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노벨상] 양자역학 '터널링' '양자화' 규명 美 3인 물리학상 공동수상

"거시적 시스템에서도 양자역학적 현상 존재 가능성 입증" "양자컴퓨터 등 차세대 기술 발전 새로운 기회 열어"

2025-10-07     김현주 기자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수장자 (왼쪽부터)존 클라크(John Clarke), 미셸 드보레(Michel H. Devoret), 존 마르티니스(John M. Martinis)./노벨위원회

[포쓰저널]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역학의 핵심 현상인 ‘터널링’과 ‘에너지의 양자화’를 거시적 전기회로 실험을 통해 실증적으로 밝혀낸 세 명의 미국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왕립과학원(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은 7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존 클라크(83·John Clarke·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미셸 드보레(72·Michel H. Devoret·예일대 및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존 마르티니스(67·John M. Martinis·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에게 공동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수상 이유는 “전기회로에서의 거시적 양자역학적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 현상의 발견”이다.

수상자들  연구의 핵심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전자회로’에서 양자역학이 실제로 작동하는 걸  보여준 것이다.

양자역학은 전자나 원자 같은 미시적 입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근간으로, 한 입자가 에너지 장벽을 뛰어넘는 ‘터널링’ 현상이나 특정한 양만큼만 에너지를 흡수·방출하는 ‘양자화’ 개념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일반적으로 미시 세계에서만 관찰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거시적인 물체나 다수의 입자들이 모인 시스템에서는 열적 교란과 상호작용 때문에 양자적 특성이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수상자들은 이러한 기존 인식에 도전했다. 이들은 초전도체로 구성된 전자회로에서 수많은 전자가 하나의 양자상태로 결집하는 현상을 이용해 거시적 크기의 시스템에서도 양자역학적 현상이 드러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1984년과 1985년 사이에 세 연구자가 수행한 실험은 초전도체 두 개를 매우 얇은 절연층으로 분리한 ‘조셉슨 접합(Josephson junction)’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구조에서는 전류가 전압 없이 흐를 수 있으며, 일정 조건하에서 회로 전체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입자처럼 행동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전류가 ‘제로 전압 상태’에 갇혀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태가 어떻게 양자역학적 터널링을 통해 다른 에너지 상태로 전이하는지를 관찰했다.

이때 전압이 발생하는 순간이 바로 터널링이 일어났다는 물리적 증거였다. 다시 말해, 수많은 전자들이 결합한 거시적 회로가 ‘하나의 양자 입자’처럼 장벽을 통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자들은 회로가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일정한 양자 단위로 구분되어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거시적 물리계에서도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음을 입증한 결정적 결과였다.

올레 에릭손(Olle Eriksson) 노벨위원회 의장은 이번 연구를 두고 “한 세기 전에 정립된 양자역학이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한다”며 “이 연구는 인간이 손으로 다룰 수 있는 크기의 물체에서도 양자현상이 구현될 수 있음을 증명한 성취”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양자역학은 모든 디지털 기술의 기초이며, 이번 발견은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양자센서 등 차세대 기술 발전의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전자공학에서 양자정보과학으로 이어지는 기술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트랜지스터가 양자역학 원리를 응용해 고전적인 디지털 회로를 가능하게 했다면, 이번 연구는 양자역학 자체를 거시적 장비에서 직접 구현해 ‘양자컴퓨팅 시대’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과학사적 의미가 크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번 수상은 양자역학이 미시 세계를 넘어 인간이 관찰 가능한 거시 세계에서도 유효함을 입증한 역사적 업적”이라며 “이는 미래의 양자기술을 이끌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성과는 양자물리학의 근본적 이해를 확장했을 뿐 아니라, 양자정보 과학과 첨단 나노기술의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20세기 전자공학이 트랜지스터와 반도체를 통해 ‘디지털 혁명’을 이끌었다면, 이번 연구는 21세기 ‘양자 혁명’의 초석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존 클라크는 1942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1968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초전도 양자간섭계(SQUID) 개발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미셸 드보레는 1953년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파리-수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대와 UC샌타바버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초전도 양자회로 설계와 양자컴퓨터 제어 기술의 권위자다.

존 마르티니스는 1958년생으로,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UC샌타바버라 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는 구글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Sycamore)’ 프로젝트를 이끈 연구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상금은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 원)로, 세 수상자에게 균등하게 분배된다.

올해 노벨상은 이날 생리의학상, 물리학상에 이어 8일 오후 6시45분 화학상(스웨덴 왕립과학원), 9일 오후 8시 문학상(스웨덴 한림원), 10일 오후 6시 평화상(노르웨이 오슬로 노벨위원회), 13일 오후 6시45분 경제학상(스웨덴 왕립과학원) 순으로 발표된다.

노벨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열린다.

노벨의 유언에 따라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분야의 노벨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노벨경제학상은 스웨덴 릭스방크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1968년 제정됐으며 정식명칭이 스베리예스 릭스방크상이다.

대한민국 국적자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및 민주화 기여 등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작가 한강이 '채식주의자'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