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석유화학산업 위기, 땜질식 지원으로는 돌파구 없다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석유화학산업이 근본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국의 증설 공세, 탈탄소 규제 확산이 맞물리면서 국내 기업들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여천NCC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여천NCC는 영업적자 1조2464억원, 순손실 1조5183억원을 기록했고, 부채비율은 300%를 넘어섰다.
결국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이 각각 1500억원씩 긴급 자금 지원에 나서며 부도는 막았지만, 이는 임시 처방에 불과하다. 반등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유동성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위기가 여천NCC만의 상황이 아니라 산업 전반이 겪는 구조적 침체의 축소판이라는 점이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설비 감축과 자구노력을 통한 사업 재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사업재편 계획이 진정성 있는 자구노력을 전제로 제출될 경우 R&D(연구개발) 지원, 세제·규제 완화, 금융 지원 등 종합 패키지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구조조정 권고와 유동성 지원 수준의 대응은 ‘땜질식 처방’에 머무른다.
이는 시장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일 뿐, 산업 생태계를 살릴 근본 처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 줄여라, 스스로 버텨라’는 주문만으로는 업계의 체질을 바꾸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과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설비 과잉 해소와 고부가 전환 등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위기 돌파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정부는 ‘자구노력’이라는 원론적 주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과 동시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지역경제 충격을 흡수할 안전망을 설계해야 한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구조조정은 단순히 기업 숫자를 줄이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
설비 구조조정과 고부가 전환도 병행해야 한다. 단순한 폐쇄나 감산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낡은 범용 설비를 줄이되,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야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산업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석유화학 산업이 다시 활로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편과 전환’이다. 위기를 기회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단순히 경쟁력 약화가 아니라 기반 자체의 붕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