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K-배우 이순재…정부, 금관문화훈장 추서
한국 연기사 ‘살아 있는 역사’, 70년 연기 인생 마무리 사극과 현대극 오가며 명연기 펼친 ‘천생 배우’ “야동 순재·직진 순재”…세대 넘나든 친근함 “언젠가 기회가 올 것” 2024년 KBS 대상 최고령 수상
[포쓰저널] 정부가 25일 91세를 일기로 별세한 배우 이순재씨에게 문화훈장 최고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저녁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칠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극·영화·방송을 넘나들며 우리 국민과 울고 웃으셨다"며 “선생님이 남기신 발자취는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배우가 금관문화훈장을 받는 것은 윤여정(2021년), 이정재(2022년)에 이어 3년 만이다.
고인은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뒤 반세기 넘게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로 자리매김해 왔다.
드라마·영화·연극·예능을 넘나들며 참여한 작품만 140편이 넘고, 단역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30편 넘게 출연한 적도 있을 만큼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내려온 고인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연기에 눈을 뜬 뒤 1960~80년대 TBC·MBC 등에서 조연으로 꾸준히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1991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부장적 인쇄소 사장 이병호 역을 맡아 ‘대발이 아버지’라는 캐릭터로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해당 작품은 최고 시청률 59.6%를 기록했다.
이 인기에 힘입어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
정계 은퇴 이후에도 그는 굵직한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활약했다. ‘허준’의 유의태, ‘상도’의 김좌진, ‘이산’의 노론·소론 갈등 속 중신 역할 등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며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기존의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괴짜 한의원을 코믹하게 소화해 세대 전반의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그는 72세에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후에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에서 노년의 유머·슬픔·연륜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연기로 주목받았다.
2013년에는 tvN 예능 ‘꽃보다 할배’에 출연해 여행·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비행기에서도 대본 분석을 멈추지 않는 철저함, 빠른 걸음으로 긴 일정을 소화하는 체력 등으로 ‘참 어른’, ‘직진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극은 고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각별한 영역이었다. 80대 중반 이후에도 그는 수십 분간의 독백과 긴 호흡을 요구하는 작품에 도전했다.
특히 2021년 ‘리어왕’에서는 백발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200분 공연을 완주해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건강 이상으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일부 회차를 취소할 때까지도 그는 “반드시 건강을 회복해 다시 무대에 서겠다”고 말할 만큼 연극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해 KBS 드라마 ‘개소리’에서 개의 목소리가 들리는 원로 배우 역으로 연기 인생의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해당 작품으로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해 KBS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수상 당시 그는 “언젠가는 기회가 한 번 오겠지 하면서 늘 준비하고 있었다”며 끝없는 도전의 자세를 밝힌 바 있다.
고인은 연기 외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이어왔다. 1992년 국회의원 활동 당시 문화·교육·외교 관련 활동에 참여했고, 이후 가천대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오랫동안 후학 양성에 힘썼다.
문체부는 고인의 훈장 추서 이유에 대해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인간적인 모습으로 전 세대에게 사랑받았으며, 후배 양성·의정 활동 등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문화예술인이었다”고 밝혔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드라마 ‘개소리’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왔다. 유족에 따르면 25일 새벽 별세했다.
한국 연기사를 통틀어 한 시대를 상징하는 배우였던 그는 끝없는 도전과 자기 관리, 폭넓은 장르 소화로 후배 배우들에게 “천생 배우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