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법 이야기] 헌법④ '법'이 셀까 김정은 '명령'이 셀까
[북한법 이야기] 헌법④ '법'이 셀까 김정은 '명령'이 셀까
  • 이언하 기자
  • 승인 2018.05.07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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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12월8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가운데)이 보안원들에게 체포되는 모습. 이런 경험으로 인해 북한은 '법도 없는 봉건 왕조'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북한도 최소한 헌법 상으로는 '법치주의'를 국가운영의 기본원칙이라고 하고 있다./KBS 캡처

[포쓰저널=이언하 기자]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 과반이상이 북한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다. 국민 52.1%가 '기존에는 북한의 비핵화· 평화정착 의지에 대해 불신했으나, 지금은 신뢰한다'고 답했다(리얼미터 5월1일).  또 CVID(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없는 폐기)가 ‘가능할 것이다’는 응답은 71.4%로  ‘불가능할 것이다’는 응답(18.2%)의 4배에 달했다(리얼미터 5월4일).

회담 전에는 북한을 믿지 못했는데, 4.27 이후엔 신뢰하게 되었다는 요지다. 4.27의 북측 주인공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니, 결국 남측  국민들의 김 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는 말이 된다.

사실 4.27 이전 남측에 박힌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는 '전쟁광', '폭군', '패륜아' 등이었다. 굶주리는 인민들은 외면한 채 정권 보위를 위해 핵미사일 개발에 골몰하고, 회의 중 졸았다는 이유로 고위간부를 처형하는가 하면, 권력장악을 위해선 고모부와 친형까지 살해하는, 등등이다.

4.27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무엇이 남측 국민 인식을 180도   바뀌게 했을까?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은 위원장도 자기 맘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약속을 지킬 수도 있겠다는 판단일 것이다. 사회 제도적으로 표현하면  '인치주의'에서 '법치주의'로의 인식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마그나 카르타'에서 시작한 근현대 민주주의 발전사는 곧 '인치주의 폐기'와 '법치주의 옹립' 투쟁의 역사였다. 1922년 소련 성립 이후 동유럽과 중국, 쿠바,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인치주의였다. 소련 국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프롤레테리아 독재 이론의 영향이었다. 부르조아계급이 멸종되기 전까지는 계급투쟁이 불가피하고, 이 투쟁은 프롤레테리아 정당인 공산당이 주도해하며, 공산당은 민주적 중앙집권체제에 의해 지도·운영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결국 공산당 최고권력자에 의한 독재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변질됐고, 스탈린 이래 사회주의 국가는 1인 독재 체제가 당연한 것처럼 인식됐다. 

북한은 여기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더해지면서 1인 독재는 이론적, 현실적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주체사상은 혁명의 주체는 결국 사람인데 사회 대중은 영명한 영도자의 지도가 없으면 힘을 모을 수도, 혁명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이른바 '수령론'인데, 이 영향으로 북한에서는 '수령의 말이 곧 법'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탈북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실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북한도 최소한 헌법 규정만 보면 '법치주의' 국가다. 헌법이 힘없는 형식적 법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규정 내용은 그래도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 사회가 나갈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남측의 경우도 이런 경험이 있다. 전두환 신군부가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만든 5공화국 헌법은 기본권 조항을 대폭 강화해 어용 헌법학자들의 칭송을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당시엔 장식용에 불과했지만, 이들 기본권 조항들은 6.10항쟁을 이끌어낸 숨은 동력으로 작용했다.

2016년 마지막 개정된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제18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법은 근로인민의 의사와 리익의 반영이며 국가관리의 기본무기이다"라고 선언하고, 이어  "법에 대한 존중과 엄격한 준수집행은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에게 있어서 의무적이다. 국가는 사회주의법률제도를 완비하고 사회주의법무생활을 강화한다"고 규정한다.  

법치주의가 국가관리의 기본원칙임을 선언한 것이다.  북한헌법은 이후 곳곳에서 '법'을 거론한다. 제69조에서는 "공민은 신소와 청원을 할수 있다"면서 "국가는 신소와 청원을 법이 정한데 따라 공정하게 심의처리하도록 한다"고 규정한다. 
신소는 남측의 고소·고발에 해당하는  것이다. 고소와 청원이 있으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것이다.

제79조는 "공민은 인신과 주택의 불가침, 서신의 비밀을 보장받는다"면서 "법에 근거하지 않고는 공민을 구속하거나 체포할수 없으며 살림집을 수색할수 없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3항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영장주의' 규정과 상응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이후 남측 국민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북한뉴스였던 장성택 등 숙청 과정에서 나타난 인치주의적인 냄새는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북한헌법 상 법을 만드는 입법권은 원치적으로 남측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에 있다. 
북한헌법 제88조는 "최고인민회의는 립법권을 행사한다"고 권력분립 원칙을 내세운 뒤  "최고인민회의 휴회중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도 립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  
제91조에서는 "최고인민회의는 헌법 수정·보충권,  부문법 제정 또는 수정·보충권"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북한헌법에는 최고인민회의가 만드는 부문법 이외에 국무위원장만이 내릴 수 있는 '명령' 이라는 게 있다. 
제104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명령을 낸다"고 규정한다. 

국무위원장의 '명령'은 북한헌법 조문상 서열은 최고인민회의의 '법령'보다 아래지만, 국무위원장을 '최고령도자'로 규정(제100조)한 북한헌법 체계를 감안하면 '법령'과 대등하거나, 사실상 더 우위의 법적 효력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헌법 제116조는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을 열거하면서 제6항에서 "헌법, 최고인민회의 법령, 결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령, 국무위원회 결정, 지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결정, 지시에 어긋나는 국가기관의 결정, 지시를 폐지하며 지방인민회의의 그릇된 결정집행을 정지시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보면, 북한 법규의 형식상 서열은 '헌법-최고인민회의 법령 ·결정-국무위원장 명령-국무위원회 결정·지시' 등의 순서다.

하지만 제100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이다"고 천명하고,  
제103조에서 국무위원장의 권한으로 "국가의 전반사업을 지도하고,  국가의 중요간부를 임명 또는 해임하며,  다른 나라와 맺은 중요조약을 비준 또는 페기하고,  특사권을 행사한다"고 규정한다. 

국무위원장의 이런 막강한 권한에 비추어 그가 내리는 '명령'의 법적 위상이 최고인민회의가 만들고 수정하는 '법령'보다 실질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장성택이든 김정철이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명령' 한마디면 생존권이 박탈 당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인 셈이다.

최고인민위원회에서 '법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남측의 국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헌법 제97조는 "최고인민회의는 법령과 결정을 낸다"고 선언한 뒤 "최고인민회의가 내는 법령과 결정은 거수가결의 방법으로 그 회의에 참석한 대의원의 반수이상이 찬성하여야 채택된다"고 의결정족수를 규정한다. 
다만, 헌법 개정의 경우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전원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하여야 수정, 보충된다"고 한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130조에서 헌법개정안은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한다.  

최고인민회의는 법안 작성 등을 위해 내부에 예산위원회와 함께 법제위원회라는 부문위원회를 둔다. 제98조는 "최고인민회의 부문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사업을 도와 국가의 정책안과 법안을 작성하거나 심의하며 그 집행을 위한 대책을 세운다"고 규정한다.

최고인민회의 임기는 5년(제90조)이고,  17살이상의 모든 공민(제66조)의 일반적, 평등적, 직접적선거원칙에 의하여 비밀투표로 선거된 대의원들로 구성한다(제89조). 

남측이 선거권을 19살 이상 국민에게만 주는 것과 대비된다. 대한민국헌법 제24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고만 규정하고, 선거권 연령은 공직선거법이 제15조에서 "19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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