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어 EU도 '관세 15%-초거액 투자' 합의..韓 부담 가중
EU, 7500억달러 미국산 에너지 구매+ 6천억달러 대미 투자 약속 "미 요구에 밀려 일방적인 양보 말아야"
[포쓰저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 시한(8월 1일)을 앞두고,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이 잇따라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타결하면서 한국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규모 대미 투자와 시장 개방 조건을 놓고 아직 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한국은 관세 충격을 피하기 위해 막판 총력전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나 EU산 수입품에 대해 15%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대규모 에너지 수입과 투자 유치 등의 내용을 담은 무역협상을 전격 타결했다.
당초 예고된 30% 관세에서 절반 수준으로 낮춰졌지만, 그 대가로 EU는 7500억 달러(약 1038조 원)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와 6000억 달러(약 831조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산 군사장비 구매도 합의에 포함됐다.
앞서 22일 미국은 일본과도 유사한 내용의 협상을 타결했다. 일본은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와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참여, 보잉 항공기 100대 구매 등을 약속했다. 자동차와 쌀 등 농산물 시장 일부도 미국에 개방하기로 했다.
이처럼 EU와 일본이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와 시장 개방이라는 반대급부를 제시하면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협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특히 미국이 한국에 요구한 4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한국은 ‘1000억 달러+α’ 수준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 측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미국은 자동차·농산물·디지털 규제 완화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쌀과 소고기 등 민감 품목은 ‘레드라인’으로 설정했으나, 최근 대통령실이 일부 농산물 협상 포함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협상의 유연성을 넓혀가고 있다.
정부는 현재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협력 패키지와 현지 인력 양성 등 ‘한국형 제조동맹’ 방안을 통해 미국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EU 및 일본과 이미 ‘15% 관세+천문학적 반대급부’라는 선례를 만든 만큼, 한국으로선 이들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8월 1일 이전에 협상을 타결하지 못할 경우,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를 포함한 대부분 수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미 50%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철강·알루미늄 품목에 더해 제조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한국 정부는 막판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협상 마감일 전날인 31일에는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워싱턴DC를 방문해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최종 담판에 나설 예정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동시기에 방미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동하며 측면 지원에 나선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이미 지난주 미국을 방문해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협상을 벌였고, 뉴욕 현지에서 긴급 통상현안 화상회의에도 참여했다.
일각에서는 김 산업장관 등이 트럼프 대통령이 머무는 스코틀랜드를 직접 방문해 막판 협상에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로선 15% 수준의 관세가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일종의 '뉴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EU와 일본 모두 통보치보다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았지만, 그 대가로 미국의 제조업 부흥 전략에 동참하는 방식의 협력을 약속해야 했다.
EU는 항공기와 반도체 장비 등 일부 전략 품목에 대해서만 상호 무관세를 적용받았으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는 여전히 50%의 관세가 유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약품과 반도체에도 향후 별도 품목관세를 부과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밀려 일방적인 양보를 하거나 서둘러 타결하기보다는, 제조업과 첨단산업에서의 협력 가치와 지정학적 중요성을 앞세워 전략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