닌 식당일 하다 손가락 베인 후 사망
산재신청 했지만 사측 "사망과 업무는 무관" 주장 고수
대규모유통업 규제도 피해...공정위, 노동부 조사착수
양연주-임춘례 부부가 3개법인 소유.."규제피하려 법인쪼깨기"

세계로마트 구로점 전경. 이곳에서 일하던 판촉사원 ㄱ씨는 본래 업무외의 식당일을 하다 손가락을 칼에 베였다. 이후 패혈증 증세를 보이다 지난해 9월 사망했다. /사진=문기수 기자
세계로마트 구로점 전경. 이곳에서 일하던 판촉사원 ㄱ씨는 본래 업무외의 식당일을 하다 손가락을 칼에 베였다. 이후 패혈증 증세를 보이다 지난해 9월 사망했다. /사진=문기수 기자

[포쓰저널=문기수 기자] 준대형 식자재마트 체인 브랜드 '세계로마트'의 납품업체 소속 판촉 직원이 본래 업무를 벗어난 잡무를 하다 사고로 사망해 유족과 사측이 9개월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족 측은 고인의 사망이 납품업체 직원을 종업원처럼 부리는 갑질에서 비롯됐다며 3월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7일 기각됐다. 

유족 측은 "산재신청 불승인에 대한 행정소송과 형사소송 등을 두고 고민중"이라고 했다. 

사측은 "본인이 원해서 했던 일을 하다 벌어진 사고이며 업무 연관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 등으로부터 종업원이나 그 밖에 납품업자 등에 고용된 인력을 파견받아 자기의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 대상 업체는 '연 매출 1000억원 이상'인데, 사망한 판촉직원이 근무한 법인인 (주)세계로더블유스토어의 지난해 매출은 993억원이었다.

그러나 '세계로마트' 브랜드를 사용하는 법인 3개를 모두 합치면 작년 매출은 4천억원에  육박한다.

이들 3개 법인 대주주는 모두 양연주 세계로마트 회장과 부인인 임춘례씨다.

직원들은 양 회장 부부가 대규모유통업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법인 쪼개기'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 판촉직원, 식당서 일하다 손가락 칼에 베여 12일 만에 사망

8일 공정거래위원회·고용노동부, 세계로마트 직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서울 구로구에 있는 대형 식품사 가맹점에서 세계로마트 구로점에 파견된 판촉직원 ㄱ씨가 사망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ㄱ씨는 지난해 9월15일 구로점에서 직원식당에 배정돼 일하다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옆을 칼에 베인 이후 몸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ㄱ씨는 동네병원에서 간단한 드레싱을 받고 주사를 맞았지만, 지속된 건강악화로 인해 9월26일 출근하던 도중 쓰러져 한림대강남성심병원에 입원했다.

다음날인 27일에는 이화여대 의과대학 부속 목동병원(이대 목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갑작스레 쇼크가 오면서 결국 사망했다. 

유족 측은 고인이 사망하기 직전 보인 증상들이 패혈증이라고 의심했지만, 검사를 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쇼크로 사망해 이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족 측은 "애초에 기존 업무와 다른 일인 식당에 고인을 배정한 것부터 잘못됐고, 칼에 베인 이후 상태가 안 좋아져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세계로마트 측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마트 측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유족 측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냈지만 거부당했다. 

당시 세계로마트 측은 근로복지공단에 "당사는 판촉직원들에게 강제로 직원식당봉사를 시킨적이 없다. 판촉직원들이 회사에 내는 밥값을 대신해 자발적으로 직원식당 봉사를 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ㄱ씨와 함께 근무했던 판촉사원 동료 ㄴ씨와 구래점 등 다른 세계로마트 지점 판촉사원들은 세계로마트 측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한번도 자발적으로 식당봉사를 하겠다고 요청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유족 측은 세계로마트 측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며 3월30일 다시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두번째 산재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계로마트 측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고인의 사망과 업무 간에 연관성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지만, 더이상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ㄱ씨가 납품을 담당했던 식품회사 측도 "고인은 당사와 직접 계약한 것이 아니라 가맹점과 계약을 맺었다"며 "당사로서는 직접 고용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했다.  

◆ "판촉직원에 온갖 갑질...출퇴근 시간 관리도"

세계로마트 판촉 직원들은 세계로마트 측이 온갖 갑질을 자행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판촉직원들은 세계로마트 측의 부당노동 지시 때문에 하루에 짧으면 1시간, 많으면 3~4시간 까지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지만 연장근무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계로마트는 최근까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이들을 ‘판촉여사’, '판촉' 등 으로 호칭하면서도 마치 세계로마트 직원처럼 일을 지시했다고 한다. 

판촉사원의 본래 업무와 상관없는 매장 청소, 재고 조사, 코로나19 발열체크, 타 회사의 주류·음료 제품 진열, 직원식당 등에 배정해 일을 하게 했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등도 세계로마트 측에서 직접 기록해 관리하며 판촉직원들을 통제했다.

세계로마트 구래점 창고에서는 판촉직원들의 출퇴근 기록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상자가 쌓여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세계로마트 영업부 직원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판촉여사들에게 공공연하게 휴일,명절 연장근무를 지시하고 있다./캡쳐=독자 제공
세계로마트 영업부 직원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판촉여사들에게 공공연하게 휴일,명절 연장근무를 지시하고 있다./캡쳐=독자 제공

 

6월경 촬영된. 세계로마트 구래점내 창고에 쌓인 상자들 사이로 '판촉출퇴근카드'라고 적힌 상자가 보인다. 세계로마트 측은 판촉직원들의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등을 직접 기록해 관리하며 통제했다. /사진=독자제공
6월경 촬영된. 세계로마트 구래점내 창고에 쌓인 상자들 사이로 '판촉출퇴근카드'라고 적힌 상자가 보인다. 세계로마트 측은 판촉직원들의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등을 직접 기록해 관리하며 통제했다. /사진=독자제공

판촉직원들에 따르면 세계로마트 장기점은 판촉직원들도 출퇴근 시간을 통제하고 근무스케줄표까지 작성해  4월까지 관리했다.

세계로마트 구래점·양곡점 판촉직원 19명과 전직 세계로마트 직원 등은 공정위와 노동부에 이같은 사실을 조사해 달라고 청원한 상태다. 

판촉직원은 대형마트의 납품업체에서 제품의 판촉을 위해 마트에 파견하는 직원을 말한다.

세계로마트에 파견된 판촉직원들의 소속은 풀무원, 오뚜기, 대상, 해표식품, 크라운제과 등 다양하다.

판촉직원들은 이들 기업에 직접 고용되거나, 유통대리점을 통해 고용되는 형태로 파견된다. 

주요 업무는 납품처(파견한 곳)의 제품을 진열하거나, 시식코너 등을 운영해 제품을 홍보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식품 대기업들은 자회사들을 통해 파견직원들을 고용, 파견하고 있다.

◆ "법인 3개로 쪼개 대규모유통업법 규제 피해"

'세계로마트' 매장은 (주)세계로마트, (주)세계로유통, (주)세계로더블유스토어 등 3개의 법인이 각각 7개, 8개, 4개씩 나눠 운영하고 있다. 

이들 법인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 1247억원, 1726억원, 993억원이다.

2019년 매출은 각 981억원, 1424억원, 915억원이다.

3개 법인의 매출을 합쳐 3996억원에 달하지만 세계로마트는 지금까지 대규모유통업법 규제를 받은 적이 없다.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를 받는 유통업체의 기준은 연 매출 1000억원 이상이다. 

노동자들은 '세계로마트'가 대형마트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법인을 쪼개서 관리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며 당국에 조사를 요청한 상태다.  

노동자들이 공정위에 신고한 세계로마트 구래·양곡점의 운영법인인 세계로더블유스토어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1000억원에서 7억원이 부족한 993억원이다. 

세계로마트 3개 법인 대표는 양연주 회장과 그의 부인 임춘례씨가 나눠 맡고있다.

세계로유통은 양연주·임춘례, 세계로마트는 양연주, 세계로더블유스토어는 임춘례씨가 대표이사다. 

이들 회사의 지분도 모두 양 회장 부부가 나눠 갖고 있다. 

세계로유통의 지분은 임춘례 60.7%. 양연주 39.3%다. 세계로마트는 임춘례 60%, 양연주 40%다. 세계로더블유스토어의 지분은 임춘례 55%, 양연주외 45%다.

직원들은 "롯데마트나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세계로마트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노동부 조사 착수...대규모유통업법 적용되나

공정거래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납품업체 판촉직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세계로마트의 노동 환경에 대한 조사에 나서며, 세계로마트가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을 지도 주목되고 있다.  

공정위 유통거래과 관계자는 “세계로마트라는 이름이 생소하고 그동안 잘 알지 못하던 기업이지만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파견판촉 직원들을 타매장 유지 및 관리에 이용하는 행위는 대규모유통업법 제12조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대규모유통업 제12조에 따르면 납품업자는 서면으로 파견조건을 약정하고 자신들이 납품하는 상품의 판매 및 관리 업무에 종사하게 하기 위해서만 판촉직원들을 파견할수 있다. 

판촉직원들에 대한 세계로마트 측의 부당노동 지시 의혹에 대해선 중부고용노동청 부천지청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부고용노동청 부천지청 관계자는 "현재 사건이 진행중으로 회사 측 전무가 왔다갔지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세계로마트 사측은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한 자료 제출을 준비 중이다. 공식 답변자료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민주노총 서비스연맹)도 세계로마트의 부당노동 지시 및 갑질 의혹과 관련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유종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국장은 "노동자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세계로마트의 납품업체 파견 직원에 대한 갑질이 한두 곳이 아닌 전 지점에서 벌어지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문화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며 "서비스연맹 차원에서 이 문제를 이슈화 하고,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법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감시가 덜한 준대형마트에서 일어나는 오랜 악습과 갑질 문제도 함께 공론화시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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