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공간·안정성·가격 3박자…EV5, '패밀리 SUV' 새 기준
플랫 플로어 구조 ‘생각보다 넓다’ 느낌 시속 170㎞까지 올려도 소음 크지 않아 400V 충전 시스템, 주행거리는 아쉬움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전기차 시장의 관심이 ‘제로백 몇 초’ 같은 퍼포먼스 경쟁에서 ‘가족과 함께 쓸 수 있는차’라는 실용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소비자에게 중요한 건 배터리 용량이나 출력이 아니라 ‘생활 속 편의성’이다.
기아 EV5는 바로 이 지점에서 눈길을 끈다.
‘패밀리 전기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소비자들에게 어필한다.
시승을 통해 직접 확인한 EV5는 화려하진 않지만, 가족과 함께 쓸 수 있는 전기 SUV의 표본에 가까웠다.
◇ 외관은 미래지향적, 실내는 여유롭다…EV5의 패밀리카 감각
23일 경기도 하남도시공사 주차장에서 처음 만난 EV5는 겉모습에서부터 ‘패밀리 SUV’로서의 존재감을 뽐냈다.
전면부의 디지털 타이거 페이스는 미래적이고 단단한 이미지를 구현했고, 뒷모습 역시 수평 라인을 강조해 패밀리카에 어울리는 든든함을 드러냈다.
4615㎜에 이르는 차체 길이와 1875㎜의 폭은 준중형 SUV지만 한 체급 위의 여유를 느끼게 했다. 휠베이스는 2750㎜로 동급 대비 넉넉한 편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수치가 말하는 여유가 곧바로 체감된다. 플랫 플로어 구조 덕분에 ‘생각보다 넓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2열 공간은 성인 남성이 다리를 꼬고 앉아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넓었고, 헤드룸도 여유있었다. 트렁크 적재공간은 기본 490ℓ, 2열 시트를 접으면 최대 1318ℓ까지 확보된다.
12.3인치 클러스터와 인포테인먼트, 5인치 공조 패널이 이어진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는 운전석을 감싸듯 펼쳐져 있어 개방감을 줬다.
버튼을 최소화해 깔끔한 인상을 줬지만, 터치와 다이얼 조작이 직관적으로 배치돼 있음에도 적응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 정숙성과 안정감 돋보인 EV5, 아쉬운 건 경쾌한 가속감
기어를 D로 바꾸고 가속 페달을 살짝 밟았을 뿐인데, 전기차 특유의 무음과 함께 매끄럽게 속도를 올렸다. 시승 구간은 하남도시공사 주차장에서부터 가평양떼목장까지 왕복 약 100㎞였다.
도심 구간을 달릴 때는 정숙성이 특히 두드러졌다. 노면 요철을 지날 때도 소음이 잘 억제돼 있었고, 외부 소음이 실내로 크게 유입되지 않았다.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시속 170㎞까지 올려도 소음이 크지 않아 속도감이 무뎌질 정도였다.
패밀리 SUV를 지향하는 만큼 고속 주행시에도 차체가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차선 변경 시의 안정감도 돋보였다.
다만 차체가 묵직해서인지 다소 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심에서의 일상 주행에서는 충분하겠지만, 고속도로에서 경쾌한 주행 성능을 기대하는 운전자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 패밀리 SUV로는 합격…충전·주행거리 한계 뚜렷
충전 속도와 주행 거리도 아쉬운 부분이다.
EV5는 400V 충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급속 충전기를 사용할 경우 배터리 잔량 30%에서 80%까지 약 30분대에 충전이 가능하다. 아이오닉5, EV6 등 800V 초급속 충전을 지원하는 차종과 비교하면, 다소 뒤처지는 부분이다.
도심 생활이나 근교 이동에는 큰 불편이 없지만, 장거리 여행을 계획할 경우 주행거리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공인 복합 주행거리는 460㎞ 수준이지만, 실제 시승에서는 에어컨 사용과 고속 주행으로 인해 이보다 짧게 체감됐다.
특히 전기차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깔리지 않은 지역에서는 충전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여전히 남는다.
◇ 화려함 대신 실속…패밀리 전기 SUV로 균형 잡힌 대안
EV5는 경쟁 모델인 현대차 아이오닉 5와 테슬라 모델 Y와 비교했을 때, 가격 경쟁력과 공간 활용성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반영하면 실구매가가 4000만원 초반대로 상대적으로 낮고, 패밀리 SUV로 필요한 넉넉한 실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균형감 있는 대안’으로 소비자 선택지를 확실히 넓힌다.
화려한 제원이나 극적인 성능, 퍼포먼스로 소비자를 압도하는 대신 가격, 공간, 안정성 등 가족 단위 소비자가 전기 SUV를 선택할 때 고려할 핵심 요소를 고르게 충족한다.
패밀리 SUV로 전기차를 찾는다면 EV5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대안이다.
전기차의 퍼포먼스나 첨단 이미지를 중시한다면 현대 아이오닉 5나 테슬라 모델 Y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