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료 AI시대, 의료 데이터 표준화 시급하다

2025-08-05     신은주 기자
대한병원협회 /연합뉴스

[포쓰저널=신은주 기자] "이제 영상 판독은 인공지능(AI)이 하고, 의사는 확인만 합니다."

최근 루닛, 뷰노, 딥노이드 등 국내 의료 AI 기업들의 AI기술이 흉부 엑스레이(X-ray), 뇌 영상, 병리 슬라이드 등 의료 임상 현장의 핵심 진단 도구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 

AI로 흉부 엑스레이에서 결핵, 폐렴, 폐암을 90% 이상 정확도로 판독하고 뇌졸중 위험을 조기에 감지한다. IBM 왓슨은 의사에게 맞춤형 항암 치료 전략을 제시한다.

의료 AI는 이제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제3의 의료진’으로 대우받는 중이다.

의료는 데이터 산업이다. 전자의무기록(EMR), 유전체 염기서열, 혈액검사 수치, MRI 필름 한 장까지 모두 질병을 예측하고 진단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그동안 이 방대한 데이터는 병원 안에 갇혀 있었다. 산업과 연결되는 통로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AI가 이 데이터를 풀기 시작하면서, 이제 의료는 전통적 진단·치료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 예측'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문제는 정책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은 여전히 'AI는 기술이고, 데이터는 규제 대상'이라는 낡은 이분법에 갇혀 있다.

병원마다 서로 다른 EMR 포맷, 환자 동의 절차의 모호함, 연구와 상업 활용의 경계 문제 등은 의료 AI의 발목을 잡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디지털헬스케어 발전 전략' 발표를 통해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제도 개선 필요"를 강조했지만 이후에도 여전히 AI 기술 개발은 장려, 데이터 활용은 엄격한 개인정보보호 중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와 데이터 규제가 따로 놀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500병상 이상 병원도 EMR 데이터 필드 구조가 병원마다 상이해 AI가 공통된 모델을 학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EMR 구조 및 용어 체계가 표준화돼 있지 않아, AI 알고리즘 훈련에 필요한 데이터셋 구축에 많은 전처리 시간이 소요된다는 지적이다.

환자 데이터의 활용이 ‘개인정보’와 ‘공공의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어 규제가 지식 산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23년 헬스케어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데이터 활용 시 환자의 동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연구목적과 상업적 목적의 경계가 불분명 해 기관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 판단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특히 AI의 학습 '재료'가 되는 EMR 이 병원마다 구조가 달라 기업들이 모델을 정교화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보건복지부 ‘의료데이터 중심병원(MDC) 사업’에서 선정된 병원들조차도 데이터 포맷 불일치로 통합 분석이 어려웠던 적이 있다.

정부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의료정보를 민감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실명 또는 가명 정보 모두 엄격히 규제 중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의료 빅데이터 기반 질병 예방·정책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 세계 헬스케어 시장은 이미 ‘의료 AI 시대’로 가는 고속열차에 올라탔다. 미국, 유럽, 싱가포르 등만 봐도 이미 국가 주도 데이터 표준화와 공공 플랫폼 개방을 통해 의료 AI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의료 AI 스타트억인 미국의 템퍼스는 유전체 데이터와 임상 기록을 AI로 통합 분석해 정밀 치료 전략을 제시한다. PathAI는 병리 이미지 분석을 넘어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도 손을 뻗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사업', '디지털 헬스케어 특구', '마이헬스웨이' 플랫폼 등을 통해 데이터 개방 정책을 조금씩 펼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을 허용하기 위한 법이 아닌, 의료 혁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료데이터는 보호돼야 하지만, 동시에 살아 움직여야 한다.

'AI가 의사를 대체하진 않는다. 하지만, AI를 활용하지 않는 의사는 곧 대체될 수 있다' 는 말은 의료 현장의 속도이자, 정책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정책이 문을 열고 기술이 길을 낸다면, 의료의 미래는 예측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좀 더 넓은 시야와 속도감 있는 의료데이터 표준화와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으로 우리나라가 의료 AI 강국으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