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Infra] "에너지 신산업, 기술보다 제도 혁신·시장 설계가 핵심"

국회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국회 포럼 "공공-민간 협력 통한 혁신 생태계 구축해야" "그리드 서비스, 에너지 데이터 거래, 분산에너지 보상 등 새시장 만들어야" "규제 샌드박스, 실증 인프라 등 민간기업 참여 유도할 유연한 규제 환경 필요" "전력망(그리드) 인프라, 디지털 전환이 산업 경쟁력 핵심"

2025-11-12     김지훈 기자
2025년 11월 1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국회 포럼'에서 산·학 전문가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사진=김지훈 기자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구조적 전환기를 맞은 국내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기술 개발보다 제도 혁신과 시장 설계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12일 ‘에너지 신사업 활성화를 통한 국익 증대 및 지역경제 활력제고 방안 모색’을 주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기술력보다 제도 혁신과 시장 설계가 에너지 신사업 성패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손성용 가천대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글로벌 에너지 신기술과 신사업 동향을 소개하며, “해외는 이미 재생에너지, 수소, 분산형 전력망, 데이터 기반 전력 서비스 등으로 산업 구조가 전환되고 있지만, 한국은 기술력은 갖췄음에도 제도와 인프라가 뒤처져 있어 구조적 병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내 전략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실증 허브 구축과 글로벌 표준 연계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지훈 에너지신산업혁신포럼 사무총장은 이어진 발표에서 에너지 신기술 분야의 혁신기업 육성과 투자 다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초기 투자비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긴 에너지 신사업은 민간 자본만으로는 활성화가 어렵다”며 공공-민간 협력 투자 펀드 조성과 R&D(연구개발) 인큐베이팅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또 “기술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투자, 인력, 규제 3박자가 맞물린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패널토론에서는 국내 에너지 신산업이 지역 중심의 분산형 모델로 발전해야 하며, 공공기관이 단순 사업자가 아닌 테스트베드와 수요 창출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관리, 데이터 기반 그리드(전력망) 서비스 등 분야가 향후 산업 성장의 핵심 축으로 지목됐다.

포럼 참가자들은 “한국이 글로벌 에너지 전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공공이 초기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민간이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전략적 접근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 "기술혁신만으론 한계…에너지 산업, 구조적 전환의 시기"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손성용 교수(전기공학과)는 ‘글로벌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동향 및 국내 전력산업의 도전’을 주제로 “에너지 산업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손 교수는 “우리가 말하는 에너지 신산업은 기존 산업 구조를 바꾸거나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친환경 목표를 기술 기반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3년 대비 2025년까지 에너지 분야 투자가 약 3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며, 누적 투자 규모는 약 30조원에 달한다”며 “이처럼 빠른 속도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주요 에너지 유니콘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유니콘 기업은 118개사로, 기업 가치 총합은 약 400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미국이 47개로 가장 많고, 중국 35개, 유럽 25개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도와 일본도 각각 2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손 교수는 각국의 에너지 신사업 육성 전략을 비교하며 한국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그는 “미국은 벤처캐피털 중심의 ‘자본주도형’ 구조로 인공지능·데이터 기반 플랫폼 기업이 경쟁력을 이끌고 있다”며 “중국은 정부 정책이 산업 성장을 견인하는 ‘정책주도형’ 구조로 전기차·배터리·HVDC(초고압직류송전) 등 핵심 기술 중심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EU(유럽연합)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와 탄소거래제 등 ‘규제주도형’ 모델을 통해 친환경 산업 기반을 확립하고 있다”며 “한국은 이 세 가지 모델 중 어느 방향으로도 명확히 자리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정책, 산업 투자, 기술혁신이 따로 움직이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내에서도 분산형 발전과 통합 에너지관리시스템(EMS)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시장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이어 “국내 공기업도 초기 정책과 보조금 지원 없이는 신사업이 정착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제도·규제·투자 인센티브를 병행해 신산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2006년 ‘스마트전력망’ 선언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산업의 현재 위치는 기대만큼 앞서 있지 않다”며 “이번 논의를 계기로 국가적 방향성을 새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 "에너지는 더 이상 비용 아냐…투자·세제 구조 바꿔야"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총장은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분야 혁신기업 육성 및 투자 다변화 전략’을 주제로,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투자 구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사무총장은 “에너지는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라며 “공공이 초기 자금을 투입하고, 민간이 후속 투자에 참여하는 펀드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일본·유럽 등 주요국은 LNG·수소 등 에너지 전환 분야 투자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며 “한국도 공공 GP 펀드와 민간 합작펀드를 운영해 투자-회수-재투자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모델이 구축되면 공공의 수동적 역할과 민간의 공격적 투자가 균형을 이루게 되고, 에너지 분야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 공공 연구개발(R&D) 성과의 민간 확산 필요성도 함께 지적했다.

그는 “공공 부문은 공익성 중심, 민간은 수익성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양측의 단절이 발생한다”며 “이를 연결하는 ‘범퍼 역할’을 할 중간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기업은 매년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지만, 기술 이전과 상용화로 이어지는 비율은 매우 낮다”며 “공공과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기술지주회사 모델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기술지주회사는 공공의 연구성과를 민간의 자본과 결합해 공동투자·합작법인(SPC)·조인트 벤처 설립 등으로 연결할 수 있다”며 “이러한 구조를 통해 연구개발 성과를 상용화하고, 투자 회수 자금을 다시 재투자하는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공공-민간 협력, 시장 개방이 관건"…제도 개선·현장 지원 한목소리

이어진 토론에서는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성장을 위해 공공 부문의 역할, 민간 투자 유도, 규제 혁신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좌장을 맡은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국내 전력시장 규모가 미국의 10분의 1, 중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며 “한전을 비롯한 공기업이 단순히 국내 공급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전력 시장에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산업을 국내 제로섬 경쟁으로만 접근하면 의미가 없다”며, 정부와 국회가 과감한 규제 개혁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허경 교수는 “AI 기술은 전력망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며, 그리드 서비스를 성능 기반으로 시장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학생들이 반도체에는 몰려도 에너지 분야에는 관심이 적다”며 “빠른 성과와 보상이 부족한 산업 구조 탓”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국산 설비의 높은 점유율을 줄이기 위해 국내 대학과 공기업이 초기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호 LS일렉트릭 디지털솔루션연구단 이사는 “2007년 국책과제로 시작된 마이크로그리드 연구가 20년 가까이 이어졌지만, 실증을 넘어선 사업화는 여전히 정체돼 있다”며 “한전과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사업모델을 통해 시장을 개방하고,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 부문이 초기 자금과 제도를 마련하돼 민간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병행돼야 지속 가능한 신산업이 형성된다”고 덧붙였다.

함일한 에이치에너지 CEO(최고경영자)는 “규제 특례 제도가 투자자에게 오히려 회피 대상이 되고 있다”며 “규제 완화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시장 진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이 사업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민간이 기술 투자로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예산 중심이 아닌, 기술 중심의 시장이 되어야 유니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성태 기후에너지환경부 과장은 “에너지 신사업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대전환 과정에서 출발한다”며 “규제가 시장을 만들 수도,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기업 기술지주회사는 공공이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수단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역할”이라며 “기후테크 산업 육성 대책에 기술 로드맵, 대규모 실증 프로젝트, 스타트업·스케일업 펀드 등을 포함할 것”이라고 했다.

문일주 한국전력공사 기술혁신본부 본부장은 “에너지 산업은 이제 수십만의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생태계로 바뀌고 있다”며 “한전은 공기업 최초로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추진해 중소·벤처기업과의 협력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전은 800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기술 이전이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기술지주회사를 통해 초기 투자와 실증,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결합한 완결형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2025년 11월 1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국회 포럼'에서 손성용 가천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사진=김지훈 기자
2025년 11월 1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국회 포럼'에서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총장이 발표하고 있다./사진=김지훈 기자
2025년 11월 1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에너지 신기술·신사업 국회 포럼'에서 전문가들과 국회의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