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th Infra] "노숙인 정책, 지역사회 정착 '하우징 퍼스트' 모델로 전환돼야"
이학영 국회부의장 주최 '노숙인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국회 토론회 "노숙인 정책, 주거 중심으로 전환해야..정책 핵심, 단속·수용 아닌 '지역사회 정착'" "취약계층 포괄적 주거 지원 필요..중앙정부·지자체·국토부 간 협력체계 마련해야"
[포쓰저널=장성열 기자] 노숙인 정책이 기존 단속·시설 중심 방식에서 벗어나 '주거 우선(Housing First)' 모델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에서 나왔다.
안정적 주거를 바탕으로 한 통합적 지원 체계를 마련할 때, 노숙인과 주거취약계층의 자활과 사회적 복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학영 국회부의장이 11일 국회에서 주최한 '노숙인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토론회에선 하우징 퍼스트를 적용한 노숙인복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부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노숙인 문제는 단순히 거리에서의 임시 보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와 사회적 통합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하우징 퍼스트는 정책 전환의 핵심 모델로, 이제는 시설 수용 중심이 아닌 주거 중심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이학영 국회부의장이 주최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 및 취약계층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입법과제 자문위원회’가 주관했다.
발제자로 나선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숙인의 문제는 주거의 상실에서 비롯된다"며 " 주거를 우선 보장해야 진정한 자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의 노숙인 정책이 여전히 '시설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에서 "노숙인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이지만, 선거철이나 사회적 이슈 때만 조명되고 곧 잊히는 경우가 많다"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정책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숙인 정책의 변천 과정을 설명하며 "과거 ‘부랑인’으로 불리던 시기에는 단속 대상이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실직 노숙자’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빈곤의 책임이 강조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노숙인 등 복지 및 자립지원법'은 거리 노숙인, 시설 생활자, 쪽방 주민 등을 포괄하지만, 여전히 주거 취약계층 전반을 충분히 담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 연구위원은 또 "노숙인 수는 감소 추세지만 고시원·여관 등 비주택 거처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은 오히려 늘고 있다"며 "통계상 감소가 실제 문제 완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숙인 정책의 지방이양 이후 노숙인 예산이 급감한 현실도 언급하며 "지역별 편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중앙정부의 역할 축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토론에서 "노숙인 정책의 핵심은 단속이나 수용이 아닌 '지역사회 정착'"이라며 입을 모았다.
임덕영 연구위원은 "노인·장애인 등 복합 취약계층에 대한 포괄적 주거 지원이 절실하다"며 "중앙정부·지자체·국토부 간 협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아영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권은 자립의 보상이 아니라 전제"라며 "현재의 정책은 '자립이 준비된 사람에게 주거를 준다'는 방식으로, 이는 권리의 조건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대안으로 "누구나 주거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 조건 없이 주거를 먼저 제공하고 이후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하우징 퍼스트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노숙을 여전히 시설 입소 중심의 사후 대책으로만 다루고 있다"며 "노숙의 본질은 주거 상실이며 이를 주거 위기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핀란드·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 사례를 소개하며 "하우징 퍼스트 도입 이후 거리 노숙인이 급감했고 주거 유지율이 90% 이상으로 나타났다"며 "한국도 장기적 주거 지원을 중심으로 정책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우징 퍼스트는 해외에서는 이미 노숙인 정책의 핵심 모델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뉴욕시에서는 1992년부터 하우징 퍼스트를 적용, 거리 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아파트를 먼저 제공하고, 의료·정신건강·자활 프로그램을 연계했다. 이 정책 시행 이후 참여자의 80% 이상이 주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사회적 복귀율도 크게 증가했다.
유럽에서도 핀란드는 2008년부터 전국 단위 하우징 퍼스트 정책을 도입했다. 핀란드 정부는 주거 지원을 최우선으로 하고, 상담·직업 교육·정신건강 서비스 등 후속 지원을 통합했다. 그 결과 거리 노숙인 수가 10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었다.
국내에서도 하우징 퍼스트 모델 도입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서울시와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020년부터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노숙인과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자활, 의료, 심리 상담을 병행했다. 초기 참여자 중 70% 이상이 안정적으로 주거를 유지했으며, 일부는 정규직 취업과 사회복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파일럿 사업은 규모가 제한적이고, 예산과 제도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하우징 퍼스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순 주거 지원을 넘어 통합적 전달체계가 필요하다.
임 연구위원은 “노숙인 정책의 핵심은 관리가 아니라 정착”이라며 “주거, 돌봄, 자활, 의료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학영 부의장도 “하우징 퍼스트 정책을 제도화하고, 중앙정부는 재정·제도적 지원을, 지자체는 실행과 지역 맞춤형 서비스를 담당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는 법적·제도적 개선 필요성도 지적됐다.
노숙인복지법 개정, 공공임대주택 우선 배정, 지역 기반 자활센터 확충, 의료·정신건강 서비스 연계 등이 주요 과제로 논의됐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주거·복지·의료 통합 전달체계 구축 ▲중앙정부-지자체 협력 체계 강화 ▲법·제도 개선 ▲지역 맞춤형 하우징 퍼스트 모델 확대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이학영 부의장은 “노숙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 통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우징 퍼스트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가 제도적 지원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제3차 노숙인 등 종합계획 수립에 착수할 예정으로 주거 지원 확대와 지역사회 기반 자립 모델 도입이 주요 논의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