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회장은 역시 이 시대 대한민국 최고의 파워맨이다. 그의 1분 스피치가 나라 전체를 일순간 이념논쟁의 회오리속으로 몰아넣었다. 

초과이익공유제를 주장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졸지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또는 反 자본주의자로 낙인찍혔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자 국무총리까지 지낸 정 위원장은 경제학 원리도 모르고 무식한 정책을 추구하는 공적(共敵)으로 왕따 신세가 됐다. 

일부 언론 역시 노골적으로 정 위원장을 '뭘 모르는 사람'으로 몰아부쳤다.

중앙일보가 가장 화끈하게 정 위원장을 묵사발 냈다. 이 신문은 12일자 12면에 <"이해 안간다" 이건희 회장 발언후 ...'이익공유제' 의문 3>,<대기업 초과손해 생기면 손실도 협력사와 나눠야 하나> 제목의 기획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는 '재계'와 이만우 고려대 교수, '익명을 원한 삼성관계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의 말을 빌려 ① 초과손해도 공유한다? "대기업 손실 났다고 중기에 어떻게 떠넘기나" ②외국 협력사와도 공유? "해외업체 배제하면 불공정 거래 논란 불거져" ③ 삼성은 애플 협력사인데. "애플 이익많이 냈다고 삼성이 달라고 할 수 있나" 등 제목만 봐도 의도가 분명한 기사를 실었다.

이익공유제(정 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가 좀더 정확한 용어라고 함)가 실현불가능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요지다. 이건희 회장의 말을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기사로 뒷받침해준 것이다. 

매일경제도 이날자 사설 <이익공유제 논란에 동반성장정책 실종 안되게> 에서 '초과이익'의 범위를 설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이런 모호한 주장은 철회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논란의 촉발점이 된 이 회장의 발언은 지난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앞서 하얏트호텔 로비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나왔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어릴 때부터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가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를 떠나서 도대체가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도 못했고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라는 것이다. 

발언 내용을 분석해 보면 ▲ 나는 경제학을 오랫동안 공부했다(이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과대 출신임) ▲ 경제학 책에 이익공유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학도로서) 싫고 좋음을 떠나 이익공유제가 무슨 말인 지 그 뜻 자체를 모르겠다 ▲(자본주의 경제학 책에 없는 것으로 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나 쓰는 말이 아니냐? 등으로 이해된다.

결국 이 회장이 가장 표출하고 싶었던 용어는 '사회주의,공산주의'라는 것은 발언 흐름에 비추어 분명하다. 

이 회장이 '경제학 책'까지 거론한 것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반대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정 위원장의 발상이 자본주의 경제이론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말하자면 이 회장은 이날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작심하고 초강경 발언을 한 것이다.

이 회장이 일반 국민을 상대로 사회적 현안에 대해 이처럼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타낸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오랜만에 있는 일이다.

이 회장과 삼성의 위상이 워낙 대단하다보니, 그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뉴스고, 적잖은 충격파를 던진다.

그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삼성사장단 회의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비단 삼성맨뿐 아니라 누구든지 '혁신'을 말하지 않으면 바보취급을 당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 발언 때는 정치권이 아예 발칵 뒤집혔다.

이번 발언만 해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즉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이익공유제에 대한 언급으로 한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고 진단할 할 정도로 그의 말발은 세다.

하지만 이번은 문제의 본질이 예전과는 좀 다른 것같다. 충격파가 너무 크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대한민국 전체의 이념적 방향타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초과이익공유제가 옳고 그름을 떠나 ,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고 안되고를 떠나, 이 회장의 이번 발언은 대한민국호(號)의 궤도를 너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북한이라는 극단국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산업화를 이루면서 대한민국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대항의식을 가지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공산당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찾기 힘들다. 미국에도,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공산당은 커녕 마르크스만 거론해도 국가보안법에 걸려 쥐도새도 모르게 감방에 갇히기 쉽상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로 인해 그럴듯한 근거를 대며 누군가를 좌파나 빨갱이로 낙인찍으면 그 사람의 정치적, 사회적 생명은 치명상을 입는다. 진실이 어떠한 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좌파나 빨갱이로 비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런 류의 희생양 중 대표적 케이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미군을 돕기위해 국군을 파병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대통령을 좌파라고 비방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이 회장의 초과이익공유제와 정위원장에 대한 발언은 우리사회 전반의 이념적 분위기를 원리주의적 자본주의나 극우쪽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세력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채택하고 있는 경제체제는 수정자본주의, 복지자본주의다. 보이지 않는 손을 핑계로 강자와 자본의 끊임없는 탐욕을 방치하고 방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 회장의 발언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회장은 경제학 책에 이익공유제라는 용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물론 경제학 교과서에 그런 용어는 없을 것이다. 경제정책이라고 해서 꼭 경제학 책에 나오는 단어를 써서 이름을 지으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초과이익공유제가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전혀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정책이냐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회장이 가지고 있는 경제학 책이 너무 옛날 책이 아닌 지 의구심이 든다.

이 회장이 와세다대에서 공부할 때는 없었는 지 모르겠지만, '후생경제학'(welfare economics)과 '시장의 실패' '지속가능한 성정론' 등 이익공유제의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는 논리와 학설은 지금은 모든 경제학 교과서에 필수 항목으로 실려있다.

경영학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CSR)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과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학과 경영학의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 경제이론들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의 복지주의국가 선언과 맥을 통하고 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분명히 경제학, 경영학, 헌법학에 이론적 근거를 갖고 있는 '자본주의적 발상' 인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 복지주의라는 것만 이해하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다.

수정자본주의, 복지주의는 단순한 정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의 일부다. 복지국가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기 때문에 이의 근본정신을 훼손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헌법 규정을 살펴보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34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복지주의 진흥을 국가의 법적 의무로 선언하고 있다.

제119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며,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또 제123조 제3항에서는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며 중소기업 육성을 국가의 의무로 명하고 있다.

결국 헌법은 대한민국 경제의 기본원리를 고전적, 원리주의적 경쟁우월주의 자본주의가 아니고 복지주의적 수정자본주의, 정운찬 위원장의 표현대로라면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 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론적 부분에서는 그렇다치고 초과이익공유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중앙일보나 매일경제의 기사처럼 전혀 없는 것일까?

동반성장위원회와 정 위원장이 지금까지 언급한 것을 종합해볼 때, 초과이익공유제가 표현 그대로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협력업체 등과 '공유'해야한다는 발상은 아닌 것 같다.

정 위원장의 말 중에는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이 회장의 발언이후에도 정위원장은 "초과이익공유제가 삼성의 성과급(ps)제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스스로 오해만 키울 뿐이다.

그럼 삼성이 직원들에게 나눠주던 ps를 협력업체 직원들에게도 확장하라는 말이냐는 반격이 곧바로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성과급 지급의 전제가 되는기여도 평가가 불가능할뿐더러 그런 것이 현실화된다면 사회전체로 볼때 불균형과 소득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 등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선정된 기업과 종업원들은 그나마 대한민국의 상위에 속한다. 그들에게만 대기업과 직접 연결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보너스를 안겨줄 이유는 하등 없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의 발표내용을 보면, 초과이익공유제는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효한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는 시급한 과제다. 중소기업은 소재와 부품, 원자재를 주로 생산해 완제품을 조립하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가 대다수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뒤처지면 대기업은 외국에서 필요한 소재와 부품을 사올 수 밖에 없고, 이는 또다시 국내 중소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악순환된다.

이것은 지금 우리 경제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중소기업은 국내 고용의 80%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먹할 만큼 강해지지 않으면 국민 80%는 앞으로도 늘 가난과 불행에 시달리며 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삼성전자만해도 반도체, 휴대폰 등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의 상당부분을 여전히 미국, 일본 등외국기업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대기업들이 연초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냈을 때, 예컨대 이 중 일부를 '반도체장비연구소' 나 '모바일부품 개발연구소' '차부품연구소' 같은 곳에 출연해 그 성과물을 중소기업들과 공유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일본이나 대만의 중소기업이 지금의 막강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종류의 범 국가적인 지원과 노력 덕분이었다.

복지주의, 수정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핵심 가치는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다. 삼성이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은 물론 삼성맨들의 빛나는 능력과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사실 국민들이 도와 준 것이라고는 전자제품 몇개 사준 것 밖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삼성의 초과이윤은 당연히 삼성이 그대로 가지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이다.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등이 하루아침에 발칵 뒤집힌 것은 근본적으로 빈부격차와 차별 때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 나라에도 대기업이 있을텐데, 과연 앞으로도 그들의 사업이 번창하고 잘먹고 잘 살수 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영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은 그것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자본주의의 주역인 대기업이 사회적책임을 망각하거나 소홀히 하면 중소기업뿐아니라 나라 전체가 왜곡되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단기 이윤의 극대화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명제가 경제학 경영학에서 상식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경제학과 경영학 뿐 아니라 헌법교과서도 새로 나온 개정판으로 한번 더 볼 시간이 있었으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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