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단통법 폐지하면 끝?.."소비자 후생 증대 법적 장치 논의 우선해야"
'단통법 폐지 및 바람직한 가계통신비 저감 정책 마련' 정책토론회 신민수 "단통법 폐지 대안은 완전자급제, 절충형 완전자급제 등" 정광재 "요금할인 혜택 제공,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 검토해야"
[포쓰저널=김지훈 기자] 정부와 정치권의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단통법 폐지보다 소비자 후생 저하 및 시장 혼선을 막기 위한 법적장치 논의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훈기·김현 더불어민주당 위원 주관으로 '단통법 폐지 및 바람직한 가계통신비 저감 정책 마련'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로 참가한 신민수 한양대 경역학과 교수는 “단통법 폐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단통법 폐지를 통해 이용자를 보호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 교수는 “단통법이 폐지되면 ‘단말기 구입 가격 부담 완화’라는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고, 마케팅 경쟁이 심화될 경우 통신사들의 자원이 소진됐을 때 요금 경쟁이나 품질 경쟁이 어려워져 소비자 후생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용자가 체감할 수 있는 단말기 구입 가격 부담 완화는 제조사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및 정책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만 실질적인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단통법은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불투명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이뤄진 단말기 지원금 지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2014년 10월 1일 첫 시행 이후 매해 존폐의 기로에 섰다.
시행일을 기준으로 14일 만에 국회에서 개정안이 발의되기 시작했고, 19대부터 21대 국회에서 총 51건의 의안이 발의된 바 있다.
신 교수는 “단통법 폐지에 의견이 쏠리고 있지만, 폐지 효과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시장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단통법의 긍정적 측면은 흡수하고, 부정적 측면을 완화하는 식의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교수는 단통법 폐지 이후 논의돼야 할 과제와 대안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정보 취약계층에 대한 차별, 알뜰폰(MVNO) 경쟁력 위축, 대형 유통점 중심 유통시장 재편 등 소비자 후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대응책 마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통법 폐지에 따른 대안으로는 ▲완전자급제 ▲절충형 완전자급제 ▲단통법 개정(분리공시·보조금 지급 금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및 보완 등을 언급했다.
단통법 폐지 이후 정책대안으로 떠오른 완전자급제는 제조-이동통신사 간 연결된 유통 구조를 분리해 제조사는 단말기만, 이통사는 통신 서비스만 판매하자는 취지의 방안이다.
신 교수는 “다만 완전자급제의 경우 단말기 가격과 통신서비스 요금이 인하되리라는 기대가 있지만, 제조사의 영업비용이 늘면서 단말 가격이 오히려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며 “특히 이통사가 요금제, 멤버십 등 서비스로 알뜰폰 사업자와 경쟁하게 될 경우 알뜰폰 경쟁력은 열위에 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절충형 완전자급제는 이통사의 재위탁을 받은 일부 판매점에 한해 단말기와 통신서비스를 결합 판매할 수 있도록 완전자급제를 보완한 방안이다.
신 교수는 “절충형 완전자급게 도입 시 제조사의 책임 강화는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며 “현재는 단말기 유통시장에서 통신사가 위법 행위에 대해 100% 책임지는 구조인데, 절충형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통신사보다 제조사의 단말 유통시장 내 영향령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신사와 제조사의 휴대전화 보조금을 각각 분리 공시하는 ‘지원금 분리공시제’도 언급됐다. 분리공시제는 재원 구분을 통한 유통구조 투명화, 출고가 인하 등으로 가계통신비 절감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시장의 특성상 분리공시제도 도입에 따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현재 단말 시장은 애플과 삼성전자 독과점 구조로, 과거 LG전자, 팬텍 등 여러 경쟁자가 존재했을 때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단통법 폐지 이후 어떤 대안이 나오더라도 최소 2년 정도의 유예기간이 있어야 준비가 되고 차질 없이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며 “단통법 폐지를 통해 무엇을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또 “어떻게 하면 통신사업자들의 6G나 AI(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키면서, 소비자의 편익은 증대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결국 이용자 후생 증대와 통신 시장 성장을 어떻게 균형 있게 가져갈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다른 발제자인 정광재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통신정책연구실장은 "인위적으로 지원금을 규제하는 방식보다 시장의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통신비 인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존 경쟁 정책의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통법의 기본 취지인 지원금에 대한 이용자 차별 해소를 위해서라도 지원금 경쟁 유도와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단통법 폐지로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혜택 제공이 소멸하지 않도록 해당 제도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하는 대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발제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후속조치 방안으로 거론된 절충형 완전자급제의 실효성에 대한 엇갈린 의견이 나왔다.
소비자단체 대표로 나온 한석현 서울YMCA 시민중계실장은 "절충형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일부 대형 판매점으로만 보조금·지원금이 몰려 다단계 판매가 활성화되는 등 단점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며 "이용자가 느끼는 가격 적정선 기준에 대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정상 중앙대 교수는 “현재 국내 유통시장은 고가요금제와 고가단말 판매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통사가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은 단말을 이용해 고가요금제에 고액을 지원하는 담합구조를 깨면 해외의 가성비 좋은 단말기를 유치하는 등 경쟁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완전자급제가 산업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남호 삼성전자 상무는 “완전자급제든, 절충형이든 제도 변화가 있더라도 판매장려금에 사용될 재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큰 변화가 있을까에 대해선 의문” 이라며 “유통망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면 단말기 판매가 줄게 될 것이고, 제조자 입장에서는 매출액 하락으로 인한 악순환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송철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실장도 “단통법 폐지 이후 새로운 제도 도입 시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이용자 후생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